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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484

천연두·콜레라·독감… 역사가 바뀐 현장엔 전염병이 있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다음해인 1593년 3월 남해안 일대에 전염병이 번졌다. 이순신 역시 12일간 고통을 겪어야 했다. 좁은 배 안에서 함께 생활하던 조선 수군에선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전투 중 전사자보다 몇 배 더 많았다. 1594년 4월 이순신이 조정에 올린 보고서를 보면 전염병 사망자가 1904명, 감염자는 3759명으로 전체 병력 2만 1500명의 40%가량이 전투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다시 전염병이 창궐한 1595년 수군 병력은 4109명까지 감소했다(나승학. 2017). 당시 이순신이 전염병에 쓰러졌다면 임진왜란은 어떻게 끝났을까? 숙종 10년(1683) 숙종이 천연두에 걸렸다. 첫 부인인 인경왕후 김씨를 천연두로 잃은 숙종을 살리기 위해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 2020. 2. 7.
책으로 돌아본 2019년 2019년을 뒤로 하고 2020년이 됐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는 모두 꺾어지는 숫자를 좋아합니다. 뭔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며, 믿고 싶고 듣고 싶었던 어떤 의미에 귀기울입니다. 하지만 그 꺾어지는 숫자라는건 그 숫자에 담긴 어떤 상징을 공유하는 사람들한테나 의미가 있겠지요. 서기 1000년을 앞두고 유럽인들이 아마게돈 걱정에 불안해하는걸 무슬림과 유대인들이 생뚱맞게 쳐다보았을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꺾어지는 숫자를 맞아 지나간 꺾어졌던 숫자들을 되돌아보는게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을 듯 합니다. 저로선 20년 전인 2000년 1월초가 떠오릅니다. 당시 저는 어학연수를 위해 미국에 있었고, 21세기엔 뭔가 20세기보다 더 나은 세상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2020. 1. 6.
한국 개신교의 반공주의, 친미주의, 근본주의 주말마다 광화문광장 주변은 목이 터져라 외치는 기도와 "아~아~ 우리 대한민국 아~아~ 우리 조국"을 외치는 노랫소리가 뒤엉켜 있다.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 다수는 60대 이상 노령층, 그리고 개신교 신자들로 보인다. 개신교와 별 인연이 없는 사람들로선 태극기와 성조기, 심지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들고 다니는 모습이 무척이나 낯설 수밖에 없다. 11월30일 열린 한국언론정보학회 학술대회에서 배덕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전임연구위원이 발표한 는 한국 개신교를 이해하는데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 간략하게 발표문을 소개해본다. 미국 종교사를 전공한 배덕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전임연구위원 겸 백향나무교회 목사는 "한국 교회는 탄생과 성장을 미국과 함께 했으며 지금까지 그런 우호적 관계는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 2019. 12. 1.
폭탄과 징벌을 6년간 연구한 결과를 책으로 작년 4월에 를 내고 나서 ‘아 책을 쓴다는게 참 즐거운 일이구나’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물론 쓸 당시엔 그런 생각을 눈꼽만큼도 안했다는 걸 고백합니다.) 호흡이 긴 글을 쓰는 건 짧은 글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값어치가 있습니다. 글은 길어질수록 고민과 사색이 녹아들어갑니다. 요즘 대통령보다도 더 유명인사인 조국 법무장관을 주제로 글을 쓴다고 하면, 120자에 제 생각을 압축한다거나 어지간히 길어봐야 스크롤 압박을 피하려는 정도 길이로 쓴다면 아무래도 깊이있는 분석과 논증까지 기대하긴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신문기사를 예로 들더라도 조국을 다룬 원고지 5장짜리 기사와 50장짜리 기사는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몇 곱절 더 요구하고, 그에 비례해 훨씬 더 깊은 고민이 담길 수밖에.. 2019. 10. 7.
정성장 박사가 말하는 남북관계 북미관계 독해법 정성장 박사를 한 포럼 초청강사로 모시고 북한 전문가인 정 박사한테서 최근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독해법을 들어봤다. 정성장 박사는 현재 세종연구소에서 연구기획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대표적인 북한 전문가다. 프랑스 파리10대학에서 북한 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주체사상과 후계구도 등 북한 국내정치를 주로 연구했다. (대다수가 김정남을 후계자로 생각할 때 2000년대 초반부터 김정철이나 김정은 두 중 한 명이 김정일의 후계자가 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북한 붕괴론의 허상정 박사는 “학위를 마치고 돌아온게 1997년이었다. 당시 학술회의를 가보면 하나같이 북한이 곧 무너진다는 얘기만 하는데 근거가 너무 빈약했다”면서 “나는 당시에 군대와 경찰 등을 통한 내부통제, 북한 내부 문헌 연구 등을 근거로 북한.. 2019. 9. 27.
'지도'가 나를 번뇌케 한다 매우 자랑스럽게도, 시사IN을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정기구독하고 있다. 시사IN을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책을 읽듯이 정독한다. 그동안 내가 읽은 시사IN이 최소 5만쪽은 넘을 것이다. 그런 시사IN이 이번주엔 처음으로 나를 실망시켰다. 난민 문제를 다룬 최신호 내용은 아주 훌륭했다. 인포그래픽도 정성이 느껴졌다. 하지만 인포그래픽에 실린 세계지도가 문제였다. 사할린을 일본 영토로 표시해놨다. 북방 4개섬도 아니고 제주도보다 무려 30배 가량 큰 섬을 통째로 일본에 넘겨줬다. 지도를 통해 우리는 세계를 더 넓게 인식할 수 있다. 지도 덕분에 타인들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론 지도가 우리의 인식을 왜곡시킨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는 딱 우리 인식만한 지도를 갖는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 2019. 6. 17.
'지도'가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작년에 ['선을 넘어 생각한다'](2018)라는 책을 내고 나서 고맙게도 몇 차례 강연 요청을 받았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까 고민 고민하다가 프리젠테이션 첫머리에 집어넣은게 바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였다. 만원권 지폐 뒷면에 실리면서 유명해진 이 14세기 조선 초기 별자리 지도를 우리가 흔히 아는 서양식 별자리 지도와 비교하는 걸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한국 사람들은 북쪽 하늘에 있는 국자 모양을 한 별들을 보며 마음 속으로 선을 그은 뒤 ‘북두칠성’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서, 세상에 그런 선은 없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별자리를 기준으로 별을 인식하는건 별자리를 잇는 선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북두칠성이니 큰곰자리니 하며 연결하는 선이란 그저 우리가 복잡한 현실을 이.. 2019. 4. 13.
책으로 돌아본 2018년 2018년도 저물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책을 통한 총화를 해보고자 합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책 기준이 있습니다.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잡식성이요 닥치는대로 과식하자는게 기준이라면 기준인지라 특별히 어떤 종류가 좋다 나쁘다 하는게 없습니다. 기왕이면 역사책이거나 역사적 맥락을 담은 책에 손이 먼저 가고, 소설이라면 역시 단편보단 대하소설을 선호합니다.(단편은 감질맛나니까 ^^). 스스로 생각해도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은 기준도 있는데, 그건 영어 제목을 한글로 써 놓은 책은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는 것과, 속칭 '베스트셀러'에 그닥 흥미가 없다는 정도 되겠습니다. 가령 꽤 흥미있어 보이는 '마스터스 오브 로마'라는 대하소설이 있습니다. 책소개에 보면 3000만부가 팔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의 작가 콜린.. 2019. 1. 11.
잔지바르, 성소수자, 퀸으로 가는 길 ‘보헤미안 랩소디’에 매혹된 연말입니다. 봐야지 봐야지 하던 영화를 지난 주말 드디어 봤습니다. 두시간 넘는 시간 동안 지루한 줄 몰랐습니다. 극장에 울려퍼지는 노래도 멋지지만 영화를 통해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되새기는 것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프레디 머큐리를 지칭하는 다양한 이름에서 프레디 머큐리를 중층으로 옭아맸던 소수자의 삶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화 시작과 후반부에는 프레디 머큐리를 “파키스탄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잔지바르”와 “파시” “불사라”라는 이름을 거부하며 “영국인”과 “머큐리”라는 외투로 덮으려 하지만 차가운 겨울바람같은 세상의 시선은 끊임없이 그의 뿌리를 땅 위로 들어올립니다. 잔지바르는 프레디 머큐리가 태어난 곳입니다. 탄자니아 .. 2018.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