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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자작나무책꽂이

책으로 돌아본 2020년

by betulo 2021.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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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2020년은 코로나19로 시작해 코로나19로 끝났습니다. 저처럼 영화도 로드무비를 좋아하고 낯선 외국 가는 기회가 있다면 어지간해선 마다하지 않는 사람에겐 무척 아쉬운 한 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나마 흔히 가긴 어려운 축에 드는 대청도-백령도 다녀온것 말고는 어디 하나 제대로 다녀온 적도 없이 한 해가 지나가 버렸습니다. 


연말부터 커피숍에 앉아있는게 불가능해진것도 꽤나 뼈아픈 일입니다. 사실 커피숍의 적당한 소음과 넓은 책상은 제가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때 꽤나 선호하는 학습환경이기 떄문입니다. 게다가 마스크쓰고 하는 것도 모자라 온라인으로 일본어 공부를 하라고 하니 이거 참 난감합니다... 올해는 코로나19가 좀 잦아들기를 기대해 봅니다. 


2019년 연말에 인사발령이 있었고,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 보건복지부를 담당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문제였습니다. 코로나19 시작과 함께 가장 정신없는 곳이 돼 버릴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래도 코로나19 와중에 공공의료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여러 기사를 쓴 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저는 현재 코로나19 방역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3단계로 할지 말지, 백신을 얼마나 빨리 맞을지가 아니라, 공공병상을 얼마나 마련하고 민간병상동원까지 포함한 병상동원체계 구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민을 바탕으로 코로나19 초기에 공공병상 비중이 매우 부족하다는 걸 진단하고, 2020년 최신통계를 바탕으로 계산해보니 공공병상 비중이 박근혜 때보다도 더 줄었다는 걸 지적했습니다. 정부가 뉴딜을 외치는데 정작 공공의료가 아니라 보건산업만 챙기는 걸 비판하면서, 2021년도 정부예산안에 공공병원신축예산이 0이라는 사실을 꼬집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결국 국민건강에 돈쓰기 싫다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 그로 인해 이른바 K방역이 갈림길에 섰다는 걸 짚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역사 속 전염병 이야기라든가, 손씻기가 의학상식이 되도록 했던 의사 이야기도 다뤄봤습니다. 


2020년은 바다, 그리고 해양정책에 눈을 떴다는 것도 언급할만하겠습니다. 조선에서 개성연락사무소를 보란듯이 폭파시키며 한국에 강력한 경고(인지 몽니인지) 날린 바로 다음날 배를 타고 방문한 대청도와 백령도를 통해 서해5도 평화문제를 살펴봤고, 논란 속 어선안전조업법과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을 살펴봤습니다.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경쟁이 격화하는 속에서 정부의 인식변화를 촉구하는 한편으로 서해5도 관련 기본법 제정 논의를 다뤘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의도치 않은 좋은 점이라면 저녁약속이 줄어들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책읽을 시간이 늘어난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2020년을 마무리해보니 한 해 동안 3만 7665쪽을 읽었습니다.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많습니다. 18년 평균이 2만 6493쪽이니 평균보다 1만쪽 넘게 더 많이 읽었습니다. (그래 고맙다 코로나 요 놈아.)




여전히 2005년 당시 120권, 2006년 93권에는 미치지 못합니다만 2020년에 77권을 읽었으니 세번째로 많이 읽은 해이기도 합니다. 2005년에는 무슨 책을 읽었나 되짚어보니 <심청>, <손님>, <모순>,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1~2), <쥬라기공원>(1~2), <잃어버린 세계>(1~2), <나폴레옹>(1~5) 등 소설을 열댓권 읽었습니다. 그에 비해 2020년에 읽은 소설은 <로마의 일인자>나  <풀잎관> 등 콜린 매컬로가 쓴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 1~2부가 전부입니다. 


월별로 살펴보면 12월에 11권(4780쪽)을 읽어서 가장 많이 읽었습니다. 두번째로는 2월 7권(4296쪽), 세번째는 10월 9권(4187쪽)입니다. 가장 적게 읽은건 1월(2권, 1312쪽)과 5월(2권, 1528쪽)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1월에 읽은 책은 <제도는 어떻게 진화하는가>와 <1962>인데 모두 500쪽 넘는 분량에 내용도 만만치 않은 대작입니다.


 5월에는 어줍잖게나마 4월 중순부터 읽기 시작한 <モンゴル帝國の興亡>이라는 일본어 책으로 진을 뺐습니다. 사실 일본어로 된 전문역사서라 오해 소지가 있겠습니다만 사실 이 책의 한국어번역본 <몽골세계제국>은 제가 대여섯번도 더 읽은 책인지라 사실상 한일 대역본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일본어 원서를 읽었다는건 무척 뿌듯한 경험이긴 합니다. 


자 그럼 올해도 어김없이 2020년에 읽은 77권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고 또 읽고 싶으며, 다른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을 골라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77권 가운데 엄선한 책이 20권이었는데 그 중에서 하나씩 하나씩 지워가며 10권을 고른다는게 참 마음이 아픈 노릇입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뽑은 10권을 읽었던 순서에 따라 소개해 봅니다.   


<제도는 어떻게 진화하는가>

역사적 제도주의는 국제비교에서 특히 빛을 발하는데, 이 책이 딱 그렇습니다. 독일과 영국, 미국, 일본 등 4개국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숙련’을 제도형성과 변화라는 관점에서 살폈습니다. 매우 딱딱한 내용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독일과 영국, 미국, 일본에서 직업훈련 제도가 어떻게 변화했고 노동숙련에 어떻게 성공하거나 실패했는지가 역사다큐처럼 펼쳐집니다. 


<결정의 본질: 누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가>

요즘은 미국과 중국은 반드시 필연적으로 쌈박질할 수밖에 없다는 기우제를 지내며 약팔고 다니는 바람에 저를 꽤나 실망시키긴 합니다만 그레이엄 엘리슨은 이 책만으로도 거장의 반열에 오른 학자입니다. 쿠바 미사일위기라는 사례를 통해 합리적 행위자모델, 조직행태모델, 정부정치모델이라는 세단계로 바닥까지 파헤쳐가면서 정부정책결정의 본질을 추적합니다. 우리가 정책결정을 설명할때 매우 자주 범하는 선입견과 오류를 산산조각내고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는 책입니다. 


<면화의 제국>

자본주의 역사의 기원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해석이라는 점에서 첫장부터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것 같은 책입니다. 제 어릴때만 해도 밭에서 키우는 목화를 흔하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바로 그 목화야말로 자본주의를 만든 비밀의 열쇠였다는 걸 시간을 거슬러 공간을 넘나들며 보여줍니다. 면화를 매개로 공업이 발달하고 식민지를 만들고 노예를 유통시키며 결국 지구자본주의로 확장됩니다.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

병자호란에 대한 ‘상식’으로 통용되는 건, 문약에 빠진 조선 위정자들의 무능, 중국만 쳐다보는 사대주의, 자주외교를 펼치려던 광해군을 몰아낸 자업자득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기존에 알던 병자호란에 대한 모든 상식을 하나부터 열까지 해체해버립니다. 병자호란의 원인과 과정, 결과와 영향 모든 걸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건 역시 이 책이 기존 한문문헌에 더해 후금측이 직접 쓴 만주어 문헌을 연구에 적극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로 괴로운 2020년에는 천연두가 병자호란에 미친 엄청난 영향력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

<지방도시 살생부>와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에 이어, 지방살리기를 위한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쓴 기존 책에서 제시했던 지방살리기 대안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책결정자들에게 꼭 권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850만명에 이르는 수도권 베이비부머들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것이야말로 수독권집중완화와 지방살리기, 거기다 고령화 대응까지 된다는 대목에선 무릎을 칠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원내교섭단체 구성까지도 가능할 듯 보였습니다만 결과는 실망을 넘어 절망까지 느끼게 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헛된 꿈은 아니었을까 하는 자괴감 속에서 앞서간 세계 각국의 진보정당들의 성공과 실패를 되짚어보며 뭐랄까 힐링 비슷한 걸 느낍니다. 한떄는 1인1표제가 공산당선언에 등장하는 혁명적 구호였다는 걸 떠올려보면 어제의 진보적 가치가 오늘은 보수적 가치가 되고, 어제의 혁명적 요구가 오늘은 기득권 논리가 된다는 걸 생각하게 됩니다. 스스로 진보하지 못하는 진보는 도태되고 낙오할 수밖에 없다는걸, 반대로 스스로 혁신하고 실험하는 진보는 역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걸 느끼게 하는 사례로 가득한 책입니다. 특히, 주둥이와 키보드로만 진보하다 망한 사례가 한가득 등장한다는 것도 특별히 언급하고 싶습니다. 


<미중카르텔>

앞에서 그레이엄 앨리슨을 비판했습니다만, 미중이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익숙하고도 게으른 인식을 박살내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미중관계사의 이면을 추적하면서 카르텔이라는 프레임을 내세웁니다. 이는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방향과 태도에 대한 매우 예리한 충고가 아닐수 없습니다. 


<김육 평전>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 세상에 배우고 따라야할 인물을 한명만 꼽으라면 주저없이 꼽을 잠곡 김육 선생을 다룬 두툼한 평전입니다. 대동법 시행을 이끌었다는 것만으로도 조선 500년을 이끌어 최고 반열에 오를 정치가로 부족함이 없겠습니다만 이 책은 거기에 더해 동전 통용책과 상공업 진흥 등 시대를 앞서간 경세가, 거기다 외교가와 군사개혁가, 학자, 거기다 시헌력 시행 다채로운 업적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10대에 임진왜란을 겪고 30대에 출세의 꿈을 접고 은거한 속에서도 공부와 사색을 게을리하지 않은 끝에 70대에 동전통용책과 대동법을 굽힘없이 추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게 개혁이구나, 개혁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하는 걸 느낍니다. 입으로만 개혁 외치며 눈은 좌고우면하고 귀는 팔랑팔랑하시는 분들에게 꼭 권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일본인 이야기>

조선에 대한 화해협력정책 혹은 포용정책, 이른바 ‘햇볕정책’에 반대하는 분들은 없을 겁니다.(정정합니다. 물론 21세기에도 천동설 믿는 분들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에게 햇볕정책을 쓰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외교란게 어차피 국익을 위해 있는 거라면 일본과 갈등과 반목만 되풀이하는 건 모능력을 넘어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미중일러 4대 강국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속에서 활로를 찾는다면 미중일러를 더 잘 알려는 노력이 필수이겠습니다만 어찌 된 노릇인지 왜구니 짱깨니 하는 ‘인류보편가치에 반하는’ 언사만 활개를 칩니다. 이런 시국에 일본을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잘 쓴 책이 있다는 건 한국 지식생태계 뿐 아니라 국익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구의 힘>

2020년은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감소가 시작된 해입니다. 2038년이면 대한민국 인구가 4900만으로 줄어들고 그 속도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2025년이면 전체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이 20%를 넘어서고 2050년이면 40%를 넘깁니다. 물론 건강상태를 고려하면 앞으로도 60대를 고령층으로 볼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긴 합니다만, 사실 인구 문제에서 더 심각한 건 저출산입니다. 2017년에 연간 출생아가 30만명대로 떨어졌고 2020년에는 20만명대로 떨어졌습니다. 출산을 기피하는 건 ‘이렇게 힘든 세상’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불만과 ‘출산으로 인한 불이익’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불안이 결합한 것이겠지요. <인구의 힘>은 다양한 역사적 사례분석을 통해 인구문제가 국가와 세계에 끼친 광범위한 영향을 추적합니다. 단순히 애를 많이 낳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게 아니라 행복한 사회를 위한 인구정책을 분석하는게 미덕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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