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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폭력행위 처벌법, 존재 이유없다 (2005.6.27)

by betulo 2007.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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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행위 처벌법, 존재 이유없다
황당한 중형주의 연명
시민의신문 2005년 6월27일자 603호에 실린 기사.

폭처법의 정비방안을 발표한 이기헌 명지대 법대 교수는 폭처법 조문 가운데 형법으로 흡수할 만한 가치를 가진 조문은 없다며 폭처법을 아직까지 청산하지 못한 것이 문명국으로서 부끄럽다는 주장을 폈다.

폭처법(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은 2003년 현재 전체 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6.2%에 달할 만큼 일반인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강력한 형벌로 범죄를 막겠다는 중형주의에 입각한 형사특별법인 폭처법은 엄격하다 못해 무시무시한 법조문으로 가득 차 있다. 폭처법에는 ‘…이상’의 처벌은 있어도 ‘…이하’의 처벌은 없다. 폭처법에서 규정하는 범죄는 모두 형법에서 처벌 가능하다. 폭처법은 형법이 규정한 범죄를 가중처벌하는 셈이다.

폭처법 2조는 ‘상습적으로 상해, 폭행, 협박, 주거침입, 공갈 등의 죄를 범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야간이나 2인 이상이 공동하여 죄를 범하면 각 형법 본조에 정한 형의 1/2까지 가중한다. 범죄를 목적으로 한 단체를 구성하거나 가입한 자는 수괴는 10년 이상, 간부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무엇보다도 황당무계한 중형주의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더구나 폭처법은 단순한 예비·음모행위까지도 처벌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렇게까지 무겁게 처벌하는 것은 한국의 전근대적인 야만국가임을 자처하는 것”이라며 “이런 규정이 있다는 자체를 국가기밀로 해야 할 지경”이라고 개탄했다.

입법 과정의 부주의로 말미암아 구체적인 형량의 불균형을 초래하기도 한다. 살인을 목적으로 범죄단체를 조직한 자는 폭처법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형법에 따라 사형·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 반면 폭행을 목적으로 범죄단체를 조직한 수괴는 폭처법 제4조 1항에 다라 사형·무기 혹은 10년 이상 징역, 간부는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해진다.

더 큰 문제는 폭처법 규정조차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폭처법 위반범의 법정형은 최저 3년 이상, 최고 사형에 이르지만 기소율은 전체 범죄 평균보다 14.3%나 낮은 41.8%에 불과하다. 검찰이 기소를 하는 경우에도 공판절차에 회부하는 비율은 5%에 그친다. 폭처법 위반범은 매년 약 3만건이 기소되지만 10년 이상 선고는 0.1%도 안되고 1년 이상 실형 선고도 약 10%에 불과하다. 집행유예 선고가 거의 절반에 이른다. 폭처법 위반범에 대한 법정형에는 벌금형 규정이 없는데도 약식명령을 청구하는 경우가 36.8%에 이른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일반국민의 공포심에 의존해 범죄를 예방한다는 것은 전체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볼모로 하는 것”이라며 “법정형을 아무리 높인다 해도 엄격히 집행되지도 않는 법이라면 오히려 준법의식을 잠식하고 정부와 국민간 불신과 적대감만 조장할 따름”이라고 꼬집었다.

폭처법은 1961년 6월 12일 국가재건최고회의 법무위원장이 제안해 다음날 3차 상임위원회에서 원안대로 가결됐으며 6월 20일 법률 625호로 공포·시행됐다. 5·16쿠데타를 일으킨 세력들이 국회를 해산하고 현역 군인 30명을 위원으로 설치한 비상입법기구가 바로 국가재건최고회의다. 이 교수는 “폭처법은 대의민주주의가 배제된 상태에서 제정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절차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는 법률”이라고 강조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폭처법은 제정 뿐 아니라 이후 개정과정도 정당성이 의심스럽다. 1차 개정은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제52차 상임위원회에서 의결했다. 2차개정은 1980년 11월 25일 정부가 제안하여 사흘 뒤 국가보위입법회의 제7차 본회의에서 원안대로 의결했다. 1990년 12월과 1993년 12월 이뤄진 3차와 4차 개정은 국회에서 정상적인 절차를 밟긴 했지만 3차 개정 역시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정치적 캠페인에 이용된 측면이 크다.

이 교수는 “4차부터 6차 개정은 국회가 주체였다고는 하지만 이는 폭처법의 절차적 문제를 해소했다기 보다는 당시 정치 상황과 맞물려 무책임하게 수명을 연장시켜 준 데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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