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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

장하준 교수한테 듣는 유럽재정위기 세계경제위기

by betulo 2011.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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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재정위기니 세계 경제위기니 해서 온통 위기론이 넘실대고 있다. 이러다 큰일 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고. 이럴 때일수록 전문가가 맥락을 짚어주는게 필요하다 싶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를 불러냈다.

9월19일 전화인터뷰에서 그는 최근 유럽 재정위기에 대해 핵심은 재정건전성 악화가 아니라 경기회복을 가로막는 긴축정책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라도 경기활성화를 위해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는데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리스에 대해서도 지금처럼 강대국들의 이익만을 위해 긴축만 강요하는 것은 그리스를 말려 죽이고 유로존까지 붕괴시킬 수 있다.”면서 채무재조정을 통해 그리스의 부담을 덜어주고 유로존 재정통합에 박차를 가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장하준 교수 관련 이전 글에 대해서는

2011/06/28 - 장하준 교수한테서 듣는 '영국 경제 제4의 길'
2011/02/17 - '문제적 인물' 장하준에 대한 좌우의 비판지점들
2011/02/09 - 장하준 인터뷰; 그들이 한국경제에 대해 말하지 않는 13가지
2010/07/04 - [예산기사비평] 장하준 교수 "재정긴축, 지금은 아니다"


 

: 유럽 재정위기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라 보나.

- 재정위기는 병으로 인해 드러나는 증상일 뿐이다. 암에 걸려서 설사를 하고 살이 빠졌는데 그걸 설사병이라고 말하면 안되는 것처럼 현 상황을 재정위기로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재정악화의 원인은 금융위기다.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로 세수가 줄어들었고,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구제금융에 막대한 돈을 쓴 것이 재정적자의 원인이다. 인과관계를 잘 봐야 한다.

(금융자본이) 급할 때는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구제금융 환영하다가 한숨 돌리고 나니까 재정건전성 바로잡지 않으면 경제가 망한다는 식으로 나온다. 특히 영국에선 재정위기를 핑계로 복지를 대규모로 삭감하는데 영화에 빗댄다면 제국의 역습이라고 할 만한 상황이다.

 

: 재정건전성 악화는 국가 전체에 치명적인 것 아닌가.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정부부채와 가계부채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한국처럼 기축통화를 갖고 있지 않는 나라라면 외채 증가가 국가부도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이나 영국, 유로존처럼 기축통화 성격이 있는 경제에서는 돈을 더 많이 찍고 정부부채가 늘어난다고 해서 그 자체로 나라가 망하진 않는다.

가령 국채를 국민에게 팔면 국가는 부채가 늘어나겠지만 채권자인 국민들은 이자수입이 생긴다. 물론 장기적으로 재정적자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순 없다. 돈이 돌고 투자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생기고 성장을 해야 세수가 늘어난다. 그래야 재정적자가 줄어든다.

결국 재정을 얼마나 생산적인 곳에 쓰는지가 관건이다. 재정적자를 줄인다고 경기활성화되는게 아니라 경기활성화로 재정적자를 줄이는 쪽으로 정책을 구성해야 한다.

 

: 그리스 등 유럽이 위기국면을 탈출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인가.

 -그리스는 지금처럼 해서는 영영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아르헨티나 사례를 주목해야 한다.

아르헨티나는 1990년대 초반에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자국 화폐를 미국에 묶어놓는 페그제를 단행하고 중앙은행 기능까지 포기했다.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강행하다 결국 1990년대 후반 경제위기를 맞았다. 1998년부터 3년 동안 뼈를 깎는 긴축을 했지만 사회 붕괴만 경험했다. 결국 2002년 디폴트(채무 불이행)을 선언하고 통화주권도 복원시켰다. 당시 전문가들은 포퓰리즘을 원인으로 꼽으며 아르헨티나가 드디어 망했다고 했다. 하지만 2003년부터 올해까지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7%. 평가절하를 하지 않고 긴축만 해서는 경제를 내부에서 말라 죽이는 거다. 그게 지금 그리스나 아일랜드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한다거나 유로존이 붕괴한다거나 하는 예측도 나온다.

 유로존 붕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그리스 신문과 인터뷰할때 그리스가 유로존에 계속 머물고 싶다면 탈퇴를 각오해야 한다고 조언해줬다. 지금 프랑스·독일 등은 그리스에 대출해준 자국 금융기관들이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리스에 긴축을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그리스의 경제 기반을 무너뜨리고 결국 유로존까지 붕괴시키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채권자들도 고통을 분담해야만 유로존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채무구조조정을 단행해서 채권자들도 일부 부담을 지게 하고 그리스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면 도리어 유로화가 산다.

 

: 유로존이 재정통합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데.

 -유로존은 통화통합을 제대로 하려면 재정과 노동시장까지 통합했어야 했다. 미국은 그게 되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세수가 줄면 연방정부가 보전을 해주고 일자리를 찾아 인구이동도 자유롭다. 유럽은 거기서 제약이 많다. 독일 입장만 놓고 보면 긴축정책이 맞을지 모르지만 그리스 입장에선 최악의 선택이다. 유럽은 재정통합이라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단기적으로 성사 가능성이 높진 않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확률이 낮다고 해서 불가능한 건 아니다. 현대가 자동차 만들때도 성공확률은 엄청나게 낮았다.

 

: 최근덴마크 총선에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좌파진영이 승리했다.

 -자유시장 만능주의는 금융위기 직후 위축됐다가 재정건전성을 무기삼아 기지개를 켜고 있다. 거기다 금융위기 당시 많은 국가에서 중도좌파가 집권하고 있었기 때문에 책임을 뒤집어쓴 측면도 있다. 이후 각국에서 긴축정책을 폈지만 기대와 달리 경제회복이 안되면서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덴마크 총선은 그런 변화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내년 정도면 유럽에서 중도좌파가 득세하는 게 일반적 현상이 될 것으로 본다. 비례대표제에 따른 정치적 변화가 유럽의 정치적 탄력성을 높이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 한국에서도 복지확대와 재정건전성을 둘러싼 토론이 활발해지고 있다.

 -멕시코 빼고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복지규모가 작은 게 한국이다.

복지확대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마치 영양실조 환자가 옆집 사는 비만 환자가 다이어트 하는 걸 보고는 자기도 밥 굶는 식이다. 더구나 옆집 환자가 비만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북유럽 국가들은 미국보다 복지 지출이 두 배 가끼이 되지만 경제성장률은 더 높다. 한국 상황에선 복지확대가 불가피한 객관적 조건이 있다. 산업구조가 고도화될수록 투자 위험도 높아지고 구조조정 필요성도 커진다. 그런데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고 재기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모든 국민들이 의사나 공무원처럼 안전한 일자리만 찾게 되고 혁신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거기다

한국은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 보육, 교육, 의료 등에서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출산율은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선 복지확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순혈주의가 더 강하다. 이건 정말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만약 30년쯤 뒤 한국인 절반 가량이 이민자 출신이어도 상관없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복지지출을 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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