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수도 베를린에선 지금도 장벽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독일은 지금도 분단의 상처를 기억하고 그 분단의 계기가 된 전쟁과 나치 정권의 역사를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나치 정권이 조직적으로 수행했던 선전전(프로파간다)이 얼마나 가공할 결과를 가져왔는지 기억한다. 독일 ‘국가’라는 이름으로 수행했던, ‘거짓말도 개의치 않는’ 프로파간다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독일 공공외교 밑바탕을 흐르는 정서로 자리잡았다.
프로파간다는 원래 1622년 교황청이 선교활동을 감독하기 위해 포교성성(布敎聖省; Congregatio de propaganda fide)을 만든 것이 등장한 용어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진 가치중립적인 의미였지만 전쟁 동안 노골적인 선전전이 기승을 부리면서 극도로 부정적인 의미를 담게 됐다. 히틀러와 나치는 권력 장악과 전쟁 수행을 위해 노골적인 프로파간다를 전개했다. 거짓말도 서슴치 않았다. 많은 독일인들이 패전 직전까지도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패전 뒤 독일 공공외교는 나치를 반면교사로 삼아 정립됐다. 무엇보다 ‘국가’라는 색깔을 최대한 지웠다. 괴테 인스티튜트는 외견상 국가로부터 독립해 활동한다. 심지어 문화외교를 수행하면서도 ‘독일의 문화’가 아닌 ‘반성하고 성찰하는 독일’을 더 내세울 정도다. 적극적인 문화외교를 펼치지 못한다는 평가도 받는다. 최근에는 변화 흐름도 있다. 특히 통일 이후엔 ‘독일 문화’에 대한 내부 토론이 활발해지는 추세다.
상당한 자주권을 갖는 주정부로 구성된 연방국가인 독일은 주정부의 독자성이 강하다. 또한 크리스티네 레구스 독일 괴테인스티튜트 대변인이 “여러 분야에 여러 기관이 분산돼 있다.”고 말한 것에서도 보듯 다양한 독립적 기구들로 분산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괴테 인스티튜트, 독일학술교류처(DAAD), 국제관계연구소(ifa), 세계문화의 집(HKW) 등이 대표적이다.
독일 수도 베를린에는 냉전과 분단의 산물인 베를린 장벽 유물이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다. 극단적인 프로파간다(선전전)를 통해 내부를 통제하고 외부를 배척했던 뼈아픈 경험을 잘 기억하고 있는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적 성격을 탈색하고 반성과 성찰을 통해 외국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공공외교 전략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신뢰받는 국가로 올라설 수 있었다.
프랑스는 역사적 경험에서 독일과 정반대 길을 걸어왔다. 신종호 경기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프랑스 공공외교가 “국가의 개입과 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주의적 패러다임을 대표한다.”고 평가한다. 전통적으로 문화부는 국내 문화업무를 담당하고 문화외교는 외무부가 관장하는 것도 특징이다. 프랑스는 오랜 중앙집권 역사를 자랑하는 반면 독일은 19세기가 되서야 통일국가를 형성했다. 공공외교 제도적 특성에서도 프랑스는 중앙집권적인 반면 독일은 연방정부와 주정부로 분권화돼 있다.
유럽 대륙의 정치·외교·문화 중심지였고 영국과 패권을 놓고 경쟁했다는 역사적 자부심과 영어 이전까진 유럽에서 유일한 외교언어였다는 기억은 프랑스 공공외교가프랑스 문화와 프랑스어를 대단히 중시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특히 프랑스어에 대한 관심과 자부심은 국제 프랑스어 사용국 기구인 프랑코포니 활성화가 외교 정책의 핵심 목표 가운데 하나일 정도다.
하지만 한때 영어로 길을 물어보면 영어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외면했다는 프랑스 사람들도 영어와 직접 경쟁을 포기한 지 오래다.
파리에서 만난 로랑스 오에 프랑스 인스티튜트 사무총장 역시 “이미 영어가 대세라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그런 점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프랑스어를 알리려 노력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대해 로르 쿠드레 로 주한 프랑스문화원장은 “프랑스어는 여전히 제1의, 제2 외국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프랑스 파리를 찾은 전세계 관광객들이 에펠탑을 관람하고 있다. 대영제국과 어깨를 겨루던 1889년 건립돼 이후 40년간 세계 최고층 인공 구조물로 군림했지만 지금은 송전탑과 관광상품으로 쓰이는 에펠탑은 한때 정치·문화적 자부심을 추구했지만 이제는 실용적인 상호성을 추구하는 프랑스 공공외교와 여러모로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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