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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자작나무책꽂이

책으로 돌아본 2019년

by betulo 2020.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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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을 뒤로 하고 2020년이 됐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는 모두 꺾어지는 숫자를 좋아합니다. 뭔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며, 믿고 싶고 듣고 싶었던 어떤 의미에 귀기울입니다. 하지만 그 꺾어지는 숫자라는건 그 숫자에 담긴 어떤 상징을 공유하는 사람들한테나 의미가 있겠지요. 서기 1000년을 앞두고 유럽인들이 아마게돈 걱정에 불안해하는걸 무슬림과 유대인들이 생뚱맞게 쳐다보았을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꺾어지는 숫자를 맞아 지나간 꺾어졌던 숫자들을 되돌아보는게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을 듯 합니다. 저로선 20년 전인 2000년 1월초가 떠오릅니다. 당시 저는 어학연수를 위해 미국에 있었고, 21세기엔 뭔가 20세기보다 더 나은 세상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사람들과 공유했습니다.

2020년은 저로선 몇가지 변화와 함께 시작합니다. 먼저 2019년 12월 초 인사발령이 있었던 덕분에 체육부를 떠나 정책뉴스부로 왔습니다. 2014~15년에 이어 복귀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출입처는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 보건복지부 등이 되겠습니다. 주로 담당하는 예전에 안전행정부에서 행정자치부로 바뀌었던 행안부 되겠습니다. 과거 2년간 출입했던 곳이다 보니 당시에 알고지내던 과장님들이 이제 국장이 돼 있고, 당시 국장님들이 이젠 차관과 실장님들이 돼 있습니다. 

 정책뉴스부로 오고 보니 2014년 당시 부당하게 옷을 벗었던 조성완 전 소방방재청 차장 인터뷰도 하며 6년만에 통화도 하고, 행안부에서 지방재정365에 통계입력 오류를 일으켰던 일을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행안부가 악성 지방세 체납자를 막기 위해 내놓은 대책이 국회에서 막혀버린 일을 추적하기도 했고요. 정부부처에서 펭수를 활용한 홍보전략에 목을 맨다거나 공무원들이 개인적으로 유튜브 방송을 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든다는 관가 소식도 전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건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을 신년인터뷰한 일입니다. 무척 재미있고 기억에 오래 남을 시간이었습니다. 부서 옮기고 나서 이래저래 일이 많긴 합니다만, 솔직히 (야구팬들 여러분들에겐 미안한 노릇이지만) 야구기사 쓰는 것보단 백만배 더 즐겁습니다. 

그런 와중에 2019년을 떠나보냈으니 한해 총화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책으로. 

2019년 한 해 동안 읽은 책은 모두 75권, 3만 3741쪽입니다. 최근 15년간 권수로는 5번째입니다.(2005년에 120권, 2006년에 93권, 2009년에 77권, 2014년에 75권을 읽었습니다.) 쪽수로는 2005년(3만 6353쪽)에 이은 최고기록입니다. 논문은 18편, 시사IN은 51호 읽었습니다. 월평균 6.3권, 2812쪽을 읽은 셈입니다. 

월별 추이를 보면 1~4월에 꾸준히 증가하다가 5월에 급감했습니다. 2019년에 기획연재로 썼던 <재정분권> 기획을 위한 해외출장 준비 등이 겹치면서 저조했던 시기였습니다. 6~7월에 각각 9권인데 6월엔 해외출장으로 비행기를 오래 탄 덕분이었던 듯 하고요. 12월엔 체육부를 떠나고 보니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 2019년에 읽은 75권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고 추천해주고 싶은 <내맘대로 추천도서 10권>을 선정해 보겠습니다. 

월별 독서량 추이(기준_ 권)

<조선, 철학의 왕국: 호락논쟁 이야기>(푸른역사, 2018)
정말 호락호락하지 않은 조선 후기 철학논쟁을 일목요연하고 상세하게 분석한 역사책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조선 후기 학자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이 주제를 고민했을까 경외감이 들면서도, 과연 이게 그렇게 머리 싸매고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하며 토론할 문제였을까 하는 회의감이 드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고민을 실감나게 파헤친 저자의 노력은 존경심을 갖지 않을수 없습니다. 

<1945: 20세기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6개월>(2018, 모던아카이브)
1945년 얄타회담 현장에서 동행취재를 한 것같은 꼼꼼한 묘사가 인상적인 역사논픽션입니다.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현지르포를 읽는 듯 생생한 전개 덕분에 5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당시 루스벨트-투르먼, 처칠, 스탈린의 동상이몽 오월동주의 시말을 잘 정리했습니다만, 미-영에 쏠려있는 시각 또한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마오쩌둥1~2>(2019, 교양인)
20세기 신중국을 만든 거인인 마오쩌둥의 출생부터 사망, 그리고 사망 이후까지 1000쪽 가량에 담았습니다. 평면적인 영웅담도 아니고 단선적인 반공서적도 아닌 입체적으로 공과를 담은 공력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특히 마오쩌둥의 사생활을 다룬 부분에서 저자의 균형감각이 돋보입니다. 

<지방도시 살생부><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2017/2018, 개마고원)
솔직히 <지방도시 살생부>를 읽자마자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를 사서 읽었습니다. 두 권을 모두 읽자마자 마강래 중앙대 교수에게 연락해 찾아갔습니다. 책을 들고, 저자 서명을 받기 위해. 
인구감소와 지역간 격차는 현재 한국 사회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도전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문재인 정부 뿐 아니라 수십년째 국정과제입니다. 그런데 상황은 갈수록 나빠진다고 합니다. 혹시 진단과 처방이 잘못된 건 아닐까요. 익숙한 진단과 처방을 뒤집는 도발적인 문제제기에 귀를 기울일 때입니다. 

<문명과 전쟁>(2017, 교유서가)
인류역사와 함께 한 전쟁이라는 주제를 천착한 대작입니다. 특히 저로선 봉건제사회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왜 봉건제가 유럽과 일본에서만 발생했는지 다룬 부분을 읽다보면 봉건제가 인류역사 발전의 필연적인 단계인 것처럼 인식하던 것의 문제점에 눈이 틔이게 됩니다. 

<왜 제조업 르네상스인가> (2019, 지식노마드)
제조업 시대는 갔으니 서비스업 혁신을 해야 하자는 얘긴 숱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정부 경제정책을 다루는 핵심인사가 "해법은 의료산업"이라며 한시간 동안 게거품 무는 걸 본 적도 있을 정도니 할 말 다 했지요. 하지만 이 책을 읽고도 그런 소리가 나온다면 게으른 사람이거나 나쁜놈이거나 둘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2018, 문학동네)
핀란드에서 나고 자라 미국에서 살게 된 저자가 발견한 북유럽 사회제도의 비교우위론이라고나 할까요. 사실 비교우위+절대우위론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습니다. 북유럽 사회제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장점에 더해 우리가 추종하는 미국식 시스템이 얼마나 끔찍한 미래가 될 수 있을지 경종을 울리는 의미도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계획된 불평등: 여성 기술인의 배제가 불러온 20세기 영국 컴퓨터 산업의 몰락>(2019, 이김)
이 책을 읽고 보니 영국이 남녀평등 문제에 조금만 신경을 더 썼다면 21세기 정보기술 강국은 미국이 아니라 영국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로는 낡은 사고방식이 새 시대를 갉아먹습니다. 영국에선 컴퓨터 전문인력이었던 여성들을 단순인력으로 과소평가하고 무시하다가 경제혁신의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과연 얼마나 다른지 떠올려봅니다. 

<小說 君の名は>(2016, 角川文庫)
책 자체보다도 태어나 처음으로 완독한 일본어 원서라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전체 문맥의 절반이나 이해했을까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아둥바둥 끝까지 읽었습니다. 

<정민의 다산독본, 파란(波瀾)>(2019, 천년의 상상)
다산 정약용의 고민과 좌절이 책을 잡은 손을 통해 서늘하게 제게 전해지는 듯 합니다. 다산같은 시대의 천재조차 '시험'에 합격을 못해 10년 가량 방황과 번뇌에 쌓여있었다는 대목에선 시험 한방으로 인생항로가 달라지는 세태를 되돌아보게 되고, 다른 생각 다른 신념을 받아들이지 못해 머리를 옧죄는 모습에선 소수의견조차 인정을 못해 툭하면 고소장에 성조기인 세종로가 떠오릅니다. 

10권에는 들어있지 않습니다만 어쩌다보니 제 이름을 달고 나온 책 두권이 2019년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세금폭탄, 부자감세, 서민증세>는 박사논문을 바탕으로 대폭 수정보완한 내용을 담았고요. <천사 미국과 악마 북한>은 김성해 대구대 교수와 함께 작업한 내용을 담았습니다.(좋은 기회를 주고 부족한 후학을 이끌어주신 김 교수 형님께 이 자리를 빌어서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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