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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태백 르포]혼란의 석탄합리화정책 현장을 가다

by betulo 2007.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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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오판에 ‘천덕꾸러기’ 신세
공동체 다시 바로세우기 고민
2005/11/7

태백은 단순히 사양업종인 석탄산업을 안고 고민하는 도시에 그치지 않는다. 그곳에는 정부의 에너지정책 부재와 재정낭비, 낙후된 지역발전 전망, 지역사회의 개발지상주의, 지역 공동체 붕괴와 환경오염 등 현재 한국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들이 혼재돼 있다. <시민의신문>은 석탄합리화정책에 따른 탄광도시의 문제를 시작으로 앞으로 무분별한 조세지출, 재정운용의 방만함, 천편일률적인 개발중심사고 등 지역의 문제를 짚어간다.  /편집자주


석탄산업은 60~80년대 속도전을 펼치던 한국경제의 기반이었다. 뿐만 아니라 유신시절 폭압적인 노동운동 탄압을 온몸으로 고발했던 사북사태의 현장이기도 하다.


한 때 산업기반과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석탄산업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한 것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는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서 기인한다. 최근에는 환경보전과 대안에너지 추구라는 시대적 요구에 밀려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요사이 경제란을 배경으로 석탄수요가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지만 구조적 한계를 넘진 못한다.


문제는 석탄대체 수요의 확보와 정책변화에 따른 석탄산업과 탄광노동자, 지역사회에 대한 지속가능 발전전략의 부재다. 시작은 정부가 본격적으로 석탄산업 재편을 시도한 석탄합리화정책에서부터였다.


1990년대 강원탄광 사택이 모여있던 돌구지 마을 모습. '돌구지'라는 이름은 물레에 있는 돌개치라는 부속품과 마을 모양이 닮아서 돌개치라고 하다가 돌구지로 됐다고 하기도 하고 돌무더기가 많아서 돌구지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사진제공=광산지역사회연구소)


돌구지 옛 모습사진에 나오는 큰길 왼쪽 마을의 2005년 11월 모습돌구지 옛 모습사진에 나오는 큰길 오른쪽 마을의 2005년 11월 모습



지난 87년 전국의 탄광은 363개로 6만8천여명의 탄광노동자가 연평균 2천4백만톤의 무연탄을 생산했다. 그러나 89년 정부는 탄광의 숫자를 줄여서 석탄 공급을 감소하고 폐광으로 인한 피해 발생 지역의 개발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석탄합리화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96년 탄광은 11개로 축소되고, 지난해 현재 5천800여명의 탄광노동자가 연 310만톤의 석탄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사양업종으로 석탄산업은 전락했다.


탄광의 연평균 감소율은 일본이 11%, 영국이 5%, 독일이 4.5%였지만 한국은 89년부터 94년 사이 평균 19.2%씩 감소했다. 탄광지역의 충격은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됐다. 현재의 석탄사업은 정부의 각종 보조금에 의해 간신히 지탱하는, 지역민의 표현에 따르면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식물사업’이 됐다.


필연적으로 태백, 삼척 등 석탄산업 지역경제는 급속히 몰락했고 지역주민들의 요구로 정부는 95년 폐광지역개발지원특별법 등을 지정했다. 97년부터 2003년까지 총 6천600억원이 강원도 폐광 4개시군구와 경북 문경 등의 석탄도시에 지원됐지만 투입된 재정대비 발전효과는 미비했다. 애초 정부지원과 민자유치를 토대로 지원정책이 수립됐지만 강원도 탄광도시의 희망은 말많고 탈많은 강원랜드 등 카지노 사업에 집중됐을 뿐이다.


카지노 의존형 지역개발은 역으로 지역투자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종합적인 개발과 균형개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카지노사업을 둘러싼 지역의 갈등과 이해다툼은 심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3월 폐광지역개발지원특별법을 10년 연장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카지노사업의 독점적 위치만 법률로 보호하는 미봉책이란 지적이다.


카지노 의존형 지역개발의 폐해

“태백주민들이 뜻을 모아 대대적인 지역지원 특별법 제정운동을 벌여 95년 마침내 폐광지역개발지원에관한특별법이 제정됐지만 결과는 카지노 사업이었고 그에 따른 부작용은 컸다. IMF 직후라 민간투자 계획이 대부분 철회됐기 때문이라지만 결과적으로 지역사회는 그동안 면면히 이어온 탄광촌의 독특한 공동체의식은 사라지고 어떻하면 지원을 더 받을 것인가와 개발논리만이 남았다.”


한때는 강릉보다 많은 12만여명 인구에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석탄도시 태백. 지역에서 불고 있는 개발열풍은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채 거품처럼 떠있다. 석탄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려는 노력은 진지하지만 허공을 향한 외침같다.


개발과 지원을 넘어선 보전과 정체성을 살리는 발전 노력도 시도되지만 아직 미약하다. 김동찬 광산지역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은 “정부지원의 혜택이 지역사회와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지역민 대부분은 알고 있다”며 “지역은 행여 발전하겠지만 개인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는 지원에서 벗어나 개발을 넘어 삶의 질을 향상시킬 발전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민들이 이같은 인식을 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카지노다. 태백시 주민들이 특별법 개정을 위해 싸웠지만 강원랜드 카지노는 결국 정선·고한지역에 세워졌고, 태백시 주민들은 남 좋은 일만 했다는 분노에 휩싸였다. 정선·고한 지역민 역시 카지노를 둘러싼 각종 범죄 등 부작용을 뒤집어쓴다고 대립했다.


“특별법이 제정된지 10년이 지났다.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시민들 입장에선 불만이 나올 수 밖에. 결국 중앙정부의 지원 전략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더 핵심적인 문제는 지자체다. 받아서 도로 닦는데 다 쓴 것 아닌가. 심지어 나오는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이월되는 경우도 있다.” 김동욱 대한광산노조 위원장 지적이다. 


“도로 닦는데 다 쓴거 아닌가”

태백에서 태어나 지난 11년간 광산노동자 생활을 한 최인강씨(35·장성광업소). 일자리를 찾아 경북 의성에서 올라온 그의 아버지도 28년동안 ‘두 하늘을 이고 사는’ 막장인생을 살았다. “석탄산업이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라는 건 같이 일하는 사람들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배운 도둑질이라고 할일은 광산일뿐이라 미래가 불확실한게 가장 큰 고민”이라고 털어놓는다.


전국에서도 가장 많은 탄광노동자가 살고 있는 태백에선 아직 석탄산업을 포기할 수 없는 이들이 많다. 이같은 정서는 지역 상공인, 학자,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의 공통된 인식으로 지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코드였다.


그러나 이같은 동질성에도 균열은 오래전부터 잠재해 있었다. 석탄도시 태백을 새로운 산업도시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들이다. 골프장, 스키장 등 레져단지 등 대규모 개발사업의 추진이 그것이다.


함태탄광 재개발 서명장에 나타난 3선 민선시장 홍일순 태백시장은 “석탄은 고유가시대의 국가적 사업”이라면서도 정부지원금의 개발사업 집중에 대해 “도로 건설 등은 도시기반시설 확충 작업 및 도시환경개선 사업이었으며 아직 피부에 와닿는 효과는 없다고 느낄 수 있지만 이제 효과가 가시화되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그는 태백시가 추진하는 광산 테마공원이 원래의 광부 숙소를 다 헐어버리고 새로 짓는 등 보존을 통한 개발이 아닌 갈아엎기식이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도 “보기 흉한 곳은 정비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지역사회 지원집행 적극 참여

정체성 지키기와 개발지상주의가 혼재된 상황속에서도 지역 시민사회에서는 지역민의 삶의 질을 최우선으로 한 지역발전 노력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건설사업 등에 소모하는 것이 아닌, 보존과 친환경, 특성화 지역발전 전략을 통해 소요하는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


장성광업소 분소가 90년도까지 자리잡고 석탄을 캐던 철암에 위치한 광산지역사회연구소는 현재 탄광문화보존 복원사업을 통해 이 마을을 하나의 커다란 박물관으로 만들 계획을 진행중이다. 나아가 외국이 경우처럼 폐탄광 지역을 에코뮤지엄으로 발전시킬 생각이다. 벌써부터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관심을 가진 이들의 방문을 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모양새다. 언덕배기를 가득 채웠던 광부숙소는 모두 철거돼 배추밭이 돼 있다. 숙소에서 탄갱까지 가는 벼랑길 난간도 나중엔 훌륭한 산책길이 될 것이라고 염두했지만 얼마전 고철상이 산소용접기까지 동원해 다 떼어 가버렸다.


지역 살리기 움직임과 더불어 폐광지역의 가장 큰 난제인 환경오염문제 역시 조심스럽게 지역시민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다. 탄광지역의 침출수와 고랭지채소 오염 문제 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이상진 광산지역환경연구소장(강원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은 “탄광지역의 합리적 발전, 정부지원의 쓰임 문제에 대응하는 지역 시민사회의 노력이 계속됐지만 개발 분위기에 고전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지금까지 지원금 활용방안 논의에 시민들은 배제돼 있었지만 이제 시민사회와 합의하고 집행하는 투명한 절차를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태백= 이재환 강국진 기자 y2kljh@ngo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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