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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30주년 맞아 시민사회 성찰 움직임 (2005.2.18) 여전히 미진한 파병의 진실과 화해 베트남전 30주년 맞아 시민사회 성찰 움직임 퐁니ㆍ다낭 학살 자성 평화행사 2005/2/18 강국진 globalngo@ngotimes.net “베트남 파병의 역사를 되새기면서 이라크 파병을 되짚어 봐야 합니다. 한국정부는 베트남 파병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한 것 아닌가요?” 이수효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사무처장의 지적이다. 한국에 ‘노근리’가 있다면 베트남에도 80곳이 넘는 "노근리"가 있다. 한국의 ‘노근리’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 역사를 상징한다면 베트남의 "노근리"는 베트남전쟁 기간 한국군이 현지에서 벌인 잔혹한 학살의 과거를 나타낸다. 한국정부가 베트남에 파견한 ‘비둘기부대’ 제1진이 사이공에 도착한 때는 1965년 2.. 2007. 3. 20.
서경석 목사 한기총 인권위원장에 (2005.2.18) 서경석 목사 한기총 인권위원장에 한기총 북한 인권문제 본격 쟁점화 계기 될 듯 2005/2/18 강국진 globalngo@ngotimes.net 서경석 서울조선족교회 담임목사(아래사진)는 지난 17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인권위원장에 임명됐다. 연합뉴스는 “한기총 대표회장인 최성규 순복음인천교회 목사가 17일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에 인권위원회와 가정사역위원회 등 5개 상임위원회를 신설했는데, 이 가운데 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서 목사를 영입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애초 한기총 임원들은 서 목사를 영입하는데 반대했지만 “한기총이 역점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인권 사업에 서 목사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간담회에서 서 목사는 “북한인권문제.. 2007. 3. 20.
보수 치밀성, 진보ㆍ개혁 NGO에 경종 (2005.2.18) 북한인권국제회의가 진보개혁진영에 남긴 과제2005/2/18 (2005년 2월 열린)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는 진보․개혁적 시민사회단체들에게 분발과 각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 제기되는 북한인권문제 대응을 위한 공동모임 구성 주장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주최한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가 시작되던 지난 14일부터 통일연대 등 진보개혁진영에선 국제회의 반대집회, 반대성명서 발표 등 반대목소리를 분명히 냈다. 서강대 대학원 총학생회는 ‘민족화해와 북한인권’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적 영향력과 준비정도, 내실 등 여러 면에서, 특히 국제여론을 누가 더 움직였느냐는 점에서 국제회의는 진보개혁진영의 목소리를 압도했다.. 2007. 3. 20.
나와우리 ‘베트남과 친구되기’ 활동 주목 (2005.2.18) 나와우리 ‘베트남과 친구되기’ 활동 주목 올해 피해자구술증언자료집 발간 목표 2005/2/18 강국진 globalngo@ngotimes.net “일본의 식민지배를 알리기 위해 1999년 일본 평화단체인 피스보트에 참여할 당시 베트남 중부 다낭마을을 방문했습니다. 그곳 주민들은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이 벌인 민간인 학살을 증언하더라구요. 주민들 얘기를 듣고 나서 한 일본 활동가가 ‘그럼 너희도 우리랑 다를게 없구나’라고 말하더라구요. 그 말 한마디가 지금까지 우리 단체가 베트남 관련 활동을 벌이는 계기가 됐습니다.” 베트남에서 ‘깨달음’을 얻은 나와우리는 베트남 현장답사를 하면서 진상파악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김정우 나와우리 사무국장은 “베트남전쟁 30주년이든 31주년이든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며 “작지.. 2007. 3. 20.
"북핵문제, 2차 남북정상회담으로 풀어라" (2005.2.18) "북핵문제, 2차 남북정상회담으로 풀어라" 송두율 교수 북핵 해법진단 시민의신문 특별기고 중재자·당사자 위치 적극 유지하고 민족문제임을 직시해야 교류협력이 변화예측 청신호… 남북관계 "폐쇄"아닌 "자아확충"을 2005/2/18 송두율 sechenkhan@ngotimes.net 북한이 지난 10일 공식적으로 핵 보유와 6자회담 불참을 선언한 이후 한반도 정세는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속에 놓여있다. 미·일·중·러·한국의 정책담당자들와 여론이 혼미한 정세를 분석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향후 정세를 쉽게 예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송두율 독일 뮌스터 대학교 사회학교수가 앞으로 글을 보냈다. 그는 북핵문제 해법의 기본은 우선 북미 쌍방이 서로 요구를 관철시킬려는 자세를 벗고 대화와 협상이 필요하다고.. 2007. 3. 20.
원폭피해, 남북일 시민사회 나서야 (2005.2.4) 원폭피해, 남북일 시민사회 나서야 북피폭자 일본원호법 지원 못받아, 한국 2002년부터 시민사회 60주년 국제연대로 풀어라 2005/2/4 강국진 globalngo@ngotimes.net 일본에 원폭이 투하된 지 60년이 흘렀다. 하지만 피해는 아물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의 고통 또한 전범국 일본의 편협한 정책으로 배가되어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 피폭자들은 오래전부터 자국 원호법에 따라 치료지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 피폭자들은 2002년에야 그 혜택을 적용받을 수 있었다. 북측 피해자들은 그나마도 남의 이야기다. 따라서 남북공조를 통해 원폭피해자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움직임이 시민사회에서 나오고 있다. 또 남북한 뿐 아니라 일본의 시민사회까지 함께하는 국제연대를 통해 올해를 ‘원폭 아픔을 넘어.. 2007. 3. 20.
“북 피폭자 문제 쟁점될 것” (2005.2.4) [인터뷰] 징용근로자 배상판결 이끌어낸 아다치 슈이치 변호사2005/2/4 일본 히로시마 고등법원은 지난달 19일 원폭피해를 입은 한국인 이근목씨 등 징용근로자 40명이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해 “국가는 원고 1인당 120만엔씩 총 4천8백만엔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외국거주 피폭자 대책과 관련한 재판에서 일본 정부에 배상명령을 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원고들은 2차대전 당시 강제로 끌려와 미쓰비시중공업 히로시마공장에서 일하다 원폭피해를 입었으나 해외거주자라는 이유로 원호혜택을 받지 못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이 판결을 이끌어 내기 위해 변호인으로서 물심양면 노력한 일본 변호인이 있다. 아다치 슈이치(足立修一) 변호사(왼쪽 사진)가 그 주인공이다. 20.. 2007. 3. 20.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켠 얻는데 30년 걸린 한국인희생자위령비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켠에는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오른쪽 아래 사진)가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다. 1970년 4월 10일 히로시마시 평화공원 밖에 건립된 한국인위령비가 평화공원 안으로 들어오는데만 3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니시모토 마사미 일본 츠고쿠신문사 편집위원은 “한국인위령비가 평화공원 밖에 있던 것을 민족차별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이는 오해”라고 말한다. 니시모토 편집위원은 “애초 한국인위령비가 있던 곳은 조선 왕손이었던 이우를 구조했던 곳에 세운 것이며 민족차별과는 상관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원폭 당시 조선인 피폭자들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도움을 제대로 못받았다고 하지만 그건 오해”라며 “당시에는 누구나 치료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니시모토 편집위원의 설명에 대해 김동렬 대구KY.. 2007. 3. 20.
[르포] 전시장에 갇힌 '반핵' 히로시마를 가다 (2005.2.4) 히로시마 시내를 둘러보면 이 도시가 과연 60년전 지옥같은 피폭 경험을 한 도시라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히로시마는 어디를 둘러보나 잘 정돈되고 청결한 느낌을 준다. 양갓집 규수처럼 조용조용 소곤거리며 친철하게 대하는 시민들도 어두운 느낌은 전혀 없다. 평화기념자료관과 원폭돔, 평화공원 곳곳에 자리잡은 위령비를 접하고서야 비로소 이 도시가 평생토록 잊지 못할 상처를 안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평화자료관에서 히로시마가 지난 세기 일본에서 가장 번성한 군사도시였다는 걸 느끼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공원 한켠에 조용하게 자리잡고 있는 한국인위령비를 찾기 전까진 피폭 사망자 가운데 10% 가량이 조선인이었다는 것을 실감하기가 쉽지 않다. 홀로코스트산업과 피폭자마케팅 히로시마는 과연 평화도시인가? 대.. 2007.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