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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대선 군 부재자투표 관련 사망 민주화 인정 (2004.7.14)

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by betulo 2007. 3. 1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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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대선 군 부재자투표 관련 사망 민주화 인정
의문사위, 정연관 상병 사망사건 "민주화관련" 내부결론
2004/7/14
강국진 globalngo@ngotimes.net

지난 1987년 대통령선거와 관련하여 군사독재정권이 부정선거를 자행하는 과정에 무고한 사병이 사망했으며 보안사(지금 기무사)가 사망사건을 조작,은폐한 사실이 17년만에 밝혀졌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기 의문사위는 지난 1987년 12월 4일 군 부재자투표를 할 당시 김대중 후보에게 기표했다는 이유로 육군 제2군수지원사령부에서 근무중이던 상병 정연관이 맞아 죽은 사건에 대해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사망하였다고 인정한다”고 결론내렸다. 의문사위는 현재 결정문 문안을 다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일 의문사위 한상범 위원장이 최근 논란이 된 장기수 민주화운동  관련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  
의문사위 관계자는 “비록 시간이 오래 경과했고 조사권한도 미비해서 당시 보안사의 개입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밝혀내지 못해 아쉽다”고 전제한 뒤 “정 상병 사망사건은 민주주의를 압살하려는 독재세력의 의지와 지시사항이 순차적으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는 반드시 보안사 관련자들을 색출하여 처벌해야 하며 당시 최고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1987년 대통령선거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문사위 자료에 따르면 많은 참고인들은 “군단장이 사단장에게 ‘여당을 지지하게 하라’는 전문을 보여줘서 놀랐다”고 진술했다. 국방부와 보안사는 정 상병의 죽음이 대통령 선거와 관련되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군기교육 중 발생한 단순구타에 의한 사망으로 사건을 축소했다. 다수의 참고인들은 “당시 중대장이 국회청문회에 출석하는 증인들에게 헌병대 수사기록을 보여주며 사건이 확대되지 않도록 압박했다”고 진술했다.

 

1기 의문사위 조사에 따르면 정연관 상병(1966년 12월 26일 생)은 1987년 12월 4일 소속부대인 육군 제2군지사 11보급대대 개요 251중대 2내부반에서 일석점호 후 취침시간(22시 20분경)에 금속수리반 고참이 반원 10명을 침상에 일렬횡대로 세워놓고 군기교육을 목적으로 가슴을 주먹으로 한 대씩 구타할 당시 10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정 상병은 주먹으로 맞고 넘어져 일어나지 않았으며 주위 사람들이 인공호흡 등의 구호조치를 하다가 병원으로 후송했지만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졌다.

 

당시 제3군 헌병사 2군지사 파견대는 군기교육 중에 생긴 사건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1987년 대선 부재자투표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국방부에선 언론에 부재자투표와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가해자인 백 모 병장은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백 모 병장은 보안사에서 조사를 받을 당시 정 상병 사망사건이 군 부재자투표와 관련이 있다고 진술했으며 보안사는 이를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강요했다.

 

포항보안근무부대는 사령부의 지시로 정 상병 사망이 부재자투표와 관련이 없다고 유족에게 설득했다. 특히 정 상병의 가족들이 외부로 나가 당시 대선에 이용당하는 것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정 상병의 집을 감시하며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4년 7월 14일 오전 8시 18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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