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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역사이야기

‘조선구마사’를 통해 역사왜곡을 생각한다

by 자작나무숲 2021. 4. 10.

최근 ‘조선구마사’라는 드라마를 두고 벌어진 역사왜곡 논란은 결국 드라마를 조기종영하는 걸로 끝이 났다. 사실 애초에 이러저러한 논란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차분히 생각할 틈도 없이 진행된 드라마 자체보다도 더 드라마 같은 결말이 내게는 꽤나 놀라웠다. 

논란을 촉발한 계기는 평안도 의주로 입국한 선교사들에게 월병 등 갖가지 중국 요리를 대접하는 장면이었다고 한다. 드라마를 제작한 처지에선 ‘사극도 아니고 좀비가 나오는 판타지물인데 역사왜곡 논란이 웬말이냐’고 억울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애초에 태종과 세종 등 역사적 인물을 내세운게 너무 안일했다는 생각도 든다. (드라마 ‘킹덤’을 지나치게 의식했던 건 논외로 치겠다.) 

그냥 ‘해를 품은 달’처럼 적당히 조선시대스러운 방식으로만 처리했더라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번지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해보면 모호한 가상의 시대를 설정했더라도 요즘처럼 김치나 한복 원조논쟁이 있는 시국에서 논란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하다. 

과연 ‘조선구마사’는 역사를 왜곡했을까. 사실 그 문제를 토론하는건 내 몫은 아니다. 그 드라마를 본 적도 없고, 이제 와선 보려고 해도 1차사료에 해당하는 드라마 원본을 확인하기도 현실적으로 힘들게 됐기 때문이다. 다만 토론해보고 싶은 주제는 이런 것들이다.

만약, 그 드라마에서 선교사들이 대접받았다는 음식이 전주비빔밥이었다면 어땠을까. 선교사들과 충녕대군(훗날 세종)이 치맥 비슷하게 생긴 음식으로 러브샷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고 한다면 지금처럼 시끄러웠을까.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서, 베이징에서 조선 사신들과 만난 선교사들이 “교황청 문서고에서 옛 문서를 보니 이 곳은 예전에 ‘코리’라는 강대한 나라가 다스렸던 땅이라는 기록이 있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집어넣었더라면 역사왜곡 논란이 벌어졌을까 안 벌어졌을까. 

 

 

사실 한국에서 만든 사극이라면 드라마나 영화 가리지 않고 일부러 안본지 꽤 오래됐다. 어쩔 수 없이 본 적도 물론 있지만 한결같이 후회만 했다. 기본적인 역사고증에 너무 무신경한게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령 ‘명량’은 ‘올바른 역사 교과서’ 시책에 부합하는 우주의 기운이 너무 강하게 느껴져서 30분 정도 뒤부턴 아예 중간중간 졸았다.(물론 막판에 조선 수군이 엄청난 속도로 박치기 퍼레이드하는 장면은 잠이 확 깰 정도로 참신하긴 했다.)

‘안시성’에선 느닷없이 ‘킹덤 오브 헤븐’의 오마주(그래 오마주라고 믿어보자)가 등장하는데 물론 이 장면도 충분히 웃겼다. 정작 역사학자들한테서 받은 조선시대 전술과 무기체계 자문을 성실하게 반영하려고 노력했던 건 역사물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킹덤’이었다는건 꽤나 아이러니다.   


단순히 고증만 문제되는 게 아니다. 어떤 드라마는 정말이지 해도 해도 너무한다. ‘연개소문’에선 고구려가 얼마나 위대한지 설명하면서 환단고기를 근거로 드는 내레이션이 나오고, ‘태왕사신기’에선 산동반도부터 절강성 유역까지 고구려와 백제 영역으로 표시한 지도가 버젓이 벽에 걸려 있었다. 하지만 이런걸 두고 역사왜곡 논란이 뜨거웠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불과 얼마전에 신문에 정색하고 ‘헝가리 마자르족이 부여족의 후예’라거나 ‘낙랑군이 중국 요서 지방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글이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실리는데도 역사왜곡 논란은 변변치 않았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역사왜곡 논란이란 뭔가 '우리'를 욕보이거나 '우리나라'를 비판하거나 '우리 조상들'을 비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에만 해당되는 것인가.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우리'라는 건 이북에서 감히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여긴다는 수령님과 과연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더구나 '우리'가 그 어떠한 비판도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성불가침하다면  그것은 최근 그렇게나 비판받는 '비판을 용납할 수 없는 조국 혹은 김어준'과 다를게 무어란 말인가. 


요즘 중국이나 일본과 관련한 역사왜곡 논란은 꽤나 예민한 주제다. 동북공정이니 일제시대 같은 주제와 연결되면 파괴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역사공부가 즐거운 것은 ‘우리 조상은 위대했다’거나 ‘우리 조상들은 넓은 부동산 가진 땅부자였다’는 걸 발견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알고보니 그거 우리가 원조’라는 걸 깨닫기 위해서도 아니다. 역사는 족보도 아니고 등기부등본도 아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 보면 세상 모든 역사는 ‘외국사’가 아닐까 싶다. 가령 조선이라는 나라나 에도막부 시절 일본은 국가목표와 운영원리, 작동방식 모두 현대 대한민국이나 일본과 너무나 다르다. 청나라와 현대 중국은 또 어떤가. 한족들에겐 황제라는 걸 강조하는 한편으론 여름마다 열하산장에 행차해서 만주와 몽골 귀족들에게 칸으로서 위엄을 세우던 청나라 지배층 모습은 현대 중국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이질적이다. 다시 말해, 한국인에게 조선은 외국이다. 중국인에게 청나라는 외국이다. 일본인에겐 대일본제국이 외국이다. ‘國史’라는 일반쓰레기는 잠시 옆으로 치워놓고, 선조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설명과 예측보다는 이해와 해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야말로 역사가 재밌어지는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달라이라마와 청 순치제가 회견하는 모습(1653년)을 그린 그림. 둘의 위상을 동일선상에서 배치한 데 주목해보자. 지금 중국 기준만 놓고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역사적 맥락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김치나 한복을 두고 이러저러한 헛소리가 나오는데 기분이 좋을리는 없겠다. 맞다. 불쾌하다. 하지만 이웃이 술주정 부린다고 우리까지 똑같이 술주정 부린다면 제3자가 보기에 똑같은 술주정뱅이 두 명으로 비칠 뿐이다. ‘우리 조상은 위대했다’거나 ‘그거 다 우리꺼라는거 아시죠’라고 외쳐대는 게 열등감의 표현이란 걸 떠올린다면 좀 더 대범하게 대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부러워해야 할 사람들은 총 한 자루 없이도 우주의 기운이 충만했던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냈던 촛불시민이 아니라 인구 10억 넘는데도 국가지도자 하나 제 손으로 못 뽑는 안쓰러운 이웃나라 신민들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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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 기고문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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