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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8 17:57

잔지바르, 성소수자, 퀸으로 가는 길

 ‘보헤미안 랩소디’에 매혹된 연말입니다. 봐야지 봐야지 하던 영화를 지난 주말 드디어 봤습니다. 두시간 넘는 시간 동안 지루한 줄 몰랐습니다. 극장에 울려퍼지는 노래도 멋지지만 영화를 통해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되새기는 것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프레디 머큐리를 지칭하는 다양한 이름에서 프레디 머큐리를 중층으로 옭아맸던 소수자의 삶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화 시작과 후반부에는 프레디 머큐리를 “파키스탄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잔지바르”와 “파시” “불사라”라는 이름을 거부하며 “영국인”과 “머큐리”라는 외투로 덮으려 하지만 차가운 겨울바람같은 세상의 시선은 끊임없이 그의 뿌리를 땅 위로 들어올립니다. 

 잔지바르는 프레디 머큐리가 태어난 곳입니다. 탄자니아 동쪽 해안에 자리잡은 섬으로 유서깊은 인도양 교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서울보다 약 4배 크고 인구는 130만명 가량으로 일찍이 이슬람 세계에 편입된 덕분에 지금도 인구 대다수는 무슬림이라고 합니다. 16세기 포르투갈을 거쳐 17세기 말 오만 제국의 통치를 받으며 노예 중개무역지로 번영을 누렸습니다. 19세기 짧은 독립 뒤엔 영국 식민지가 됐습니다. 그렇다고 프레디 머큐리가 아프리카 사람인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는 영화에서 “파시”라고 표현한, ‘파르시’였습니다.

 파르시는 페르시아, 즉 이란에서 살다가 8세기에 무슬림에 쫓겨 인도에 정착한 조로아스터교도의 후손들을 가리킵니다. 지금도 뭄바이 등에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조로아스터 혹은 자라투스투라가 창시했다는 이 종교는 천사와 악마, 최후 심판, 구세주, 천국과 지옥 등 현대 세계 주요 종교의 교리의 원형을 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사산조 페리시아 때는 국교로서 지위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인도를 대표하는 재벌인 타타 그룹 설립자 가문 역시 파르시입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본명이 파로크 불사라였습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아버지는 원래 인도 구자라트 주에 있는 불사르라는 곳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불사라는 거기서 유래한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프레디 머큐리는 8살때 인도 뭄바이 인근에 있는 기숙학교에 입학해 청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 시기 복싱 교내 챔피언도 했습니다.

 영화에서 프레디 머큐리 아버지는 잔지바르에서 맨손으로 쫓겨났다고 말하는데, 바로 영국에서 독립한 1964년 오랫동안 누적된 차별과 갈등이 폭발하면서 대규모 폭력사태가 발생했던 걸 말합니다. 잔지바르로 이주해 영국 총독부 하급 공무원으로 지내며 나름 유복했던 그의 가족은 영국으로 건너갔습니다.

 파르시는 인도에서 소수자로서 천년 넘게 살아오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왔습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인도인보다는 파르시로서 규정하는 프레디 머큐리 부모로선 아들이 파르시 여성와 결혼하길 바랬겠지만 사실 영국에서 파르시 출신 아가씨를 만난다는 것도 쉬운게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차피 파르시가 아닌 여성과 결혼하면 손주는 파르시 일원으로 인정받지도 못합니다. 파르시는 파르시 어머니와 파르시 아버지한테서 난 자녀만 파르시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유대인과 다른 이런 전통이 인구감소의 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여성이 유대인인 자녀는 모두 유대인으로 인정합니다). 게다가 게이라니.

 프레디 머큐리는 아프리카 사람도 아니고 인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파르시도 불사라에서 머큐리로 바꾸면서 스스로 거부해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온전히 영국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주변의 영국인이 보기엔 그저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파키스탄 사람”일 뿐입니다. 거기다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은 프레디 머큐리를 향한 비난과 조롱의 원천이 됐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던 독일군 암호를 해독해 2차 세계대전에서 조국을 구한 영웅이었던 엘런 튜링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화학적 거세를 당하는 수모 끝에 자살한 게 1954년입니다. 보헤미안 랩소디 발표 21년 전이니 당대 사회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게 과연 실화인가 의문이 들 정도로 인신공격과 모욕이 난무하는 기자회견 장면은 여러모로 상징적입니다. 퀸의 음악에 대한 질문은 없고 그저 끊임없이 프레디 머큐리의 사생활과 외모만 물고 늘어지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프레디 머큐리가 ‘영국인 이성애자’였어도 저랬을까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프레디 머큐리가 그의 ‘가족’들과 함께 음악으로 모든 번뇌와 방황을 이겨내는 장면은 더욱더 감동스러울 수밖에 없겠지요. 그리하여 너무나 당연하지만 온갖 조건을 붙이는 바람에 자꾸 퇴색하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떠올립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죄가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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