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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생각한다/송두율 교수 사건30

송두율 교수 부부와 함께한 목요일 저녁 (2011년) 6월2일 독일 베를린 시내 외곽을 달리던 전철이 한적한 시골역같은 곳에 멈춰 섰다.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문이 열리길 기다린다. 문은 안 열리고 전철이 다시 움직인다. 그때서야 뭐가 문제였는지 깨달았다. 독일 지하철에선 문에 달린 단추를 눌러야 문이 열린다. 다음 역에서 전철을 반대방향으로 갈아탔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이번엔 제대로 단추를 눌렀다. 단추가 빨간 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뀌며 문이 열렸다. 전철역 바로 옆 주택가로 들어섰다. 초인종을 누른다. 현관문이 열렸다. 3층에 다다르자 반가운 분들이 따뜻하게 안아주며 어서 들어오라고 잡아끈다. 송두율 교수와 정정희 여사를 그렇게 7년만에 다시 만났다. (당시 나는 5월말부터 7월초까지 6주간 9개국을 혼자서 돌아다녀야하는 순회특파원이었다. .. 2011. 6. 13.
송두율 교수 첫 고국강연(03.10.01) 2003.10.01 15:47 "아무도 가보지 못한 '미래의 고향'을 민족 성원들이 같이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통일이다."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독일 뮌스터대)가 "한국말로" "37년만의 첫 강연"을 했다. 그는 "나의 통일철학"이란 주제강연에서 통일의 철학적 범주를 △상생 △평화 △과정 △긴장 △아름다움 △고향 여섯 가지로 정리했다. 특히 "통일은 오늘을 사는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책임을 져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송 교수의 발표를 요약한 것이다. 먼저 통일은 상생의 철학에 기반해야 한다. 남북을 관계체제로서 상호연관된 전체로서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최근 유럽 학계에서도 그런 경향이 보인다. 가령 어느 철학자가 제시한 "과정 속에서 서로 연결되는 것을 연구.. 2011. 6. 10.
송두율 교수 37년만에 고국방문 (03.9.22) 2003.09.22 15:22 친북활동 혐의로 그동안 입국을 거부당했던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독일 뮌스터대)가 고국땅을 밟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2003 해외민주인사 한마당에 참석하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입국한 그는 "37년이란 세월이 짧진 않았다. 비행기로 한국에 오는 10시간 속에 나의 가족사와 지난 37년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그는 "맘 고생을 심하게 하셨으면서도 항상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셨던 아버지께서도 지하에서 기쁘게 생각하실 것"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인천공항 비즈니스센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5년 후면 교수직을 은퇴하게 된다. 가능하다면 한국에서 다음세대를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고 말해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꿈을 피력했다. 귀국을 결정한.. 2011. 6. 10.
홍진표가 송두율 교수를 "주사파 대부"로 지목했던 까닭은 전직 운동권이 송두율을 주사파라고 규정하면 송두율은 자동으로 주사파가 되는 것일까? 적어도 그 자리에선 그런 분위기였다. 때는 2004년 2월10일 송두율 교수가 간첩인지 아닌지 가리는 재판이 열리던 법원에서 검찰측 증인으로 출두한 홍진표라는 사람이 자신을 전직 운동권이라며, 송두율은 주사파 대부라고 했다. 검찰은 그게 곧 송두율이 주사파 대부라는 증거인양 분위기를 유도했다. (그럼 법대 나온 내 친구가 그 검사를 주사파 떨거지라고 규정하면 그 검사는 주사파 떨거지가 되는걸까?) 내가 홍진표라는 사람을 처음 본게 그때였다. 그리고 그 후로도 그는 취재관계상 내 동선 안에 있었다. 한나라당이 홍진표를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추천했다는 말을 들었을때... 홍진표와 한나라당 모두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벅.. 2010. 11. 20.
‘다섯번째 원숭이’는 무죄 (2004.7.30) ‘다섯번째 원숭이’는 무죄 송두율 석방…국보법 폐지 탄력 2004/7/30 강국진 globalngo@ngotimes.net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 교수가 9개월 만에 ‘다섯번째 원숭이’가 되어 다시 돌아왔다. 지난 3월 1심 최후진술에서 ‘다섯 마리 원숭이’ 비유를 통해 세상의 변화를 인식하고 도전하는 정신을 표현했던 송 교수는 지난 21일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시민사회는 법원이 “송 교수가 조선로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한 점을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번 판결은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21일 오후 집행유예로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출소한 송두율 교수가 아내 정정희씨 와 함께 구치소를 나서며 인권단체 회원들의 축하를 받고 .. 2007. 3. 14.
송두율 교수 북한 연구서 28일 독일서 출간 송두율 교수 북한 연구서 28일 독일서 출간 [이주희의 독일통신] 공동저술 2004/7/27 강국진 globalngo@ngotimes.net 송두율 교수가 쓴 북한 관련 연구서가 28일(현지시각) 독일에서 출판된다. 최현덕, 라이너 베르닝 등과 함께 쓴 이 책은 이라는 제목이며 독일 쾰른의 팟피로싸 출판사에서 펴낸다. (아래사진) 책 뒷면에는 “세계에서 최고로 잘 감시되고 가장 군사화되고 갈등이 가장 잘 붙을 수 있는 비무장지대가 여전히 한반도를 가로지르고 있다. 남북관계는 서서히 좋아지는 반면에 북한은 여전히 미국한테 배척당한다. 이 책은 국제적인 전문가들의 연구업적을 하나로 묶고 있다”라는 소개글이 실려 있다. 이 책은 북한 국내 정치와 대외노선, 동북아시아의 권력관계 등을 분석했으며 부록에는 주요 .. 2007. 3. 14.
송두율 교수 2심 결심공판 열려 (2004.6.30) 송두율 교수 2심 결심공판 열려 [송두율] 박형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방청 눈길 송 교수, “역사가 국보법을 유죄로 기록할 것” 2004/6/30 강국진 globalngo@ngotimes.net 송두율 교수 사건 항소심 결심공판이 30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송 교수는 최후진술을 통해 국가보안법 철폐의 당위성과 남북통일의 시대사적 의의를 조목조목 밝혔다. 특히 이 자리에는 박형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처음으로 재판과 최후진술을 방청해 눈길을 끌었다. 검찰은 1심과 같은 징역15년을 구형했다. 박 이사장은 “그동안 재판을 보기 위해 오려고 했지만 혹시라도 송 교수에게 피해가 갈까봐 오지 못했다”며 “그래도 최후진술은 들어야 나 자신에게 떳떳할 것 같아 직접 재판정에 왔다”고 .. 2007. 3. 13.
독일 학자 47인 "송 교수 7년 선고에 분개" (2004.5.19) 독일 학자 47인 "송 교수 7년 선고에 분개" 대통령에 공개서한 보내 송 교수 항소심 19일 시작 2004/5/19 강국진 globalngo@ngotimes.net 송 교수 마녀사냥의 2막이 올랐다. 1심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은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 교수는 지난 19일 공판을 시작으로 항소심을 받게 된다. 송두율 교수 석방과 사상․양심의 자유를 위한 대책위원회는 공판 직전 기자회견을 열고 “1심 판결은 법원을 냉전의 최후보루이자 수구보수의 아성으로 추락시킨 참으로 수치스런 판결”이었다며 “앞으로 진행될 2심 공판과정은 법원이 과연 자기 탈바꿈과 재탄생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를 판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함께 독일학계를 대표하는 47명의 학자들은 송 교수의 즉각 사면을 촉구하는.. 2007. 3. 12.
언론자유의 날에 되돌아본 자유언론운동 30년 (2004.4.30) 언론자유의 날에 되돌아본 자유언론운동 30년 언론권력화, 독과점, 사유화 해결과제 2004/4/30 강국진 globalngo@ngotimes.net “본질적으로 자유언론은 바로 우리 언론 종사자들 자신의 실천과제일 뿐 당국에서 허용하거나 국민대중이 찾아다 쥐어 주는 것이 아니다.” 1974년 10월 24일 오전 9시. 동아일보 기자들은 편집국에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결의했다. 이날 박권상 편집국장은 중앙정보부에 전화를 걸의 중정요원의 철수를 요구해 중정요원의 편집국 출입을 금지시켰다. 유신에 저항해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한 본격적인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동아일보를 필두로 조선, 한국, 중앙 등이 일제히 언론자유실천선언을 전개했으며 전국의 언론사들이 이 대열에 동참했다. 이들은 선언에서 “오늘날 우리 사.. 2007.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