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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윤석열 절친의 ‘천부경’ 부적

by 자작나무숲 2022. 1. 20.

 2022년 대통령 선거가 난데없이 굿판이 돼 버렸다. 명색이 대통령 후보 부인, 그러니까 영부인을 꿈꾼다는 사람이 “도사”니 “무당”이니 하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이라는 게 드러났다. 거기다 윤석열-김건희 부부와 극도로 친하다는 무슨 법사니 도사니 하는 사람들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보니 개판과 굿판 중 어느 게 더 좋은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로선 그 법사들의 신통력을 검증할 방법도 없고, 이 될 생각도 없으니 손바닥에 낙서할 일도 없겠다. 더구나 똥침이란 함부로 장난치다 큰일난다(그리고 보복당한다)는 건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법인데 무려 자기한테 했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그런 와중에도 매우 걱정되고도 끔찍한 건 따로 있다. 국민의힘이 네트워크본부를 허겁지겁 해산하는 계기가 됐다는 자칭 건진법사가 주변에 만들어준다는 부적에 눈을 의심했다. 한눈에 봐도 ‘천부경(天符經)’ 81글자를 붉은색으로 써놨다. 이것만 봐도 자칭 건진법사가 유사역사학(사이비역사학이라고도 한다)에 깊숙이 치우친 사람이란 걸 알 수 있겠다.(출처는 여기)

천부경이란 게 등장한 건 대략 일본 식민지로 떨어졌던 시기였다. 대종교에선 천부경이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세상의 이치를 표현한 신성한 경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럴 리가 있겠나. 정치를 위해 역사를 쪼물딱거리는건 언제나 동티가 나게 돼 있다.

 천부경은 유사역사학의 최종 보스 같은 이른바 ‘환단고기’에 실려있다. 환단고기는 1911년에 계연수라는 사람이 편집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천부경은 계연수가 1916년 묘향산 암벽에서 찾아내 탁본을 하면서 찾아낸 거란다. 1911년에 편집한 책에 들어있는 걸 어떻게 1916년에 암벽에서 찾아냈다는 것일까. 이미 거기서부터 도대체 앞뒤가 맞질 않는다. (환단고기 신봉자들과 고대사 시각이 매우 유사한 이북 정부가 묘향산에서 천부경을 찾아내 발표하지 않는 건 또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천부경이란 이미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믿을 수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단재 신채호가 ‘조선사연구초’(1929)에서 “역사를 연구하려면 사적 재료의 수집도 필요하거니와 그 재료에 대한 선택이 더욱 필요한지라… 서적의 진위와 그 내용의 가치를 판정할 안목이 없으면 후인 위조의 《천부경》 등도 단군왕검의 성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때 천부경을 경전으로 떠받드는 대종교에 몸담았던 신채호조차 이 정도였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자칭 건진법사의 천부경 부적이 더 위험한 건 이게 단순히 무당 얘기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천부경이, 그리고 천부경이 수록돼 있는 환단고기에 빠진 이들이 선출되지도 않고 감시받지도 않는 권력을 손에 넣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박근혜 정부에서 목격했다. 박근혜는 2013년 광복절 축사에서 환단고기를 인용해 역사학계를 충격과 공포에 빠트린 적이 있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올바른 역사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국정교과서 소동이었다.

 어떤 분들은 환단고기니 천부경이니 다 ‘논쟁’의 영역에 있는 것이고, 다양한 학설 가운데 하나이니 ‘취향 존중’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유대인들이 세계정복을 꿈꾸고 있다는 괴문서가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임나일본부설을 어떤 식으로 퍼뜨렸는지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역사를 조작하는 건 따지고 보면 현실을 조작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천부경이나 환단고기는 고대사 연구를 위한 사료가 아니라 현대 한국 사회를 횡행하는 유언비어의 그늘을 연구하는데 유용한 현대사 자료일 뿐이다.

 유사역사학 혹은 사이비역사학을 신봉하는 이들이 위험한 건 이들이 단순한 옆길로 새버린 역사매니아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들이 지극히 위험하고 퇴행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며, 올바른 역사관이란 이름으로 다양성과 토론조차 인정하지 않는 파시즘 세계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긴 환단고기를 장려했던 게 박정희-전두환처럼 국정교과서를 강요하던 군사독재정부였다.

 

환단고기에 따른 '우리' 문명권. 기왕이면 아프리카랑 호주, 그리고 달나라와 화성도 포함시켜줬더라면 좋았겠다. 이렇게 배포가 작아서야 어찌 큰 일을 도모할까 싶다.



 게다가 환단고기 신봉자들은 부동산에 관심이 너무 많다. 이거 매우 위험하다. 이분들은 헬조선의 근본 원인을 ‘우리나라가 땅이 좁아서’라고 판단한다. 이분들은 한국이 중국이나 러시아 정도 영토는 가져야 호연지기를 갖는 국민이 된다는 생각을 버리질 못한다.(그러면서도 중국 사대주의를 극렬 규탄한다) 그러다 보니 틈만 나면 드넓은 만주벌판 타령이고 치우천황이니 연개소문이 중국을 박살 내고 중국 땅을 정복했다며 정신승리에 여념이 없다.

 이분들의 사고방식은 말 그대로 '지금 우리는 달동네에서 찌질하게 살지만, 고조할아버지의 고조할아버지의 고조할아버지는 만석꾼이었다'는 열등감 덩어리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금 기준을 수천 년 전에 그대로 갖다 붙이는 걸 특기로 하기 때문에 2천 년 전 한사군을 현대의 식민지와 등치시키고, 2천 년 전 한사군이 평양에 있다는 걸 지금 현재 평양이 중국의 잠재적 영토라는 식으로 생각해버린다. 그러니 2천 년 전 한사군이 평양에 있다는 건 민족반역자나 할 소리라 생각하고, 한민족 영토확장을 위해 한사군이 요서 지방에 있어야 한다고 우긴다.

환단고기의 부동산지상주의에 따른 자학사관.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 '영토'가 쪼그라든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서도 아니고, 해외 부동산 투기를 청동기시대까지 확장하는 땅따먹기 놀이를 위해서도 아니다. 대한민국은 반도 구석에 쳐박힌 달동네도 아니고 찌질한 나라도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신승리 사관'도 아니고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집 크고 땅 넓었다'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굳이 천부경이나 환단고기 같은 짝퉁이 없어도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자격이 있는 국민들이다. 물론 선무당이나 똥침도 필요없다.

#인권연대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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