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분권은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재정권한에만 초점을 맞춘, 중앙에 대항한 지방의 원심력으로 귀결되고 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에 초점을 맞춰 보면 반드시 검토해야 하지만 제대로 토론이 안 된 두가지 문제가 더 있다. 지방은 준비가 돼 있는가, 그리고 지자체의 이해관계는 하나인가.
정부에서 재정분권을 강조할 때 항상 등장하는 표현은 “열악한 지방재정”이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열악한지, 열악한 원인은 무엇인지는 의견이 엇갈린다. 기초지자체 중에서도 시군과 자치구 상황이 전혀 다르지만 현재 정책은 시군이 더 많은 혜택을 보는 쪽으로 설게돼 있다. 또한 지방재정에 가장 부담을 주는 건 낮은 지방세 수입 때문이라기보다는 기초연금과 기초생활보장 등 국가정책에 지자체가 의무적으로 일정비율을 분담하도록 한 게 더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정부가 발표하는 예산자료에 따르면 올해 지방교부세는 52조원 규모다. 하지만 통계에는 누락된 실제 액수는 57조원이라는게 여영국 정의당 의원의 설명이다. 서울신문이 여 의원한테서 단독 입수한 자료를 보면 정부는 2016년부터 국세수입이 예상보다 많이 걷히면서 다음 연도 4월에 세계잉여금을 정산해 지방교부세(지자체)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청)을 추가교부했는데, 그 액수가 2017년 약 4조원, 2018년 약 6조원, 2019년 약 10조원으로 모두 20조원에 이른다.
문제는 추가교부한 20조원이 결산서 등 정부예산 통계에 포함도 안되고 국회 보고도 안된다는 점이다. 지자체와 교육청은 추가교부받은 예산이 결산에 포함되기 때문에 받은 기관은 장부에 기입하는데 나눠 준 기관은 기입하지 않는 셈이다. 지자체로선 올해 4월에 추가교부받은 지방교부세만 5조 2475억원이나 된다. 이는 재정분권 차원에서 지방소비세율 인상해서 지자체에 가는 돈보다도 규모가 크다. 정부 정책을 위한 기초 통계조차 지방재정 규모를 잘못 계산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 재정분권 방안에 대해 지자체에서도 각기 처지에 따라 입장이 제각각이다. 가령 지방소비세에서 수도권이 출연하도록 하는 지역상생발전기금만 하더라도 인천은 지역상생발전기금 세율 조정해야 한다고 하고, 경기도는 지역상생발전기금 세율을 모든 지자체에 동일하게 적용하자고 하고, 강원도는 지역상생발전기금 비율 높이자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 있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방사무이양에 따라 감소하는 균형발전특별회계(균특)을 보전하는 방법을 두고서도 시도별로 입장이 천차만별이라 통일된 의견을 만드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자체 사회복지예산 비중을 보면 지자체간 재정부담 양상이 잘 드러난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지자체 통합재정개요 자료에서 사회복지예산 비중을 살펴보면 69개 구 평균은 54.8%인 반면 75개 시 평균은 29.9%, 82개 군 평균은 20.7%다. 군과 구 차이가 세 배 가까이 된다. 광주와 부산 자치구 평균은 각각 63.0%와 62.0%인 반면 군 강원, 전북, 전남, 경북, 경남은 관내 군 평균이 각각 18.4%, 18.6%, 20.8%, 18.9%, 19.0%에 그친다. 경기도 의정부(53.0%)와 경북 문경(21.3%), 부산 기장군(44.2%)과 경북 울릉군(9.2%) 등에서 보듯 동일한 시와 군끼리도 격차가 상당하다.
익명을 요구한 A교수는 “지자체에선 언제나 돈이 없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일종의 알리바이”라면서 “특히 군 지역은 돈 쓸 곳을 찾지 못해서 고민”이라고 지적했다. B교수는 “정부에서 재정분권 로드맵에 따라 막대한 예산이 지자체로 가는데 정작 그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 얘기하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지자체 고위공무원 C씨 역시 “특히 군 지역에서 순세계잉여금이 늘어나는 추세다. 초과세수에 따른 지방교부세 정산분 증가 등으로 최근 지자체 재정 상황이 많이 호전됐는데 그걸 어디에 쓸지를 찾질 못하는게 현실이다”고 꼬집었다.
실제 지자체 재정현황을 보면 82개 군 지역은 결산상 잉여금(2017년 기준)이 평균 1575억원이나 된다. 가장 액수가 큰 경북 울진군은 4717억원, 대구 달성군은 3501억원, 울산 울주군은 2970억원이다. 세 곳만 더해도 1조원이 넘는다. 2000억원 이상인 곳도 12개 군이다. 69개 구의 결산상 잉여금 평균(1028억원)과 비교하더라도 규모가 엄청나다.
최근 전국 지자체에선 타워, 대형 동상, 조형물 추진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난데없는 이순신 경쟁이 대표적이다. 경남 창원에선 대발령 쉼터(해발 180m)에 33층 건물 높이인 100m짜리 이순신 동상을 세우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예상사업비는 200억원이다. 공교롭게도 경남 통영시 역시 이순신 타워(사업비 300억원) 건립을 검토중이다. 전남 광양 역시 초대형 이순신 동상을 비롯한 테마거리 사업을 2000억원 규모로 추진중이다. 전북 무주는 최근 향로산(해발 420m) 정상에 33m 높이로 만화 캐릭터 태권브이 조형물을 설치하려다 예산낭비 논란 끝에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최근 지자체 재정 상황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와는 사뭇 다르다. 이명박 정부가 시행한 소득세·법인세·종합부동산세 축소 등 이른바 ‘부자감세’에 더해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지방재정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거기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무상보육을 확대하면서도 그 재원은 상당부분 지자체에 떠넘기면서 지방재정은 더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2016년부터 국세수입에서 초과세수가 발생해 지방교부세 정산분이 늘어나고 2018년부터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국고로 편성하는 등 지방재정 부담도 줄었다.
더 큰 문제는 지방재정을 수십년간 전공해온 학자조차 “지방에 많은 재원과 권한 가질 때 지자체 비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제어할 만한 장치가 구조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고 토로한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지역 거버넌스 구조’를 연구해온 조형제 울산대 사회학과 교수는 “더 많은 지방세와 권한을 가졌을때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지출할 수 있는지도 따져야 한다. 지금같은 식이라면 회의적이다”고 말했다.
물론 이에 대해선 반론도 만만찮다. 금재덕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방정부 역량이 떨어지는 측면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보다 모든 면에서 잘하는 건 아니다”면서 “지방정부가 잘 못하니까 못믿겠다는 건 자녀가 영원히 크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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