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說478 오류투성이 사실관계를 엉성하게 이어붙인 <제국의 시대> 세계사를 아우르는 거시적인 통찰력을 책 한권에 담아낸다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도 독자들에게 큰 수풀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 수풀을 보여주기 위해선 수십 수백그루에 이르는 나무를 하나씩 이해해야만 하는데 이것 역시 만만치 않은 과제다. 보통 사람은 나무 몇 그루 이해하는 것만도 버겁다. 그렇다고 언감생실 숲은 신경쓰지 말고 나무만 제대로 공부하라는 것도 권장할만한 태도는 아닐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세계사를 조망하면서 역사의 큰 그림을 보여주는 책을 보면 존경심이 절로 들 수밖에 없다. 가령 등 다이아몬드의 문명사 시리즈를 비롯해 나 같은 책들은 전세계를 무대로 하는 역사의 판도를 특정한 주제 속에서 풀어낸 책들이다. 최근 읽은 에서 기대한 것도 그런 기쁨.. 2022. 3. 15. 김철수, 송두율, 그리고 "해방 이후 최대 간첩" 김철수라는 사람이 있다. 이 이름이 “해방 이후 최대 간첩”이 사용했던 가명으로 한국 사회를 뒤집어놨던게 2003년이었으니 아직 20년도 안됐다. 하지만 지금 이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들 잊어버렸다. 세상엔 “해방 이후 최대 간첩”보다도 더 시급한 현안이 많으니까. 2022년 3월 13일 통일부가 운영하는 ‘북한정보포털’에서 김철수를 검색해봤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 채취공업상으로 나온다. “해방 이후 최대 간첩”이란 말은 어디에도 없다. 동일부나 국가정보원조차 김철수가 누구인지 잊어버린 것일까. 발단은 황장엽이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최고위직으로 일하다 대한민국으로 망명 혹은 탈출한 황장엽은 1998년 6월 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이 책에서 독일 뮌스터대 .. 2022. 3. 13. 2022년 대통령선거 짧은 소감 2022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새벽까지 잠을 못자서 무척 피곤하다. 기록을 위해 짧은 대선 소감을 남겨둔다. 1. 착한 척 하고 무능력한 정부에 너무나도 실망한 끝에 안 착하고 능력있는 체 하는 차기 정부를 선택했다. 2. 혐오는 힘이 세다. 3.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갖는, 특히 기소권은 독점하는, 살아있는 권력'이다. 쉽게 말해서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는게 아니라, '살아있는 권력이 수사'하는 거다. 수십년간 '살아있는 권력'이었던 검찰 총수가 청와대까지 접수했다. 4. 대통령제는 양당제를 부추긴다. 그 힘은 갈수록 강해진다. 그 속에서 제3정당은 끊임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안철수처럼 철수할 것인가, '비판적 지지' 전략을 유지하다 2중대 비난에 시달릴 것인가, .. 2022. 3. 13. 영화 '이터널스' 짧은 소감 마블답게 '이터널스는 다시 돌아온다'는 자막과 함께 끝났다. 그 자막을 보면서 '그냥 안돌아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블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 건 처음이다. 2시간반이 넘는 시간이 너무 지루해서 온몸을 비틀어가며 본 첫 마블 영화였다. 한마디로 마블답지 않은 마블 영화였다. 그나마 얼마 전 '샹치'는 시작하고 5분도 안돼 영화 보는걸 포기해 버렸으니까 '마블답지 않은 첫번째 마블영화'로 기억에 남진 않게 됐다.(축하한다 샹치. 근데 샹치는 사람 이름인가? 뭐 그러거나 말거나.) 흔히 MCU라고 하는 마블 세계관 영화로 처음 본 건 당연하게도 아이언맨이었다. 사실 별다르게 큰 감흥은 없었다. 적어도 내겐 그냥 대충 재미있게 만든 시간때우기 오락영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MCU 원천이라고 .. 2022. 3. 11. ‘세대’ 신화에 휘둘리는 대통령선거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이 드라마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내 말로는 그 시절을 경험했던 수많은 40~50대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추억에 젖었다고 한다. 이 드라마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서운해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이 드라마는 재미 이전에 흥미 자체가 생기질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 때는 그랬지’ 하는 감상에 빠진 적도 없고 뭔가 아련한 향수 비슷한 냄새가 난 적도 없다. ‘고증’으로 승부를 건다고 홍보하면서도 박근혜 정부 시절 드라마 아니랄까봐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산다는 등장인물들이 거의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게 참 기묘하다는게 첫인상이었다. 어린 시절 고무신을 신고 다니다 아궁이에 얹은 솥단지로 지은 밥을 먹고, 밤마다 천장에서 들리는 생쥐 소리 때문에 층간소음으로 고통받았던 촌.. 2022. 2. 22. 윤석열 절친의 ‘천부경’ 부적 2022년 대통령 선거가 난데없이 굿판이 돼 버렸다. 명색이 대통령 후보 부인, 그러니까 영부인을 꿈꾼다는 사람이 “도사”니 “무당”이니 하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이라는 게 드러났다. 거기다 윤석열-김건희 부부와 극도로 친하다는 무슨 법사니 도사니 하는 사람들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보니 개판과 굿판 중 어느 게 더 좋은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로선 그 법사들의 신통력을 검증할 방법도 없고, 王이 될 생각도 없으니 손바닥에 낙서할 일도 없겠다. 더구나 똥침이란 함부로 장난치다 큰일난다(그리고 보복당한다)는 건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법인데 무려 자기한테 했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그런 와중에도 매우 걱정되고도 끔찍한 건 따로 있다. 국민의힘이 네트워크본부를 허겁지겁 해산하는 계기가 됐다는.. 2022. 1. 20. 책으로 되돌아보는 2021년 1. 정부나 회사, 군대 가릴 것 없이 조직에선 항상 인사, 평가가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가히 틀린게 아닌게 자칫하면 ‘인사가 망사’가 되기 때문이겠죠. 문재인 정부만 해도 감사원장, 기재부장관, 검찰총장, 육해군참모총장 등 대통령한테 임명장 받은 핵심인사들이 줄줄이 야당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것에서 이 정부의 실력과 성과가 대략 드러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사를 잘 하는데는 논공행상과 신상필벌만한게 없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질 않습니다. 논공행상과 신상필벌을 제대로 하려면 성과를 정확히 판단하고 측정하고 평가해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큰 어려움은 ‘어떻게’ 측정하느냐, ‘무엇을’ 판단하느냐, 그리고 ‘무엇을 위해’ 평가하느냐 입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지난.. 2022. 1. 3. ‘사람이 먼저다’와 ‘그래도 되니까’…변희수 하사를 추모하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KF21 보라매 등 세계 어디에 내놔도 밀리지 않는 첨단무기 관련 뉴스가 연달아 이어진다. 6·25 전쟁 참전 군인들이 썼던 바로 그 수통으로 목을 축이고, K4 고속유탄기관총을 배치한다더라 하는 소문만 듣고 제대했던 흔한 땅개로서는 ‘이게 내가 복무했던 그 군대 맞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각종 가혹행위니 갑질, 성폭력에 견디지 못한 자살 사건, 거기다 변희수 하사의 안타까운 죽음과 뒤늦은 판결 소식까지 접하다 보면 ‘그럼 그렇지 내가 다녔던 군대가 어디 가겠나’ 하는 익숙함에 한숨을 쉬게 된다. 최근 ‘D.P.’라는 드라마가 화제가 됐다. 꽤 잘 만든 작품인 듯하다. 바로 그런 이유로 결단코 그 드.. 2021. 10. 24. 기술발달이라는 혁신 혹은 환상 ‘기린이 온다’(麒麟が来る)라는 일본 드라마는 전국시대였던 16세기 중반에 처음 전래된 조총에 대한 꽤 흥미로운 시대상을 보여준다. 비싸고 복잡하고, 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니 전쟁으로 밥 먹고 사는 무사들은 “너구리 사냥할 때는 쓸모가 있으려나” 하며 조총에 시큰둥하다. 하지만 불과 한세대도 되기 전에 조총은 일본에서 전쟁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명작 ‘카게무샤’(影武者, かげむしゃ)에는 오다 노부나가가 지휘하는 조총부대가 일제사격으로 적군을 궤멸시켜버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배경이 된 나가시노 전투가 1575년 일이었다. 임진왜란 즈음에 이르면 일본군이 보유한 조총이 전 세계 조총의 절반가량이 됐을 정도라고 한다. 당시 일본군은 군사기술 혁신의 최첨단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 2021. 10. 24. 이전 1 2 3 4 5 6 7 ··· 5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