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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484

'선을 넘어 생각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항상 떠오르는 두가지 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불교 격언, 다른 하나는 "항상 깨어있으라"는 복음서의 한 구절입니다. 2015년 12월에 미국 조지아로 출장을 가게 됐습니다. 생활체육 기획기사를 위한 취재가 목적이었습니다만, 따로 시간을 내서 박한식 조지아대 명예교수를 인터뷰하고 싶었습니다. 어렵게 연락이 닿았고 겨우 약속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박한식 교수 인터뷰 안한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북한을 50번 넘게 방문했다는 북한문제 전문가를 만나서 얘길 나눠보고 싶다는 순전히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벌인 일이었습니다. 애초에 조지아대학교가 애틀란타 시내에 있는 줄 알았다가 한시간 반 넘게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걸 나중에 알고.. 2018. 4. 2.
우리가 아는 만리장성은 어디서 왔을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신년사를 발표하는 영상을 보면 시진핑 뒤로 만리장성을 그린 그림이 보인다. 가히 만리장성은 중국을 대표하는 상징이나 다름없다. 그럼 만리장성은 언제 어떻게 중국의 상징이 되었을까.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리장성 이미지는 사실 근현대사의 산물이다. 1. 진시황이 쌓았다는 "장성"은 지금 우리가 아는 만리장성이랑 상관없다. "장성"은 전국시대 각 나라들이 여기저기 쌓은 걸 이어놓았다. 史記를 읽어봐도 "장성"에 대한 언급은 생각보다 적다. 게다가 당시 "장성"은 흙으로 쌓았고 위치도 지금과 같지 않았다. 2. 마르코폴로가 썼다는 동방견문록에는 "장성" 얘기가 단 한구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유는? 우리가 아는 만리장성은 그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기 .. 2018. 3. 31.
이덕일의 '정신승리 사관'과 과대망상 어디까지 갈 것인가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되새기기 위해서도 아니고, 부동산 투기를 고대사까지 확장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서울신문에서 벌써 11회나 연재중인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가 딱 그런 경우다. 명색이 동북항일연군(이북에서 말하는 조선인민혁명군)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근대사 전공 역사학자가 역사학의 기본인 사료비판은 깡그리 무시하며 '정신승리 사관'과 '우리 할아버지 집 크고 넓었다' 두가지로 서울신문 지면을 연초부터 도배하고 있다. 1월 9일자 첫 연재부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사회가 중심이 없고 혼란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역사관이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정신은 유아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훈계를 늘어놓는다. 역사관을 바로 .. 2018. 3. 28.
페미니스트, 낙인의 계보 발단은 지인 두 명과 나눈 대화였다. 한 여성 교수 얘기가 나왔는데 한 지인이 그 교수를 일컬어 “그 교수는 페미니스트”라고 했다. 다른 지인은 “전투적인 건 아니고 합리적인 페미니스트”라고 표현했다. “메갈리아 같은 이상한 쪽은 아니다”는 말도 등장했다.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그 구분법은 며칠 전 읽은 한 기사를 계기로 내 머릿속을 가득 메워 버렸다.너 페미니스트냐? ‘레드벨벳’이라는 걸그룹에서 활동하는 아이린. 3월 18일 팬 미팅에서 누군가 최근에 읽은 책이 뭐냐고 물었다. 아이린은 두 권을 말했는데 그 중 하나가 [82년생 김지영]이었다. 그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아이린을 비난하는 글이 폭주했다. 이유는 아이린이 그 책을 읽은 것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선언했다는 의미라는 거다. 심지어.. 2018. 3. 21.
액티브X 없이 연말정산 할 수 있다더니... 올해는 액티브X 없는 연말정산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정부에서 ‘이번엔 다르다’고 하는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올해부턴 액티브X 없는 연말정산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말 자체는 사실이다. 액티브X는 없어졌다. 대신 범용 실행파일(exe)을 설치해야 한다. 지난해 12월 18일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액티브X 제거 추진계획’ 보고하면서 국세청 연말정산 서비스에서 우선적으로 액티브X를 제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틀 뒤 국세청은 연말정산 관련 브리핑에서 “웹표준 기술로 교체해서 2017년도 연말정산에선 익스플러로 외에 크롬 사파리 등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선”이라며 액티브X 없는 연말정산을 강조했다. 과연 그럴까. 실제 연말정산을 해보니 “정부한테 속았다”는.. 2018. 2. 23.
에너지경제연구원의 황당한 정보 비공개 기자가 에너지경제연구원에 정보공개청구를 한 것은 2017년 9월 29일이었다. 10월 10일 답신이 왔다. 개인정보에 관한 내용이라 비공개한다는 내용이었다. 10월 17일 이의신청을 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4개월이 넘도록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접수완료’라고만 할 뿐 아무런 답변도 없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공공기관정보공개법을 시행한지 20년이 됐지만 현장에선 정보공개의 원칙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행정업무조차 방기하는 실정이다. 애초에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속한 23개 국책연구기관에 ‘에너지경제연구원에 소속된 연구진의 이름과 최종 학위를 받은 국가와 대학 (전공분야 명시) 정보’라는 동일한 내용으로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정부예산으로 운영되는 국책연구기관 연구진들의 국가별 편중 실태를 확인해.. 2018. 2. 21.
무역적자, 그것은 미국의 숙명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촉발시킨 무역분쟁의 배경에는 무역적자를 줄이겠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미국은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통해 누리는 지위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무역적자는 숙명일 수밖에 없으며, 미국의 보호무역조치는 미국의 패권질서만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정치경제 분야 전문가들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가 줄곧 문제삼아온 ‘글로벌 불균형’은 따지고 보면 미국 달러가 무역을 통해 전세계로 흘러가 세계경제에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달러는 사실상 기축통화로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수단이 된다. 반면 미국의 무역흑자는 해외에 있던 달러가 미국으로 유입된다는 것이고, 이는 곧 세계시장에서 달러 공급량이 줄어들어 유동성 위기를 부른다. 얼핏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세계.. 2018. 2. 21.
책으로 돌아본 2017년 평가 새해가 밝았습니다. 언제나 연말연시엔 책을 통해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2017년은 독서 성적이 최근 몇년에 비해 꽤 괜찮은 편입니다. 2만 7110쪽, 63권을 읽었습니다. 2016년에 50권을 읽은 것에 비하면 준수합니다. 한달 평균 5.3권이니 작년에 비해만 1.1권씩 더 읽은 셈입니다. 다만 논문은 2016년에 46편을 읽었는데 작년엔 23편밖에 읽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2017년 2월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논문을 예전만큼 읽지 않은게 티가 납니다. 연말에 역사책 위주로 양을 채우는 일이 작년엔 없었습니다. 꾸준히 읽었기 때문입니다. 7월에 기획재정부 출입기자가 되면서 세종에 상주한 영향이 있는 듯 합니다. 2017년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꼽아 봤습니다. 읽은 순서대로 10권을 골라보면 .. 2018. 1. 10.
외환위기 20년, "감기걸린 사람을 악성폐렴환자 취급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제조업보다는 금융과 서비스업을 중시한 것이 오히려 성장과 분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가 금융과 서비스업을 중시해 왔지만 근본적인 체질 강화를 위해서는 허약해진 제조업을 다시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이 제조업 투자를 늘리고 중소기업과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산업금융 시스템 복구가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4차 산업혁명 논의가 ‘제조업 패싱(건너뛰기)’으로 흘러가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상식’을 비판하며 “감기환자를 수술대에 올리는 바람에 위기를 확대재생산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와 함께 외환위기 과정을 .. 2017.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