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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세계사회포럼 주제별 평가 (2004.1.30)

by betulo 2007.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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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미패권주의 대항마 구축 ‘공통분모’
[세계사회포럼]세계사회포럼 주제별 평가
가부장제, 종파주의, 인종차별 등 조직위 핵심의제 외면 비판
2004/1/30
강국진 globalngo@ngotimes.net

전세계 8만여명이 참가했고 공식행사만 1천2백개에 이르는 세계사회포럼은 온갖 주제를 다루는 워크숍과 거리행진이 봇물을 이뤘다.

 

인도조직위가 선정한 핵심의제는 △제국주의적 세계화 △가부장제 △군사주의와 평화 △종교적 종파주의와 근본주의 △카스트와 인종차별주의 5개였다. 그러나 반전이 너무 부각되면서 다른 의제가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받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일반 참가자들의 관심사인 빚,차별,집 등 생활에 기반한 요구와 반전만을 외치는 주최측의 관심사가 제대로 융화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반전,반세계화,미국 군사주의 등 몇가지 주제로 나눠 세계사회포럼을 부문별로 평가한다. <편집자주>

 

반전,반미=“전쟁없는 또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세계의 모든 문제는 미국에서 나온다. 세계 최고 인기스타는 역시 부시 미국 대통령이다.”

 

문정현 신부의 말마따나 제4차 세계사회포럼 최대 인기스타도 역시 ‘미국과 부시’였다. 전쟁반대와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우려와 반감은 다양하기 이를데 없는 세계사회포럼 참가자들의 공통분모라고 할 만 했다.

 

개막식 연설은 너나없이 반전으로 메아리쳤다. 반전과 반미를 외치는 거리공연과 집회와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또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세계사회포럼 공식 표어를 응용한 ‘전쟁없는 세계는 가능하다’도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부시를 흡혈귀와 악마로 묘사한 사진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각국 반전운동단체들은 이라크침공 1주년인 3월 20일 국제반전공동행동을 조직하기로 결정했다. 이 밖에도 미국의 반전연대단체인 ‘평화와 정의를 위한 연대’는 8월 29일로 예정된 공화당 전당대회에 맞춰 대규모 반전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여성의 날인 3월 8일 여성들이 주도하는 반전시위를 벌이자는 제안도 나왔다. 아룬다티 로이는 개막식 연설에서 “이라크 전쟁으로 이득을 본 미국기업 두개를 찍어 문을 닫게 만들자”고 주장해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일공동 반전시위를 벌이고 있는 홍근수 목사, 문정현 신부, 진관 스님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는 18일 행사장 미디어센터 앞에서 양국 정부의 파병철회를 촉구하는 공동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한국어와 일본어로 파병반대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벌였다. 홍근수 목사(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상임대표)는 “전세계 양심세력이 힘을 합쳐 미국의 불법적인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자”고 호소했다. 홍 목사는 이어 “이라크 민중의 삶은 이라크 민중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한국과 일본은 이라크 파병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세계화=반전운동과 유기적 결합이 과제

 

“반전과 반세계화는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둘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반전과 반세계화를 이론적으로 합쳐야 한다는 논의를 계속했고, 또 4차 세계사회포럼이 그런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는 없다.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는 가능하지 않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일부 세력은 세계사회포럼에 반대하며 뭄바이 레지스탕스 2004 행사를 따로 개최하기도 했다. 반전과 반세계화 투쟁을 유기적으로 결합할 ‘묘수’는 앞으로도 많은 논의를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운동 활동가 총회에서는 10월로 예정된 WTO각료회의 반대 공동투쟁 방안을 논의했다. 전소희 FTA,WTO반대국민행동(코파) 국제연대팀장은 “6월에 서울에서 열리는 동아시아 경제포럼을 비롯해 양자간, 다자간 협상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아시아연대의 초석을 깔았다”는 점을 성과로 꼽았다.

 

세계사회포럼이 인도에서 열린 것 자체가 세계화의 참혹한 현실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열린 교실”이 되었다는 평가도 많았다. 아시아 지역이면서 빈부격차가 크고 풀뿌리운동이 활성화되었으며 정치적으로 우여곡절도 많은 나라인 인도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이라 의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문정현 신부는 “인도의 빈부격차가 이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며 “인도는 세계화의 모든 문제가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를 지원하는 미국기업의 상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보이콧 부시"의 선전벽보

 

미국의 군사주의와 미군기지=한국 집중폐쇄대상 선정

 

‘미국의 군사주의’는 세계사회포럼의 핵심의제 가운데 하나였다. 세계사회포럼에 모인 평화운동가들이 미국군사주의의 핵심으로 지목한 것이 바로 해외주둔 미군기지이다.

 

활동가들은 전세계 미군기지 반대 네트워크 조직해 미군기지 폐쇄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특히 한국과 오키나와 등은 집중 폐쇄대상으로 선정됐다. 3월 20일 국제반전공동행동의 날에는 각각 미군기지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로 했으며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반전총회를 열 예정이다. 이밖에도 미군기지 피해자들의 명단을 정리하는 방안도 모색하기로 했다.

 

전세계 활동가들은 이미 작년에 유럽과 아시아에서 각각 준비모임 성격의 국제회의를 통해 상당부분 공감대를 형성했다. 17일에는 유럽,남미,아시아 등에서 30명이 넘는 미군기지 반대운동 관계자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연대투쟁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논의한 내용은 다시 20일 대규모 패널토론을 통해 구체적인 활동계획 수립과 네트워크 조직화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유진 국장(녹색연합)은 “이번 세계사회포럼만큼 미군기지 문제가 광범위하게 쟁점으로 부각된 적이 없었다”며 “활동가들이 해외주둔 미군기지 문제를 세계적 차원에서 인식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평가했다.

 

노동=아동노동, 이주노동 주목

 

‘반전’에 밀려 큰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이주노동과 아동노동 등을 알리는 거리행진과 공연이 적지 않았다. 차별철폐를 외치는 저수입 과부들과 독거여인 노동자 단체 소속 여성들, 성산업 노동자들의 시위도 눈길을 끌었다.

 

4차 세계사회포럼은 처음으로 아동노동 문제를 다뤘다. 20개가 넘는 부스에서 아동노동의 실태와 교육문제를 고발했으며 어린이들까지 참여한 아동노동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아동노동반대국제행동에 따르면 인도에서 아동노동에 종사하는 어린이는 2억4천6백만명에 이른다. 늘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자식들을 팔아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동노동반대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는 인도 어린이들

            과부와 저소득 여성들이 세계사회포럼 행사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주노동자 문제를 제기하는 행사도 주목을 받았다. 한국의 이주노동자 현실을 고발하며 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와 강제출국반대를 위한 서명운동은 세계사회포럼 기간동안 3만명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단병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은 18일 국제산별노조 세미나 ‘노동자들의 연대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서 “북반구 노동자들이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남반구 노조운동을 예속시켜선 안된다”고 강조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성과 남성, 북반구와 남반구 등 모든 노동자들이 노동계급 내부의 연대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인권=달릿들의 해방구

 

19일 저녁 1번홀. 공연이 끝나자 수백명의 달릿들이 참가자들을 포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손에 손을 맞잡은 달릿들은 마치 강강수월래를 하듯이 행사장 주위를 돌았다. 1번홀을 빠져나가려면 ‘손끝하나 닿아도 안 되는 최하층 불가촉천민’과 몸이 닿아야만 한다. 포위당한(?) 인도 참가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내심 당황한 눈치를 보였다. 대부분은 어색해 하며 최대한 몸을 움츠리거나 달릿들의 손을 살짝 들어올려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달릿과 몸이 닿지 않기 위해 엉금엉금 기어서 위기를 모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달릿들은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해방감을 만끽했다.

 

 인도조직위는 “인도의 가장 큰 사회문제 가운데 하나인 카스트제도가 전면적으로 드러난 점”을 성과로 꼽을 정도로 달릿들의 활약상은 세계사회포럼 내내 빛을 발했다. 세계사회포럼 참가자 80%가 달릿이었다. “남는 음식 개한테는 줘도 달릿에겐 안 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상적인 차별과 가난에 시달리는 달릿에게 세계사회포럼은 해방구 그 자체였다.

 

달릿들은 하루종일 춤추고 노래하며 카스트제도 철폐를 외쳤다. 이들 가운데는 40일간 걸어서 뭄바이에 도착한 사람들도 있었다. 힌두교 국가인 네팔에서 온 불가촉천민들도 차별철폐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벌였다.

 

인도 곳곳에서 모여든 5백여명의 티벳인들은 “티벳을 자유의 땅으로 만들자”는 현수막과 티벳국기를 앞세우고 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중국이 티벳에서 벌이는 인권침해를 고발하며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 이들은 지난 16일 저녁 티벳의 자유와 독립을 염원하며 촛불집회(오른쪽 사진)를 벌이기도 했다.

 

이밖에 장애인과 성적 소수자의 인권문제를 알리는 거리 시위도 눈길을 끌었다.

  

교육=민중교육 담론 수준이하

 

“실망스럽고 맥빠진다.” 한 교육운동가는 세계사회포럼의 교육관련 행사들에 대해 주저없이 혹평했다.

 

교육과 관련한 워크숍이 10개도 안되는 세계사회포럼에서 교육운동 관계자들이 가장 기대했던 행사는 단연 프레이리 연구소(브라질)와 탈학교운동으로 유명한 시크산타(인도)가 주최한 두개의 워크샵이었다.

 

            전교조 등이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고 외치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신자유주의 돌파를 위한 공교육 혹은 민중교육에 대한 담론에 목말랐던 이들에게 프레이리 연구소가 주최한 ‘민주주의를 위한 변혁적 교육의 역할’ 세미나는 큰 기대를 모았다. 공장형 근대교육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학교화하는 사회에서 배움의 사회로의 전환’을 내건 탈학교운동가 시크산타도 교육운동의 활로를 위한 상상력을 자극해줄 것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생생한 사례발표도 아니고 치열한 논쟁도 아닌 ‘열심히 싸우자’와 ‘놔두면 잘 큰다’는 진부한 이야기만 반복할 뿐 새로운 문제설정과 전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거기다 일방적인 강의형태를 거부한다면서 프레이리 연구소가 진행한 그룹토론 방식도 “때와 장소, 참가자들의 요구와 목적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소위 프레이리 이념과 탈근대 교육실천의 기계적 적용일 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엄기호 우리교육 자료조사팀장은 “변혁적 교육학은 ‘학교가 어떤 공간이어야 하고, 학교를 어떤 원리로 구성하고 운영해야 하는지’를 제기해야 한다”며 “이제 다시 담론화해야 하는 것은 학교이며 학교담론”이라고 주장했다.

 

강국진 기자 sechenkhan@ngotimes.net

2004년 1월 30일 오전 2시 18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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