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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길고 힘든 도전이 시작됐다” (2004.11.5)

by betulo 2007.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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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재선과 한반도: “길고 힘든 도전이 시작됐다”

미국 평화운동가 조셉 거슨 본지에 서한

2004/11/5

저명한 미국 평화운동가인 조셉 거슨(Joseph Gerson, 아래사진) 미국친우봉사회 뉴잉글랜드 지역 사무국장이 부시 재선을 지켜보면서 느낀 심정을 <시민의신문>에 보내왔다. 퀘이커 교도이자 평화주의자로 유명한 조셉 거슨은 수십년 동안 미국의 군사주의를 반대하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해외주둔미군기지 아시아국제회의를 비롯해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해 해외주둔 미군기지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도 했다. <편집자주> 

이제 우리가 상대해야할 대상이 반민주주의적인 세력들, 우리 사회에서 신종 파시스트가 돼버린 ‘미국의 탈레반’과 근본주의자들이라는 점은 확실해졌습니다. 싸움은 길고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부시-체니에게도 이런 객관적인 현실은 큰 도전이 될 것입니다.

옛말에 ‘돼지 귀털로 비단향낭을 만들 순 없다’고 했듯이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강도왕’(이민 초기 신대륙으로 건너와 착취와 강압을 통해 부를 축적한 영국 귀족들을 칭하는 용어) 스타일의 현 미국 경제는 결국 미국을 무너뜨릴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살육을 막고 고통을 끝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부시 재선은 전세계 재앙”

이번 대선에 대한 소감을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는 전세계 민중에게 큰 영향을 끼칠 매우 중요한 역사적 패배를 겪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 평화단체들 대부분은 흠이 많은 케리의 외교 군사 정책들을 찬성하진 않았지만 그를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부시가 3백50만이라는 적지 않은 표차이로 재선됐습니다. 미국과 세계의 미래를 생각하면 재앙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부시가 국수주의적이며 군사주의적인 외교정책을 관철해나가라고 유권자들이 자신을 지지한 것으로 몰고 가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총체적 재앙인 이라크 전쟁이든 북한에 대한 적대적 자세든 가리지 말고 미국을 제국으로 바꿔놓는 것조차 부시는 승인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미국내 문제만 보더라도 상원과 하원에서 공화당이 더 큰 장악력을 갖게 됨으로써 우리는 계속 빈곤․노동․중간층의 생활조건이 악화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더 많은 부가 잘사는 이들에게 넘어가고, 더 많은 이들이 건강보험이나 연금 없이 살아야 하며, 더 많은 ‘강도왕’들과 신자유주의적 근본주의자들이 인간과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미국 경제의 사유화를 가속화시킬 것입니다.

소수자, 특히 동성애자와 흑인들은 두려움에 떨만합니다, 생활은 더 위험해질 것이고 그들은 시민으로서 기본권마저 박탈당하겠지요. 아마 나중에는 자발적으로 진보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부시 행정부는 계속 거짓말과 공포심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얼마나 더 많은 민주적 권리와 시민권을 억압당하게 될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미국은 이미 경찰국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80년대 이스라엘 평화운동 역사가 보여줬듯 제국이 바깥에서 저지르는 일은 언제까지나 울타리 바깥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다. 제국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제국 안에서도 조만간 벌어질 것이고 그 결과는 더 참혹할 것입니다.

미국 정체성을 묻는다

좋은 소식은 그 어느 선거보다도 많은 이들이 투표에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이전의 어떤 민주당 후보보다도 케리는 더 많은 지지를 얻었습니다. 미국 유권자 48%가 부시를 반대했고 그 반대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민과 전세계를 공격하고 있는 군국화한 국가와 현 행정부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또 다른 ‘좋은’ 소식이 있다면 미국이 이라크에서 거의 자멸상태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분명 부시-체니 정부가 다른 나라에 끼칠 위해와 파괴의 가능성을 한결 줄일 것입니다.

나쁜 소식은 부시 행정부가 그렇게 많은 국민들을 동원해낼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점에서 보면 이번 대선 결과는 이 나라의 근본적 정체성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백인, 청교도들이 자기들 뜻에 맞서는 유색 이교도는 누구든 죽여도 상관없다는 믿음으로 아무 것도 없는 언덕에 신의 도시를 건설했다고 생각하던 유럽 식민주의 정착민이라는 정체성 말입니다.

미국 유권자의 1/3가량이 자신을 “복음주의적 기독교인”이라고 칭했습니다. 부시는 여기에 덧붙여 낙태, 줄기세포 연구, 동성애자들의 권익 등에 반대하는 소위 ‘도덕적이고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에 동의하는 다수의 카톨릭 신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 남부와 중서부에 거주합니다. 그들은 주로 백인이고, 인종차별적이고, 권위주의적입니다. 자기 계급의 경제적 이해보다도 ‘도덕적 이슈’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나는 다행히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인 미국 북동부 출신입니다.

출구조사를 보면 놀랍게도 부시 지지자 중 80%에 달하는 사람들이 ‘도덕적 이슈’를 첫 번째 기준으로 꼽은 반면 이라크 전쟁은 네 번째에 자리함을 알 수 있습니다. 2위와 3위는 ‘테러와의 전쟁’과 경제가 차지했더군요.

“카드로 만든 집은 곧 무너진다”

출구조사에서 또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75%에 달하는 부시 지지자들이 9․11 사태에 사담 후세인의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는 사실입니다. 사담 후세인과 알 카에다가 공모했다는 체니의 거짓말을 믿는 사람이 72%로 나타났거든요. ‘진정한 신앙인’들은 이렇듯 위대한 지도자가 하는 말이면 무엇이든 믿고 행하나 봅니다. 미국에서 파시즘 습성이 아직 30년대 나치 독일이나 파시스트 이탈리아처럼 깊숙이 뿌리박히진 않았지만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지난 시절 군부독재로 인해 많은 고통을 당했고 거기에 맞서 용감하고 지혜로운 투쟁으로 독재에 종지부를 찍었을 뿐 아니라 역동성을 날로 더해가는 민주적 문화를 창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은 노골적인 독재국가는 아닙니다만 지난 역사와 현재의 고난을 보면 엇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한국인들처럼 우리 미국인들도 민중 운동(평화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전세계 민중들의 격려와 원조도 포함해서)을 통해 민주주의를 되찾을 것이고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는 정치를 끝장낼 것입니다.

실망하지 맙시다. 영어에는 “카드로 만든 집은 무너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고통을 조금 더 겪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가 있기에 미국 정부가 지구촌에 가하는 고통은 훨씬 더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용기를 냅시다!

11월 3일 조셉 거슨

2004년 11월 5일 오전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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