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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합병증 앓는 ‘비만형법’ (2005.6.27)

by betulo 2007.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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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증 앓는 ‘비만형법’
“독재정권 산물로 과거청산 대상” 목소리
특별법 종류만 140종…일반법범의 두배
한국형사정책학회 학술대회
시민의신문 2005년 6월27일자 603호에 실린 기사.

“형사특별법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과거 독재 내지 권위주의 정권에서 만든 게 대부분이다. 순수한 형사정책적 목적보다는 정치적 목적에서 제정됐다. 불필요한 형법은 과거사법이 말하는 넓은 의미의 ‘법률을 통한 반인권적 행위’로 포섭하여 ‘청산해야 할 과거사’의 하나로 문제를 격상시킬 수도 있다. ‘법률의 과거청산’이 절실하다.”

지난 18일 건국대에서 열린 한국형사정책학회 하계학술대회에 모인 법학자들이 형사특별법을 겨냥해 칼을 빼들었다. 형사특별법을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발제자와 토론자 모두 이견이 없었다.

기조발제를 맡은 배종대 한국형사정책학회 회장(고려대 법대 교수)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폭처법),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특가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특경법), 국가보안법 등 형사특별법에 대해 ‘살모사(殺母蛇)’ ‘주객전도’ ‘코미디’ ‘항생제 남용’ ‘합병증에 시달리는 비만형법’ 같은 비유를 들어가며 강하게 비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국 형사법체계는 일반형법과 형사특별법으로 나눌 수 있다. 일반형법은 1953년에 제정된 형법전이고 형사특별법이란 ‘개별 법률로서 분야를 막론하고 형벌을 법적 수단으로 하는 모든 법률’을 말한다.

형법 제정 당시 법전편찬위원장이었던 김병로 대법원장은 형법을 제정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다기다난한 임시조치 성격의 특수법률들을 다 없애버리고 이 형법제정된 것만 가지고 오늘날 우리나라 현실 또는 장래를 전망하면서 능히 우리 형벌법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다. 다소 형의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이 형법전을 가지고 국가보안법에 의해서 처벌할 대상을 처벌하지 못할 조문은 없지 않는가 생각한다.”

형법 제정 이전 개별법 형태로 존재하던 여러 특별법을 다 없애더라도 형법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설명한 셈이다. 여기에는 지금도 논란에 휩싸여 있는 국가보안법도 예외가 아니다.

2003년 법원의 형사공판사건에 적용된 죄명은 형법 각칙이 적용된 형법범이 37종이다. 이에 반해 형벌을 법적 효과로 갖는 형사특별법은 그 종류만 140종이 넘는다. 이렇게 많은 형사특별법이 정하는 범죄의 종류는 얼마나 될까. 배 교수는 “조사가 불가능한 수준”이라며 “우리 형법은 국민들에게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법률을 지키라고 요구한다”고 비판한다.

이토록 많은 형사특별법이 양산하는 범죄건수도 당연히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2003년 기준으로 형법범의 수는 62만7천4백32명, 특별법범은 1백37만6천8백97명으로 특별법범이 형법범의 두 배가 넘는다. 배 교수는 “옛날 주인 형법은 손님으로 전락하고 형사특별법이 주인이 되었다”며 “형법은 자신을 잡아먹을 살모사새끼를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개항질서법, 고용보험법, 낚시어선업법, 민사소송법, 밀항단속법, 선박직원법, 해양오염방지법 등 2005년 현재 한국 국민이 100% 지켜 검찰이 처리한 인원이 0명인 형사특별법도 적지 않다. 단 1명을 기소한 법률로는 수상레저안전법, 오수분뇨 및 축산폐수처리법, 하천법, 공유수면관리법 등이 있다. 배 교수는 이를 두고 “한국 형사특별법의 ‘개그수준’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꼬집었다.

배 교수는 이밖에도 “법원의 1심 형사공판을 기준으로 처리인원이 1명 이상인 특별법의 수는 1987년 175종, 1994년 168종, 1999년 149종이었다”며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그만큼 형사특별법을 폐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처리인원이 없어서 통계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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