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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영어 만능주의인가 영어제국주의인가

by betulo 2007.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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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회포럼]그들이 "와신상담 클럽"을 만든 이유는?

세계사회포럼 참가자 세명이 17일 저녁에 숙소로 가기 위해 릭샤(力車)를 탔다. 한 참가자가 갑자기 “차라리 영어를 제2공용어로 하는게 낫겠다”고 푸념했다. 평소 인권과 빈곤문제에 관심이 많아 아침부터 관련 행사를 찾아갔던 그는 영어로만 진행되는 행사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그는 당시 심정을 “울고 싶었다”고 표현했다.

좌절을 겪긴 다른 두 사람도 마찬가지. 그들은 “영어가 국제운동의 전부냐”로 시작해 “영어 제국주의”라는 성토를 계속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꿀먹은 벙어리마냥 있기도 자존심 상한다. 결국 이들 세 사람 한국에 돌아가면 영어공부하자고 의기투합하기에 이르렀다. 이름하여 ‘와신상담 클럽’. 계돈도 모으기로 했다. 1년 후에 다시 모여 영어를 제일 잘 하는 사람에게 계돈을 몰아주기로 했단다.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은 한국어를 포함한 11개 공식언어를 지정했다. 조직위가 주최한 행사는 언어별로 동시통역을 했다. 그러나 1천개가 넘는 소규모 워크숍은 대부분 영어로만 진행했다. 심지어 한국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한 워크숍에서도 영어에 약한 한국인 참가자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날 밤 뒷풀이 자리는 별안간 ‘영어와 국제연대’를 둘러싼 취중 토론회가 됐다.

서복원씨(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여러 언어로 통역을 해주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재각 참여연대 시민권리팀장은  “국제연대가 영어로만 이루어진다”며 “개별 사회를 반영하지 못한 채 영어를 아는 사람들만의 국제연대는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조희연 교수(성공회대)는 “그것도 지구화의 현실을 반영하는 현상이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임영신씨(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는 “국제연대보다 국제활동이 중요하다”며 “2백명이 넘는 참가단을 조직한 ‘다함께’를 높이 산다”고 평가했다.

다음 날 행사장에서 만난 나효우 LOCOA 총무도 “국제회의장 바깥에서 시위하는 것은 잘해도 장내에서 발언하고 토론하는 활동이 부족한게 한국 시민사회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정경란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연구위원도 “한국시민사회가 가까운 장래에 국제운동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도 “‘의사소통능력’이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이행순(아름다운 가게 기획팀)씨도 “본질은 영어가 아닌 의사소통”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영어 단어 몇 개 더 외우는 것보다 국제연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강국진 기자 sechenkhan@ngotimes.net

2004년 1월 30일 오전 9시 7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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