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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크레인농성 열하루의 긴박한 과정

by betulo 2007.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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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크레인농성 열하루의 긴박한 과정
2005/11/14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지난 10월 24일 새벽 1시 30분. 비정규직 노동자 61명이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B동과 Q동 크레인을 점거했다. 이들은 위장폐업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120여명을 현대하이스코가 복직시켜 줄 것과 비정규직노조를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이후 11일 동안 전국적인 쟁점으로 떠오른 크레인농성이 시작된 것이다.

강국진기자

공장을 점거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건 이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현대하이스코가 한번이라도 대화에 나섰다면 그런 사태는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점거농성은 결국 현대하이스코를 대화 자리로 불러내고 언론과 정치권에 자신들의 “억울한 처지”를 알리고 도움을 호소하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선택이었고 정당한 투쟁이었다”고 주장한다.

강국진기자

현대하이스코와 경찰은 즉각 농성장 주변을 봉쇄했다. 음식물 반입을 막은 현대하이스코는 심지어 순천시장, 국가인권위원회, 국회의원까지 막았다. 농성 노동자들은 철저히 고립된 상태에서 강제진압과 추위· 배고픔과 맞서 싸워야 했다.

농성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배고픔과 추위였다. 점거농성을 하면서 가지고 갔던 라면과 물로 이틀을 견뎠다. 그 다음부터 1일까지는 먹을 게 없어 배고픔과 싸워야 했다. Q동을 점거한 31명 가운데 한 명이었던 김흥주씨는 “크레인에서 내려와 공장 안에 있는 화장실 물을 떠다가 한두모금씩 나눠 마시며 버텼다”며 “그마저도 경찰과 구사대 때문에 군사작전하듯이 서둘러서 해야 했다”고 말했다.

강국진기자

정말 견디기 힘든 건 추위였다. 사측이 전기를 끊어서 해가 지면 깜깜해지는 크레인에서 해가 지면 잠을 잤지만 자정쯤 되면 추위 때문에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발이 시려워서 하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체조도 하고 얘기도 하면서 해가 뜰 때까지 버틴다. 낮에는 교대로 경계근무를 하면서 두세시간 잠을 잘 수 있는게 전부였다. 추위가 아니더라도 언제 강제진압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B동은 상황이 더 안 좋았다. “정비 쪽 크레인이라서 크레인 바닥이 기름범벅”이었다. 한 노동자는 일부 언론에서는 점거농성을 시작하면서 구리스 같은 기름을 뿌려놓았다고 쓴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계속해서 강제진압 가능성을 언론에 흘리며 농성 노동자들을 압박했다. 10월 28일 경찰과 현대하이스코측 구사대가 진압을 시도했고 10월 30일에는 경찰특공대 50명이 B동을 진압하려다 실패했다. 허준영 경찰청장은 10월 31일 농성 현장을 방문해 “대화를 통해 자진해산을 촉구하겠지만 설득이 안되면 강제진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농성장 주변에 배치된 전투경찰들은 아침이면 농성장 주위에서 체조와 구보를 하며 ‘무력시위’를 벌였다.

강국진기자

11월 1일부터 강제진압 조짐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엠블런스와 소방차를 배치하고 경찰특공대가 지붕을 뜯어냈다. 이런 움직임이 계속되는 가운데 2일 오후 5시부터 광주지방노동청장 중재로 순천고용안정센터에서 금속노조와 현대하이스코는 협상을 다시 시작했다. 협상은 쉽지 않았다. 문구 하나하나에 이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마라톤회의 끝에 3일 새벽3시가 돼서야 노사잠정합의안이 나왔다. 잠정합의안은 △하청업체 결원시 해고자 우선 채용 △노조활동 보장 △농성 사태로 인한 민·형사상 책임 최소화 노력 등을 담았다.

김창한 위원장은 새벽 4시 20분 이 내용을 농성 노동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공장으로 출발했다. 농성 노동자들 중에서는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확약서에서 원직복직 시한을 못박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격렬한 토론 끝에 농성 노동자들은 크레인에서 내려오기로 결정했고 아침 9시 농성을 끝냈다. 농성 노동자들은 전원 경찰에 연행됐고 61명 가운데 박정훈 지회장 등 11명이 구속됐으며 나머지는 풀려났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5년 11월 14일 오전 9시 57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23호 7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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