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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2 15:03

[재정분권을 다시 생각한다(3)] '인식'의 혼란

 재정분권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다. 전문가 그룹에서도 정책에 대한 찬반을 떠나 분권의 필요성 자체는 이견이 거의 없다. 하지만 ‘어떤 분권인가’라는 각론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저마다 주장하는 분권의 목표, 재정분권과 균형발전의 관계 등에서 통일된 의견을 찾기 힘들다. 이 같은 혼선은 왜 발생할까. 재정분권과 균형발전을 구분하지 못하고, 재정분권을 무조건 좋은 것으로 보고, 선진국일수록 재정분권을 더 이루고 있다고 오도하는 3차원의 ‘인식 혼란’을 핵심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재정분권과 격차 완화, 자기모순에 빠진 재정분권

 적극적 재정분권론자인 A교수는 “궁극적으로 모든 재정 관련 권한을 지방정부에 넘겨야 한다”는 소신을 펴고 있다. 그가 보기에 “재정이 부족하거나 넘치는 불균형”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균형발전은 물론 지역 간 격차 해소에 정부가 나서는 것조차 재정분권의 원칙을 훼손하는 나쁜 정책이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재정분권론은 작동할 수 없다. 하지만 A교수가 지적하듯이 중앙정부의 재정과 권한을 지방에 이양하는 것과 열악한 지방을 돕는 게 별개의 문제라는 건 사실이다. 원론적으로 말해서 재정분권은 지방 간 격차를 감수하거나 심지어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재정분권 정책은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에 초점을 맞춘다. 지방재정 규모를 늘리는 방법으로는 대체로 지방세 비중을 높여 지자체가 자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을 늘리는 데 주력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방소비세 확대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가 아니다. 지방세를 가장 많이 걷을 수 있는 지자체는 곧 재정력이 가장 좋은 서울·경기다. 

 지방세 확대를 요구했던 비수도권 지자체는 이제 지역 간 격차 문제 해결도 요구한다. 정부는 서울·경기·인천에 지역상생발전기금을 출연하도록 하는 등 ‘균형장치를 마련’하는 걸로 보완했다. 결국 재정분권은 ‘중앙의 재정을 지방에 넘기라’는, 정부의 힘을 빼라는 요구와 ‘중앙이 나서서 지역 간 격차를 완화하라’는, 정부의 힘에 기대는 요구가 함께 등장하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이에 대해 윤영진 계명대 공공인재학부 명예교수는 “재정분권은 단순히 지자체에 돈을 더 주는 게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건 무엇보다 정부 스스로 상호 모순된 목표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정분권과 균형발전의 관계 설정이 혼란스럽다. 당장 ‘국정개혁 5개년 계획’만 하더라도 ‘국세·지방세 비율을 장기적으로 6대4 수준까지 개선’한다는 목표와 ‘지자체 간 재정 격차 완화 및 균형발전 추진’이 나란히 등장한다. 지방세 비중을 늘리면 지역 간 격차가 더 벌어지는 건 무시하고 마치 상호보완 관계인 것처럼 기술했다. 

 심지어 정책의 대상인 ‘지방’의 개념조차 혼란스럽다. 지방에는 지방자치나 지방선거처럼 중앙정부와 대칭되는 수직적인 의미의 지방, 지방도시나 지방이전처럼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을 가리키는 수평적 의미의 지방 등 두 가지 서로 다른 범주가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편의에 따라 지방이 비수도권이 되기도 하고 전체 지방이 되기도 한다. ‘중앙의 권한을 지방에 배분해야 한다’고 할 때 지방은 수도권을 포괄하는 반면 ‘지방재정이 열악하다’고 할 때는 비수도권만 가리키는 게 대표적이다. 

 

‘분권=민주화’는 근거 없는 신앙

 문재인 정부의 재정분권 정책의 뿌리는 1980년대 민주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랜 권위주의에 대한 반감은 중앙집권주의를 문제의 근원으로 비판하는 ‘(중앙)집권은 나쁜 것, (지방)분권은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강화시켰다. 거기다 지방자치제도 실시와 활발해진 풀뿌리운동, 지역 간 격차 문제는 지방분권과 민주화를 동일시하는 경향마저 낳았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지방분권 3대 특별법(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지방분권특별법)에서 보듯 지방분권을 정책이 만들 수 있는 ‘선의 대명사’로 간주했다.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2001년 논문에서 이런 경향을 ‘운동으로서의 분권’ 개념으로 정리하면서 “분권화야말로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결을 위한 열쇠가 된다고 간주하는 단순 도식화의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입장을 계승한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이 보기에 현 정부의 재정분권 정책은 ‘잘못된 진단’에 따른 ‘엉뚱한 처방’과 다름없다. 그는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이라는 선언이야말로 재정분권이 얼마나 철학 없이 진행되는지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증거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재정분권 정책에 비판적인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 바로 ‘분권이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접근법이다. 김상철 서울시민재정네트워크 기획위원은 “무조건 좋은 것, 가야 할 길로 보기 이전에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그만한 역량과 책임성이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면서 ”재정분권이 시민분권을 강화한다는 기대가 없다면 분권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결국 핵심은 지방자치다. 재정분권은 지방자치를 위한 수단일 뿐”이라면서 “재정분권이 없다고 지방자치가 안 된다고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인식의 혼란이 정책 혼선으로 이어져

 재정분권이 ‘선한 정책’의 대명사가 되면서 해외 사례나 중장기적인 시대 변화를 외면하게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재정분권 정책의 근거로 자주 거론되는 ‘선진국일수록 재정분권 수준이 높다’는 식으로 호도하는 게 대표적이다. 일본이 도입한 고향납세제도를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고향사랑기부제란 이름으로 도입하는 것 역시 이런 경향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지방세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낮다는 것 자체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2016년 기준 총조세 대비 지방세 비중 평균은 20.2%로, 한국(23.7%)보다도 낮다. 연방제가 아닌 단일형 국가 평균은 15.7%다. 지방자치 역사가 오래됐다고 지방세 비중이 높은 것도 아니다. 이탈리아는 21.7%, 노르웨이는 16.2%, 영국은 6.0%, 네덜란드는 5.9%, 심지어 체코는 2.0%였다. 연방제 국가라도 독일(52.0%), 미국(43.3%)과 달리 호주는 20.7%뿐이다. 

 한국의 재정분권 수준이 낮다는 근거로 거론하는 ‘재정자립도’는 정반대 의미에서 상황을 호도한다. 재정자립도는 지방자치단체 일반회계 중 자체수입(지방세+세외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2019년 기준 재정자립도는 51.4%다. 하지만 재정자립도는 OECD 공식지표에는 없는,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지표다. 이에 비해 OECD와 비교가 가능한 지표를 보면 한국은 세입분권지수(일반정부세입 대비 지방정부자체세입)는 OECD보다 2.3% 포인트 낮은 17.0%, 세출분권지수(일반정부세출 대비 지방정부세출)는 10% 포인트 높은 42.9%다. 


국회예산정책처, 2019, <2019 대한민국 지방재정> 81쪽.

국회예산정책처, 2019, <2019 대한민국 지방재정> 81쪽.

 정작 재정분권이 지방세 확대로만 치우치게 되면서 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인구감소 문제가 외면받는다. 한국지방재정학회장을 지낸 D교수는 정부의 재정분권 정책이 고령화에 따른 인구감소와 심각한 지역 간 격차 문제를 등한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지방세 확대는 지역 간 형평성과 충돌한다. 현 시점에서 굳이 지방세 확대를 하는 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지방분권은 가뜩이나 인구감소와 격차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지방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한 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정분권은 그 자체로 진보적 정책도 아니고 보수적 정책도 아니다. 재정분권 옹호론과 비판론 역시 진보 성향과 보수 성향이 혼재돼 있다. 각자 구상하는 재정분권의 목표와 방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재정분권 방향이 문재인 정부 스스로 내세웠던 ‘총론’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는 대목에선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재정분권과 지방자치, 균형발전을 뭉뚱그려 버리는 ‘인식의 혼란’, 목표와 수단에 대한 제대로 된 토론 부재”를 비판하며 이를 ‘분권지상주의’라고 지적했다. 



“세입보다 세출의 자율적 재정 운용이 중요… 주민권한 강화가 재정분권 최종 목표”

하승수 변호사

 하승수(51)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오랫동안 “연방제 수준의 분권”을 강조해온 자타공인 “강경 분권론자”다. 지난해 정부가 구성한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겸 국민참여본부장으로도 참여했던 그는 문재인 정부 재정분권의 우선순위와 방향 설정에 문제가 있다고 문제제기했다. 그는 “자율적인 재정운용에 초점을 맞추는 재정분권이어야 한다”면서 “무조건 지방세만 늘린다고 ‘주민’에게 꼭 좋은 건 아니다”고 꼬집었다. 


 -오랫동안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강조해 온 이유는. 

 “독일이 만약 연방제가 아니었다면 통일이 가능했을까? 서독이 중앙과 지방간 민주주의를 이뤘기 때문에 통일도 가능했다. 한국은 워낙 중앙집권 뿌리가 깊다. 아예 연방제라는 과감한 목표를 제시하고 분권을 추진해야 한다는 고민에서 그런 주장을 해왔다. 우리가 중앙집권 역사가 오래됐으니까 지방분권 힘들다고 하는 논리는 마치 우리가 과거 왕조국가였으니까 민주주의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면, 국민들에게 더 가까운 권력이 되어야 한다. 그게 지방분권이다. 인구 5000만인 나라에서 모든 국민이 청와대만 바라보는 게 말이 되느냐.” 


 -문재인 정부의 재정분권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큰 의지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에서도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우리가 낸 최종안 중에는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자치법률’로 조세를 신설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있었다. 나중에 보니 청와대에선 가장 ‘약한’ 방안을 채택했다. 딱 관료들이 할 수 있는 범위로만 가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재정분권과 정부가 추진하는 재정분권의 방향도 서로 다르다.” 


 -어떤 점에서 다른가. 

 “정부와 대다수 재정분권 전문가들은 세입 측면의 자율성을 강조한다. 나는 오히려 세출 측면의 재정분권이 더 급선무라고 본다. 국고보조금과 특별교부세, 특별교부금 등이 지방재정의 자율성을 갉아먹고 기획력도 떨어뜨린다. 국민기준선인 보편적복지는 국가가 하고 각 지역에서 실정에 맞게 사회서비스를 하도록 역할분담을 하면 된다. 기초연금은 국가가 100% 책임지고 경기도는 청년배당, 서울시는 청년수당, 농촌 지역은 농민수당 시행하면 된다. 정부가 자꾸 전제조건을 다는 ‘꼬리표’만 없앤다면 지방교부세도 나쁠 것 없다. 무조건 지방세 늘리는게 능사는 아니다.” 


 -재정분권의 최종목표는 무엇이라 보나. 

 “결국 ‘주민’이다. 주민들이 참여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재정분권이라야 한다. 그러려면 주민소송, 주민소환, 주민발의, 주민참여예산을 전면 시행해야 한다. 지역 발전계획도 분권화된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각 지역이 실정에 맞게 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내놓은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은 그 부분이 미진하다. 세출에서 자율권을 주는건 정부부처에서 싫어한다. 특별교부세와 특별교부금 감축은 국회의원들이 꺼린다. 주민권한 강화는 지자체 단체장들이 터부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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