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의 역설’이라는 실험이 있다. 놀이터에서 노는 어린이들을 관찰해보니 개방형 놀이터에선 한가운데 옹기종기 모여있는 반면 울타리가 있는 놀이터에선 공간을 훨씬 넓게 쓰며 뛰어논다는 걸 가리킨다. 정부가 공무원 유튜브 활동에 대해서도 울타리를 만든다. 규제로 비칠 수도 있지만 한계를 명확히 하면 양성화를 위한 공간도 열린다. 가이드라인은 내년 1월 중순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25일 정부 고위관계자들에 따르면 인사혁신처와 행정안전부, 교육부는 이르면 다음주 정부부처 합동으로 ‘공무원 유튜버 가이드라인’을 발표한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국가직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개인방송 사용 현황을 전수조사했다”면서 “교원을 제외한 국가직 공무원은 수십명이 개인 차원에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중”이라고 밝혔다.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사전신고와 겸직 허가를 받은 뒤, 근무영향 없는 선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공익적인 내용은 장려하되 품위를 손상시키는 내용이나 정치적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내용은 규제한다. 취미나 여가, 자기계발 등 사생활에 해당하는 건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원칙적으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인사처 관계자는 “무조건 막겠다는 게 아니다. 할 수 있는 범위와 할 수 없는 범위를 명확히 하면 일선 공무원들이 불필요하게 혼란을 겪지 않아도 된다”면서 “취미생활이나 재능기부를 활성화하는 순기능도 기대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공무원 유튜브 활동은 최근 차관회의에서도 화제가 됐다. 한 정부 고위관계자는 “업무에 지장을 주지도 않고 기밀누설을 하는것도 아니라면 굳이 막을 명분이 없다는게 참석자들 전반적인 의견이었다”고 밝혔다. 인사혁신처 관계자 역시 “공무원 취미생활까지 막는건 시대착오적이라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인사처에선 장기적으로 공무원 유튜브 활동이 재능기부나 공익적 내용을 알리는 역할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내비쳤다.
현장 공무원들 반응은 다양하다. 관심은 많았지만 눈치가 보여 유튜브 활동을 주저했던 공무원들은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나도 유튜버를 해보고 싶다”는 이들도 있었다. 중앙부처 공무원 A씨는 “공무원도 사람인데 취미활동을 영상으로 올리는게 문제될 게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자체 공무원 B씨는 “공무원이라는 이유만으로 표현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제한받아선 안된다”면서 “업무시간에 열심히 일하고 그 외 시간에 유튜브 활동을 해서 수익이 난다면 그걸 막는게 맞는지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반대론도 나왔다. “일하기도 바쁜데 시간이 어디있느냐”며 시큰둥해 하거나 “괜히 ‘한가한가 보다’는 소리 듣지나 않을까”하며 반신반의하는 의견도 있었다. 정부부처 공무원 C씨는 “유튜버를 해서 수익이 나면 그것도 문제가 될 것”이라면서 “만약 온라인상에 구설에 휘말리면 곧바로 인사평가로 직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부처 D 주무관은 “아무리 취미라지만 굳이 서류까지 만들자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라며 “게다가 업무가 많아 개인적으로 영상을 만들어 올릴 여유도 없다”고 말했다.
공무원 유튜브 활동을 허가하는 것에 대해선 근무기강, 의도하지 않은 기밀누설 등 다양한 우려도 존재하는게 사실이다. 인사처에선 1000명 가까이 유튜버로 활동하는 교원들이 참고가 된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지난 7월 시도교육청과 협의해 ‘교원 유튜브 활동 복무지침’을 마련했다. 당시 발표를 보면 교원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은 976개, 교사 유튜버는 934명이다. 특히 ‘랩하는 선생님’으로 유명한 이현지 경기 충현초 교사의 유튜브 채널 ‘달지’는 구독자 수가 36만명이나 된다.
이현지 교사는 전화 인터뷰에서 “유튜브 활동을 통해 학생들과 소통하는 데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미디어 활용 교육도 고민하게 된다”면서 “유튜브 활동이 더 좋은 교사가 되는데 디딤돌이 된다. 다른 교사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무원들은 문제를 일으키면 안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다. 그래놓고 혁신이 되겠느냐”면서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기준이 명확해져 비생산적인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혼공TV’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허준석 선생 역시 유튜브가 가진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그는 “EBS 강의를 오래 했는데 학생들이 3~4년 전 강의자료를 찾아보기 쉽게 하려다보니 유튜브 채널을 만들게 됐다”면서 “학생들에게 어떻게 다가설까, 어떻게 교육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유튜브 활동이 한 대안이 된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고 말했다. 그 역시 “유튜브 자체를 잘 모르는 관리자들을 설득하는데 가이드라인이 도움이 된다”면서 “역으로 관리자들도 가이드라인을 보고 용기를 내서 교원들에게 권장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유튜브를 포함한 인터넷 개인방송 활동을 조사한 인사처에서 가장 신경을 쓴 건 광고수익이 발생할 때 겸직금지 조항을 적용하는 문제였다. 현재 유튜브 활동을 통해 수익이 발생하려면 구독자 1000명 이상, 연간 영생 재생시간 4000시간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이와 관련 이현지 선생은 지난 10월 유튜브 영상을 통해 자신의 수익을 공개했다. 그는 “최근 한 달 기준으로 25만 6000원 벌었다”면서 “같이 영상 만드는 분들과 분배를 하기 때문에 실제 내 통장에 들어오는건 10만원 정도다. 이 정도 수익도 내 통장에 들어오기 시작한지 얼마 안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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