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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사해/여행기

무작정 걸어보기, 제주 올레길 21코스 답사기

by betulo 2013.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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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살림연구소는 꽤나 독특한 조직이다. 아직 사무실도 없고 법인등록도 안돼 있으니 매니아동호회같다고 해야 할까. 1주일에 한번씩 거의 쉬지 않고 1년 넘게 모여서 얼굴 맞대고 예산 얘기로 시간가는줄 모르는걸 보면 단결력은 상당하다. 그룹 채팅방은 잠시라도 조용할 날이 없다. 온작 수다와 정보교환과 정보보고가 오간다. 거의 모든 주제는 공통관심사로 모인다. 바로 '예산'이다.


  '온갖 예산문제치고 내 관심사 아닌게 없다'는 정신으로 묶인 오덕군자(일본어로는 오따꾸)들이 어찌어찌 제주도로 단합대회를 다녀왔다. 무작정 올레길을 걸었다. 경치가 제일 좋다는 말만 듣고 21코스로 향했다. 


제주해녀박물관에서 올레길 출발점에 섰다. 조랑말을 형상화한 '간세'가 우릴 맞는다. 잠시 길을 제대로 몰라 헤매다가 이내 제 길을 찾았다. 올레길 출발! 





만약 우리가 그저 그런 관광만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이 돈이면 동남아 관광하겠다'는 말이 대번에 나오지 않았을까. 올레길을 걷는 덕분에 우리는 제주도의 민얼굴을 접한다. 시인 한하운은 소록도를 향해 전라도 길을 걸으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이라 했다. 우리는 '가도 가도 거믄 돌담길'이다. 


  척박한 화산섬에서도 삶은 이어가야 한다. 제주도는 화산석이 지천이다. 돌이란 돌은 죄다 화산석이다. 무덤 앞에 놓는 무인석인지 문인석인지 하는 조각도 화산석이다. 들판 가득한 화산석을 치우고 또 치워 논을 일구고 밭을 가꿨으리라. 그렇게 걸러낸 화산석은 바람이 작물을 해치지 못하게 막는 돌담이 됐다. 


  갓난아기는 돌담 한켠 요람에 누워 밭일하는 어미를 바라보다 잠이 든다. 커서는 돌담을 누비며 밭일을 하고 바다로 나간다. 죽은 뒤에도 돌담 안에 마련한 무덤에 기거한다. 돌담은 그렇게 섬사람들과 함께하며 뗄레야 뗄 수 없는 일부가 된다.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배가 고프다. 김대중 대통령도 방문했다며 인증사진을 올려놓은 해물칼국수집을 찾았다. 바닷가 해안도로 옆에 자리한 식당이다. 바닷가에는 화산석으로 탑을 쌓아 놓은게 이채롭다. 맞은편 우도에서 기른 땅콩으로 만들었다는 막걸리도 한 잔 했다. 

 






해안도로를 따라 난 올레길을 걷고 또 걷는다. 철새도래지 옆 초지에는 한가로이 풀을 뜯는 조랑말도 봤다. 역시 제주도는 제주도다. 


중간중간 자그마한 모래밭도 있다. 지천으로 깔린 조개껍질을 한가득 주웠다. 집으로 돌아온뒤 아들놈에게 선물이라며 내놓았더니 입이 찢어진다. 파도에 이리저리 쓸린 끝에 뭉툭해지고 부드러워진 조그마한 하얀 생선뼈를 보더니 갑자기 공룡 그림책을 펼쳐든다.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 무슨 생선 모양 공룡 그림에 그 생선뼈를 맞춰본다. "아빠가 공룡뼈를 발견했네!!!" 난데없이 아들놈 칭찬을 받았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봄이 되면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아들과 약속했다. 아들놈은 공룡뼈를 많~이 발견할 거라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 









한참을 평지를 걷다가 눈앞에 오름이 나타났다. 자그마한 오름이다. 이름이 지미오름인건 나중에 알았다. 처음엔 야트막한 야산 쯤으로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올레길은 모조리 평지길만 있는 줄 알았다. 올레길이 오름으로 향했다. 우회로도 있으니 선택하란다. 별 생각 없이 거리가 가까운 직선코스로 향한다. 몇 분도 안돼 '자그마한 오름'은 순전히 착각이란 걸 깨달아야 했다. 때는 이미 늦었다. 말그대로 직진으로 오름을 올라간다. 한참을 직진 또 직진이다. 숨이 턱까지 닿는다.


안내판에 써 있던 말만 믿고 걷고 또 걷는다. 정상에 가면 360도 뻥 뚫린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과정은 험난했지만 결과는 상쾌했다. 정상에 오르니 동쪽으론 우도와 성산 일출봉, 서쪽으론 제주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출발부터 무대포였다. 올레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우리가 계획했던 목적지에서 멀어졌다. 우리는 제주해녀박물관에 렌트카를 대놓고 출발했다. 애초에 갔다가 되돌아오는 왕복을 계획했다. 처음엔 한시간 정도만 걷기로 했는데 풍광에 취해 자꾸 걷다보니 세시간 넘게 걸어버렸다. 다시 돌아가자니 여섯시간을 걸어야 한다. 다행히 일행 중 한 명이 일하는 단체에서 함께 활동하는 사람이 마침 제주도 놀러왔다 근처에 있다고 해서 차를 얻어타고 출발지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올레길을 걸었다. 점심 먹은 시간 빼고도 세 시간 넘게 걸었다. 다리는 조금 아프지만 또 오고 싶었다. 봄에는 아내와 아들놈을 데리고 다시 걸어보리라. 해물칼국수도 같이 먹고 공룡화석 발굴도 하리라. 운이 좋으면 조랑말을 또 볼 수도 있으리라. 그렇게 느릿느릿 걸어보련다. 지미오름은 빼고.   




출처: 제주올레 홈페이지 http://www.jejuolle.org/?mid=40&act=view&cs_no=26#



1월 30일 오전 10시 30분 즈음해서 퇴고를 했다. 표현을 일부 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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