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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3. 11:49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 "소수의견이야말로 건강한 사회의 척도"

“소수의견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지 보여 주는 척도다.” ‘미스터 소수의견’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위대한 반대자’였던 김이수(67) 전 헌법재판관은 지난달 26일 경기 고양시 자택에서 서울신문과 가진 단독 신년 인터뷰에서 소수의견과 민주주의 사회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헌법재판관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과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 등 당시 뒷얘기를 비롯해 최근 정치적 양극화 현상에 대한 의견을 가감 없이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치 사법화, 사법 정치화 모두 경계해야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하다. 한국을 갈라놓고 있는 정치적 양극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극단화 해소를 위한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느낌이 든다. 배제와 혐오, 차별이 넘쳐난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에서 만든 부정적 유산이 여전하다고 할 수 있다. 나도 뚜렷한 방책은 없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생각하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하다. 무조건 반대쪽 사람의 말은 근거도 없다고 하는 자세가 아니라 들여다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배제와 혐오, 차별을 내면화하게 된다. 남북분단과 전쟁, 최근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불행한 죽음과 박 전 대통령 탄핵과 구속 등을 거치면서 상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축적되지 않았나 싶다.”

 -정치적 극단화 와중에 정치의 사법화, 또한 그 반대로서 사법의 정치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가의 중요한 정책 결정은 정치적 공론장을 통해야 한다. 타협이 힘들다는 이유로 혹은 부담스런 사안에 손을 못댄채 사법부에 맡기는게 정치의 사법화다. 낙태죄나 간통죄, 호주제, 양심적 병역거부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쳤다. 이견을 조율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회적 현안을 해결하는 역할을 정치가 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고소, 고발부터 하고 보는게 일상이 돼 버렸다. 헌법재판소나 법원으로선 정치 쟁점을 다루지 않을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고, 어느 순간부턴 법원이 정치 현안을 판단하는게 당연한 것처럼 됐다. 그런 과정이 심해지면 사법의 정치화가 이뤄진다. 통진당 사건은 정치의 사법화인 동시에 사법의 정치화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헌법재판소나 법원도 그렇고 검찰과 경찰 등 법을 다루는 기관은 권력행사를 절제해야 한다. 그걸 헌법학에선 ‘과잉금지의 원칙’ 혹은 ‘비례의 원칙’으로 표현한다. 이를 위반하는 것은 헌법위반이 된다.”
 
 소수의견 활발해야 민주주의 꽃핀다

 -많은 이들이 김이수 헌법재판관하면 ‘미스터 소수의견’이란 별명을 떠올린다.
 “헌법재판관으로 일하면서 혼자서 낸 소수의견만 8건이었다. 그래도 사적으로는 다른 재판관들과 잘 지냈지만 2014년 12월에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한 정당해산심판 사건에선 많이 외로웠다. 8대1로 혼자만 의견이 다르니 상의할 사람이 없었다. 해산청구를 인용하는 결정문 초안에 ‘쓸모있는 바보들’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구절을 봤는데 반대의견을 쓰는 나를 가리킨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 표현을 바꿔달라고 요청을 했다. 다른 재판관 몇 명도 내 의견에 동의했는데 집필자는 초안을 다듬는 와중에도 그 표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정당해산과 함께 의원직 박탈 문제도 논란이 됐다.

 “헌재는 통진당 소속 비례대표 2명과 지역구 의원 3명에게 의원직 상실 결정을 했다. 나로선 소수의견으로라도 의원직 상실은 안된다는 언급을 따로 하지 않은 게 후회가 된다. 현행 헌법이나 법률 어디에도 정당해산을 하면 국회의원 자격도 상실한다는 규정은 없다. 소속 정당이 해산됐다는 이유만으로 소속 의원의 자격을 박탁해 버리면 국민의 대표라는 성격이 훼손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수발언을 하기 어려운 사회에선 창의적인 생각도 쓴소리도 힘들 것 같다. 소수의견이 눈치보지 않는 사회가 되려면 어떠해야 할까.
 “2017년 6월 헌법재판소장 청문회 당시 자유한국당 등에서 ‘통진당 해산을 반대한 재판관은 헌재소장이 될 자격이 없다’며 나를 비난했다. 그런 것조차 허용을 할 수 없는 대한민국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다수의견만 강요하는 사회는 독재와 파시즘으로 이어질 여지를 준다. 민주사회는 다양한 생각을 보장하고, 소수의 생각이 주눅들어 사멸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그런 면에서 보면 소수의견이 있다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는 뜻이다.”
 
 “사법농단 충격받아”

 -당시 법원행정처에서 통진당 소속 지방의원직 박탈 소송에 판결방향을 지시하는 문건을 만들었다는게 ‘사법농단’ 사건 와중에 드러나기도 했다.
 “최근 ‘사법농단’ 사건은 법원 내부에서, 그것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조직을 중심으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사건이어서 충격을 더한다. 핵심 의혹은 대체로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재판거래, 국제인권법연구회 탄압, 판사 사찰 등이다. 유죄 여부는 재판을 거쳐 드러나겠지만 대체로 국제인권법연구회 탄압이나 판사 사찰은 사실인 듯 하다. 재판거래 역시 시도 자체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도 자체만으로도 국민의 신뢰는 손상될 수밖에 없다. 재판 절차란 결국 소통 절차다. 법관은 독립된 지위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토론과 대화를 주고받는 과정을 이끈다. 재판관들은 스스로 재판의 독립을 지켜야 한다.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의연함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 재판 독립은 좋은 재판을 위한 것이다. 재판은 결론 뿐 아니라 결론에 이르는 과정 역시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설력력이 있는 논증은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개방성에서 출발한다. 이 대목에서 용기와 함께 절제를 필요로 한다. 좋은 재판을 위해선 재판에 대한 평가, 특히 시민사회의 평가가 활발해져야 한다. 법관들 역시 허심탄회하게 재판에 대한 평가를 들을 필요가 있다.”
 
 박근혜 탄핵심판 미소의 의미는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선 만장일치가 나왔다.
 “나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그 날 내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장하는 걸 보고는 탄핵을 직감했다는 얘길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사실 탄핵소추와 심판 과정에서 몇 차례 중요한 고비가 있었다. 무엇보다 촛불집회가 있었다. 탄핵 찬성 여론이 다음으로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전체 300명 가운데 3분의2를 훌쩍 넘는 234명 찬성으로 가결됐다는게 중요했다. 이는 정확하게 탄핵에 관한 찬성여론을 반영하고 있었다. 탄핵심판은 초기엔 대체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분위기였다. 중간에 ‘최순실이 국정에 광범위하게 개입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문화체육 등 일부 분야에 국한됐다면 탄핵까지 갈 건 아니지 않느냐는 논의도 한 때 있었다. 막판에는 대리인단에 합류한 변호사들이 법정을 모욕하는 변론 태도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박 전 대통령에겐 확실히 불리하게 작용했다.”

 -최근 광화문 주변에선 ‘탄핵은 사기’라며 박 전 대통령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가 몇달째 이어지고 있다.
 “집회에서 나오는 말을 보면 이것저것 눈치 안보고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 비난하는 것도 거리낄게 없다. 표현의 자유는 확실하게 누리고 있는 것 같다. 도를 넘는 지나친 표현도 많다. 하지만 표현이 도를 넘을 땐 오히려 스스로 설득력이 없어진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얼마나 제대로 자기 의견을 내고 있느냐, 그리고 사회가 그걸 얼마나 보장하느냐 하는 점이다. 헌재에선 소수의견이 그런 구실을 한다. 소수의견은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좋은 답을 찾다가 나오는 것이다. 소수의견에 더 귀를 열어 주고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더 책임을 느끼는 사회가 다원적인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최근 논란이 된 한기총 집회에 대해 어떻게 보나.
 “1972년부터 교회를 다녔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인권 증진에 기득교가 큰 역할을 했다. 최근 논란이 되는 언행을 보면 과연 기독교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교회를 정치집단으로 만드는걸 목표로 하는게 아닌가 싶어 매우 걱정스럽다.
 
건강비결은… 마라톤·고양이 키우기·판소리

 -헌법재판관에서 물러난 뒤로는 어떻게 지내나.
 “숙소나 일정 모두 아내와 둘이서 준비했다. 보름 넘게 자유여행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했다. 특히 포루투갈 리스본에 있는 아줄레주 박물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업무상 해외에 간 걸 빼면 부부동반으로 장기여행을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다. 재작년부턴 길고양이도 거둬서 키우고 있다. 몸은 까맣고 발만 하얀색이라 이름을 ‘흰발이’로 지었는데 손녀를 키우는 느낌이다. 판소리를 1년 넘게 배우다가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맡으면서 시간도 없었고 하필이면 그 해 2월 선생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더 진도를 못나가고 있다. 2020년엔 판소리도 다시 배우려고 한다.”

 -격무 속에서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궁금하다.
 “호수공원이 집에서 가깝다 보니 2002년부터 호수공원에 나가 뛰기 시작했다. 2003년 봄에는 호수마라톤대회 하프마라톤으로 출전했다. 사실 아내가 한 해 전 하프마라톤을 완주하는걸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시작하게 됐다. 그 뒤로는 마라톤 인생에 접어들었다. 2013년에 처음 완주를 했는데 당시 기록이 5시간 5분이었다. 지금까지 19번 완주를 했다. 처음 시작하고 나서 8년 가량 아내를 추월을 못하다가 나중에야 아내를 따라잡았다. 지금도 일주일에 너댓번 호수공원에 가서 6~7㎞를 뛴다.

 -마라톤 자랑을 해준다면.
 마라톤은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사실, 마라톤은 나이가 들면 그 재미를 더 잘 알게 되는 운동이다. 대개 30대 후반이나 40대 후반에,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그 때가 마라톤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다. 내 목표는 75세까진 꾸준히 7㎞를 뛰는 거다. 무리하지만 않으면 상당히 오래 할 수 있다. 무리하면 부상당하기 십상이다. 나는 지금까지 부상없이 뛰었다. 무리하지 않는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걸어온 길


 1953년 전북 고창 출생. 광주 전남고, 서울대 법학과 졸업.

 1977년 제19회 사법시험 합격

 1991~1993년 대법원 재판연구관

 2002~2006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2011~2012년 사법연수원장

 2012∼2018년 헌법재판소 재판관

 2018∼현재 전남대학교 석좌교수

 2018년 청조근정훈장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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