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론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반론은 “경제성장이 더 중요하다”라고 할 수 있다. 한국미래학회 초청강연에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내놓은 대답은 “복지국가 없이는 경제성장도 없다”였다.
9일 한국미래학회 초청으로 ‘한국 복지국가의 미래: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을 주제로 강연한 장 교수는 1960년대 한국 상황과 지금을 비교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과연 당시 ‘40년 후에는 한국이 휴대전화 세계 최대 수출국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면 어느 누가 믿었겠느냐”면서 “지금은 없는 미래를 고민하는 과감한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2060년대 미래 한국이 지금보다 더 좋은 나라가 되도록 만들기 위해 필요한게 무엇일까. 나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먼저 현재 한국이 처한 다양한 문제는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도 안될 정도로 복지지출이 미비하다는 것과 밀접히 연관된다고 지적했다. 그가 사례로 든 것은 자살률과 의대와 공무원시험 쏠림현상, 저출산, 가계부채 악화와 중산층 붕괴 등이었다.
한국미래학회 제공
장 교수는 “현재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OECD 평균보다 세 배 가량 될 정도로 심각하다”면서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OECD 평균수준이었던 자살률이 왜 이렇게 높아졌겠느냐. 국민들이 불행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우수한 인재들이 의대로만 몰리고 공무원시험 준비에 올인하는 것은 좋은 일자리, 안정된 일자리가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이다. 저출산은 장기적으로 국가존립위기까지 불러온다.
장 교수는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복지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경제성장은 고사하고 국가존립까지 위협할 정도”라면서 “경제어려운데 복지가 왠말이냐고 하는 분들은 틀렸다”고 역설했다.
그는 “왜 미국이 스웨덴이나 핀란드보다 구조조정이 더 힘든지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스웨덴이나 핀란드에선 직장을 잃어도 국가에서 최대 2년까지 봉급의 60~80%를 보전해주고 재교육해주고 취업 지원해주기 때문에 실업을 받아들이고 다른 살 길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에 따르면 사회안전망이 없으면 산업 구조조정이나 혁신도 어렵다. 장 교수는 “과거에는 봉제공장에서 일하다 조금만 재교육받으면 신발공장 취직하는게 가능했지만, 지금은 조선소에서 생명공학 분야로 이직하려면 몇 년이 필요할지 모른다”면서 “그 기간 동안 생계를 최소한으로 보장해줘야만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에 동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역사를 통해 상상력을 키울 것을 주문했다. 그에 따르면 스웨덴은 1920년대까진 전형적인 ‘작은 정부’였고 피임법 가르치는 게 불법일 정도로 보수적인 국가였으며, 노사분규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나라였다. 미국조차 1913년에 도입한 소득세를 처음 도입한 것도 1932년이었다. 핀란드는 600년 가량 스웨덴 식민지였고 100년 가량 러시아 식민지를 했다. 독립 뒤 곧바로 좌우내전이 벌어졌고 사민당은 1966년이 되서야 첫 집권에 성공했다.
장 교수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복지국가들도 과거에 여건히 좋고, 상황이 쉬워서 복지국가를 이룩한 게 아니다”면서 “결국 역사는 인간이 만든다.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모든 면에서 우리 미래가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올해 세수가 부족한데 복지예산 축소가 맞느냐 확대가 맞느냐 하는 식이 아니라 30년 이상을 바라보는 긴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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