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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간다6

스탈린 외동딸 미국에서 사망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외동딸 라나 스베틀라나 스탈리냐가 지난 22일 미국 위스콘신에 있는 자택에서 결장암으로 사망했다고 영국 BBC방송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향년 85세. 1926년 태어난 스베틀라나는 어린 시절 스탈린에게 ‘작은 참새’라 불리며 사랑을 받았지만 10대 들어 어머니의 자살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데다 첫사랑이었던 유대계 영화감독을 스탈린이 시베리아로 유배 보내자 부친과 급격히 멀어졌다. 급기야 1967년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조국을 등졌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 “표현의 자유”를 찾아왔다며 소련 여권을 불태웠던 스베틀라나는 라나 피터스로 개명한 뒤 소련을 신랄하게 비판한 자서전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스무 통’으로 성공을 거뒀다. 스베틀라.. 2011. 12. 1.
공공외교, 이것만은 하지말자 2011 년 10월18일 국회에서 열린 공공외교포럼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발표했던 토론문을 올린다. 블로그 등에 이전에 썼던 글을 수정 보완한 것이라 대놓고 들쳐보이긴 민망하지만 그래도 블로그란게 자료실 기능도 있는 것이려니 싶어 그냥 그대로 올리기로 한다. 1. 공공외교의 전제조건- 우리는 어떤 나라를 원하는가 공공외교는 간단히 말해 ‘상대방 국민의 마음을 직접 얻는 외교’라고 할 수 있다. 한국같은 나라에게 공공외교가 필요한 건 무엇보다도 4대 강대국에 둘러싸이고 분단된 상황에선 힘으로 밀어붙이는 외교는 물론이고 한류 자랑만 하거나, ‘자랑스런 1만년 역사’같은 허황된 국수주의 경쟁을 벌이거나, 다른 이웃은 나몰라라 하고 특정 이웃만 ‘편애’하는 행태 모두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이란 문제.. 2011. 10. 25.
독일 외무부 국장이 말하는 '독일 공공외교' 안나 프린츠 독일 외무부 문화공보국장은 일본 주재 독일대사관에서 일하다 최근 귀국해 새로운 일을 맡았다. 그에게 독일이 현재 추구하고 있고 앞으로 모색해 나가야 할 공공외교의 기본원칙과 방향을 들어봤다. 문: 독일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외교의 중장기 목표는 무엇인가. -독일 외무부는 (국내외) 시민들에게 외교정책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독일 연방정부는 부처간 회의를 통해 정부 차원의 공공외교 전략을 구성한다. 우리는 신문·방송 뿐 아니라 소셜미디어나 동영상을 통한 메시지 전달, 토론회 등 대면접촉, 아울러 젊은 외교관들을 위한 교육훈련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갈수록 긴밀해지는 유럽연합 관계는 공공외교 중에서도 특별하다. 해외에는 독일문화원(괴테 인스티튜트)을 개설하고 독일주간.. 2011. 9. 1.
프랑스 외무부 대변인이 말하는 '프랑스 공공외교' 외무부 대변인이 날마다 언론 브리핑을 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미국 말고는 프랑스가 유일하다는 사실은 프랑스 외무부가 얼마나 국제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만큼 프랑스는 공공외교에 대해서도 오랜 전통과 풍부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베르나흐 발레히오 프랑스 외무부 대변인(첨부 사진 왼쪽 인물)을 통해 프랑스 공공외교의 철학과 고민을 들어봤다. 문: 프랑스 공공외교의 기본 철학은 무엇인가. -점점 더 여론을 이끄는 주체가 다양해지면서 외국 언론이 국내 여론형성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지고 외교정책이 국내문제에 미치는 효과도 증대하면서 갈수록 공공외교가 중요해지고 있다. 두번째로 공공외교는 프랑스의 민주주의 전통과 분리할 수 없다. 세번째로, 공공외교는 연성권력(소프트파워)를 이루는 데서 아.. 2011. 9. 1.
독일과 프랑스 공공외교, 정반대 경험 동일한 목표 독일 수도 베를린에선 지금도 장벽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독일은 지금도 분단의 상처를 기억하고 그 분단의 계기가 된 전쟁과 나치 정권의 역사를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나치 정권이 조직적으로 수행했던 선전전(프로파간다)이 얼마나 가공할 결과를 가져왔는지 기억한다. 독일 ‘국가’라는 이름으로 수행했던, ‘거짓말도 개의치 않는’ 프로파간다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독일 공공외교 밑바탕을 흐르는 정서로 자리잡았다. 프로파간다는 원래 1622년 교황청이 선교활동을 감독하기 위해 포교성성(布敎聖省; Congregatio de propaganda fide)을 만든 것이 등장한 용어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진 가치중립적인 의미였지만 전쟁 동안 노골적인 선전전이 기승을 부리면서 극도로 부정적인 의미를 담게 됐다... 2011. 8. 30.
리비아 사막에서 길을 잃다 지난 2월 15일 최초로 시위가 벌어지고 한동안은 모든게 분명해 보였다. 시위는 ‘민주화시위’요, 반정부군은 ‘시민군’이었다. 민주화를 요구하며 거리로 뛰쳐나온 (용감한) 민주시민들을 잔인하게 진압하는 (사악한) 독재자. 리비아는 1980년 5월 광주와 겹쳐졌다. 전형적인 ‘민주 대 반민주’로는 제대로 해석이 안되는 구도가 보이기 시작한 건 3월부터였다.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넘어 무력개입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거치지 않는 ‘인도적 지원’에 이르러서는 프레임 자체를 새로 구성해야 했다. 러시아투데이가 보도한 한 전직 영국 정보기관 간부 말마따나 “모든 인도적 지원 조치는 결국 대규모 침공을 위한 변명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위 당시부터 리비아 상황을 되짚어보자. 벵가지 등에서.. 2011. 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