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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역사이야기

맥락을 모르면 역사왜곡에 빠진다(1) 君子와 小人

by betulo 2009.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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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쓰는 언어생활에서 군자와 소인이란 말은 구체적인 실체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하나의 개념이다. 군자는 멋진 사람, 소인은 찌질이 정도 되려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군자’와 ‘소인’은 공자가 ‘소인이 되지 말고 군자가 되라’ 정도 설파하셨다는 것 정도 되겠다.

논어에 보면 '군자는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은 완성시켜 주고 나쁜 점은 이뤄지지 않게 한다. 소인은 그 반대로 한다(君子成人之美 不成人之惡 小人反是)'고도 했고 '군자는 두루 사귀되 패거리를 만들지 않고 소인은 패거리를 만들되 두루 사귀지는 않는다(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라는 말도 나온다.

내가 보기엔 ‘군자’와 ‘소인’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역사적 맥락을 몰라서 발생하는 전형적인 오해에서 기인한다. 결과적으로는 이런 오해가 역사왜곡을 부른다.

공자는 훌륭한 사람 되라고 군자와 소인을 대비시킨 게 아니다. 애초 군자와 소인이란 건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체가 있는 ‘지시대명사’에 가깝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윤찬원 인천대 교수가 ‘e시대의 절대사상’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쓴 <한비자; 덕치에서 법치로>인데 군자와 소인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이 책에 나온 당시 시대상 설명을 발췌하면서 간략히 아는 바를 정리해 본다.

주(周)나라의 통치질서를 ‘종법(宗法)’질서라 한다. 『좌전(左傳)』<소공(昭公)> 7년조에 나오는 구절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왕(王)은 공(公)을 신하로 부리고, 공(公)은 대부(大夫)를 신하로 부리며, 대부(大夫)는 사(士)를 신하로 부리고, 사(士)는 민(民)을 신하로 부린다.”

천자와 혈연관계가 있는 왕족이 제후(諸侯=公)가 되는데, 제후는 자기 영지를 다스리기 위해 경(卿)과 대부(大夫)와 사(士)로 구성된 통치질서를 구성한다. 다시 말해 천자-제후-경-대부-사로 이어지는 통치질서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예기(禮記)』에 “예는 서인(庶人)에게까지 내려가지 않고, 형벌은 대부에게까지 미치지 않는다.”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서인(庶人)이 바로 이른바 소인(小人)이다. 군자와 소인은 모두 인(人), 즉 지배계급에 속한다. 윤찬원 교수는 “예(禮)는 군자, 곧 귀족들의 행위를 규제하는 불문율이었으며, 형벌은 소인(小人)으로 지칭되었던 서인(庶人)들어게 적용되었다.”라고 지적했다(윤찬원; 28).

하지만 춘추시대(기원전 770~대략 기원전 476년)에 들어서면서 철기시대에 들어서고 소를 농사에 이용하게 되면서 생산력이 급증한다. “서주시대 강력한 토대로 이루어졌던 사회체제가 붕괴되고, 광범위한 사회적 정치적 변화가 발생하였다. 군자와 소인 계급의 사회적 차별이 예전처럼 엄격하게 구별되지는 못했고, 춘추시대 후반에 속하는 공자(孔子) 당시에는 토지와 직위를 잃은 귀족들이 있었는가 하면, 재능과 행운으로 사회적 정치적으로 탁월한 지위에 오른 평민도 생겨났다.(윤찬원; 37)”

윤 교수가 지적한 귀족은 군자(君子)를 말하고, 탁월한 지위에 오른 “평민”이 바로 소인(小人)이다. 한 중국학자가 쓴 공자 비판서를 번역한 <反 논어>(예문서원, 1996)는 공자가 군자를 옹호하고 소인을 비판한 것을 근거로 공자를 수구세력이었다고 평가한다.

군자와 소인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공자가 말한 군자와 소인 개념에는 구체적인 시대배경을 깔고 있다. 공자는 착한 사람 되라고 군자를 옹호한 게 아니다. 소인을 그토록 비판하는 공자에서 우리는 격렬한 계급투쟁을 읽을 수 있고, 또한 적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맥락을 모르면 역사를 오해하게 되고, 이는 역사왜곡을 부른다.


다음에는 인(人)과 민(民)에 대해 따져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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