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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를 떠나며

雜說

by betulo 2018. 9. 1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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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는 독특한 곳입니다. 인구 30만에 대한민국 가운데 위치한 조그마한 도시인데 위상은 '특별'자치시. 인구유입이나 출생률, 학력수준과 연령대  모두 대한민국 평균과 멀찍이 떨어져 있습니다. 겉멋 부리다 어떻게 망하는지 온몸으로 보여주는 괴상하고 실용성 떨어지는 (심지어 예쁘지도 않은) 정부세종청사가 터무니없이 넓은 면적을 차지합니다. 

신도시 주제에 구획정리 신경안쓴듯 흐느적거리는 도로가 이어지고 도시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자칭 '대로'는 왕복 4차선으로 방문객을 당황하게 합니다.(제가 장담하는데 이 '대로'는 1~2년 안에 주차 '대란'의 주범이 될 겁니다.)

정부세종청사 중에서도 눈에  띄게 엉망인 기재부 3층 기자실이 지난 14개월간 제 일터였습니다. 세종청사 이전 문제를 논의할때 기재부 기조실장은 '기재부가 당연히 총리실 옆으로 가야지' 하는 소명의식과 '설마 세종시로 가겠나' 하는 낙천적인 마음이 만나 지금 기재부 자리를 점지했답니다. 구내식당 배분할때는 음식냄새 난다며 소명의식이 크게 발동해서, 미용실 같은 편의시설을 배분할때는 낙천적인 마음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리하여 현재 기재부에는 구내식당이나 미용실 등등 그 흔한 편의시설 하나 없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10분 가량 걸리니 접근성도 떨어지고요. 기재부 등쌀에 밀려 총리실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잡았다는 환경부 같은 곳은 버스정류장 바로 옆에 자리잡는 행운을 누리게 됐습니다. 어쨌든 세상은 (조금은) 공평한가 봅니다. 정부세종청사는 1단계와 2단계 공사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워낙 엉망이어서 다 짓고 나서도 보수공사 꽤나 했답니다. 심지어 화장실이 부족해서 화장실을 새로 만드는 공사까지 했다고 하니 할 말 다 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2단계는 '후발주자의 잇점'을 누렸다고 합니다. 

세종에서 그나마 봐줄만한 건 호수공원입니다. 그 호수공원 한쪽에 주변경관 전혀 고려하지 않고 툭 튀어나온 오피스텔 건물이 있습니다. 거기가 제가 14개월간 잠을 잤던 곳입니다. 정부세종청사는 겉멋이라도 부렸다지만 이 건물은 그마저도 없습니다. 한쪽 벽 전체가 유리로 돼 있습니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습니다. 밤 10시에 방에 들어가보면 8월엔 35도 정도를 기록하고 12월엔 18도 정도를 기록합니다. 이열치열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곳입니다. 

기재부는 배울게 많습니다. 기재부 출입해보니 우리나라 전반적인 경제정책이 어떻게 흘러가고 하는지 조금은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일도 많습니다. 자칭 '컨트롤타워'라고 하니 경제문제에 관한 한 바람잘날 없습니다. 경제부 경험도 없이, 그것도 몇개월은 혼자서 기재부 출입을 하려니 솔직히 많이 버거웠습니다. 일간지는 어쨌든 경제 관련 기사가 날마다 나와야 하다보니 의도하지 않게 침소봉대와 아전인수를 하진 않았는지 부끄러운 마음도 있습니다. 경제위기설의 진앙지가 언론이라는 걸 알게 돼 자괴감도 느낍니다. 

50대 취업자가 감소해도 최저임금 때문이고 40대 취업자가 감소해도 최저임금 때문이고 청년실업이 감소해도 최저임금 때문입니다. 제가 세종시에서 서울로 돌아온 것도 다 최저임금 때문입니다.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할때는 언제고 최저임금 때문에 (인건비 줄이는것 말고는 솟아날 구멍이 없는, 이미 한계에 내몰린)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한계에 내몰렸다는 기사가 판을 치고, 한국경제가 선진국형으로 가기 위해 고통스럽더라도 혁신해야 한다고 할때는 언제고 소득주도성장으로 가기 위한 고통으로 국민들 괴롭다고 질타하는 곳 또한 기재부와 관련한 일반적인 보도 유형입니다.  

기재부의 수장이란 분은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라고들 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온갖 경제 문제에 말참견을 하십니다. 종부세 발표할때는 행안부와 국토부 장관을 옆에 앉혀놓고 혼자 발표문 읽고는 퇴장하십니다. 이 분은 컨트롤타워니까요. 작년엔 조세수입증가율보다도 0.8% 포인트나 낮은 2018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도 "적극적 재정지출"이라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일자리 비상상황이라며 상반기 추경을 한다고 하더니 뚜껑을 열어보니 4조원짜리여서 기자들이 '이 뭥미?'하게 만들고 그래놓고 한달뒤 "고용상황이 충격적"이라고 해서 기자들을 또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종부세는 재정개혁특위가 내놓은 아주 약한 시나리오보다도 더 약한 방안을 내놔서 이웃주민들 보시기에 좋았다가, 요샌 또 강력한 종부세 내놓는다고 난리를 벌이는 중입니다. 현지지도를 워낙 많이 하셔서 조만간 천리마운동을 천명하시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차마 묻지도 않았는데도 돌아가신 아드님 얘기 먼저 꺼내는건 그만 하시길 충심으로 바랍니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4개월간 담당했던 기재부 출입기자에서 지난주부터 서울시를 출입하게 됐습니다. 썩 만족스럽진 않고 썩 많은 성취를 한 것 같진 않습니다. 경험부족과 실력부족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래도 많이 배웠습니다. 서울시를 1년 반 출입해보고 행안부를 2년 출입해보고 이제 기재부를 1년 2개월 출입해보니 그전에는 몰랐던 예산정치의 속살이 조금은 더 잘 보입니다. 

이제 다시 서울시 출입입니다. 예전보다 지방재정이, 그리고 중앙-지방간 예산정치가 더 잘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계속 취재할 것이고 더 많이 인터뷰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음 목표는 <재정분권 잔혹사>를 써보는 겁니다. 

사족1: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국무총리실을 출입해보고 싶습니다. 국무총리실 산하 기획예산처와 인사조직혁신처를 함께 다룬다면 꽤나 흥미로운 경험이 될 듯 합니다. 
사족2: 주말부부가 되는 건 삼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그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언제고 제 조상중에 나라를 팔아먹은 분은 없는지 조사해볼 생각입니다. 
사족3: 반겨주는 사람 없는 원룸에서 지내다보니 세종시 일출 사진 찍는게 취미 아닌 취미가 됐습니다. 나름 봐줄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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