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형벌 인플레이션’ 특정범죄가중처벌법 (2005.6.27)

by betulo 2007. 3. 24.
728x90

‘형벌 인플레이션’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사형,무기 남발 헌법 과잉금지원칙 훼손
특가법 만든 사람부터 국고손실죄로 처벌해야”
시민의신문 2005년 6월27일자 603호에 실린 기사.


형사특별법 가운데 폭처법과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되는 법률이 바로 특가법(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이다. 특가법을 주제로 발표한 오영근 한양대 법대 교수는 당초 요청받은 주제가 ‘특가법 정비방안’이었음에도 ‘특가법 폐지의 당위성’을 제목으로 발표했다. “정비할 필요조차 없이 쓰레기통으로 보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오 교수는 “특가법이 규정하는 범죄가 사회에 미치는 피해보다 특가법의 야만적 규정이 사회에 미치는 피해가 더 크다”며 “쓸모 없는 악법을 만들어 피해를 입히고 국고에 손실을 입힌 사람들부터 특가법 제5조 국고손실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가법은 21세기에 존재하는 법이지만 범죄인을 적군으로 보는 군사독재적 사고를 가진 집권층과 전근대적 형법관을 지니고 집권층을 추종했던 법률실무가들의 합작품”이라고 꼬집었다. 오 교수는 특가법을 한시바삐 전면폐지해야 하고 특가법의 어느 한 규정이라도 다른 법률로 위치를 옮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특가법은 제정되지 말았어야 할 법률이고 적어도 독재정권이 사라진 10여년 전에는 완전 폐지했어야 할 법률이었다”고 덧붙였다.

오 교수는 “특가법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과잉형벌을 규정하고 있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특가법상 가중처벌규정들은 거의 예외없이 지나치게 형벌을 가중하여 헌법의 과잉금지원칙을 훼손한다. 특가법은 사형과 무기징역 규정을 남발하고 있다. 액수에 따른 차등처벌도 문제로 지적됐다. 특가법 제2조, 5조, 6조, 8조, 9조, 11조 등은 액수에 따라 형벌을 달리한다. 그러나 이는 물가가 인상됨에 따라 형벌도 인상되는 소위 ‘형벌인플레이션현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특가법 제5조 국고손실 규정은 ‘국고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손실이 5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 5천만원 이상 5억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특가법 제8조 1항은 ‘포탈하거나 환급받은 세액 또는 징수하지 아니하거나 납부하지 아니한 세액이 연간 5억원 이상인 때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가령 특가법 제8조가 개정된 1990년 당시 5억원은 공식이자율만 따져도 지금은 10억원을 넘는 가치를 지닌다. 1990년 당시에는 지금의 10억원을 넘는 금액의 조세를 포탈해야 특가법 제8조 1항을 적용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5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의 조세만 포탈해도 제8조1항이 적용되는 셈이다.

1966년 2월 23일 법률 제1744호로 제정돼 한 달 후 시행된 특가법은 이후 19번에 걸쳐 부분개정됐다. 19차 개정은 지난해 10월 16일 이뤄졌다. 오 교수는 “특가법의 모든 규정들은 사회에 충격을 준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합리적 개선책을 마련하기 보다는 범죄행위에 대한 가중처벌을 규정해 국민들에게 정부가 범죄대책을 세웠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동기에서 제정·개정됐다”고 강조한다.

지나치게 무거운 형벌을 규정한 특가법이 왜 지금까지 남아있을까. 오 교수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정치인들은 강력한 범죄예방대책을 세웠으므로 범죄가 줄어들 것이라고 국민들을 속일 수 있다. 판사는 높은 법정형 규정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에게 낮은 형을 선고해 평소에 성의를 보이던 변호사에게 신세를 갚을 수 있다. 검사는 구속영장을 쉽게 발부받아 수사를 하거나 특가법 적용을 무기로 피의자나 피고인한테 자백을 받아내는 등 타협할 수 있다. 변호사는 높은 법정형에 비해 선고형이 낮으므로 성공보수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