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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역사이야기

자살 권하는 사회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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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죽음이 자살이다. 자살은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후의 방법으로써 자기 자신을 위한 행동이다. 자살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기독교 성경을 통틀어 자살 행위를 묘사했다고 볼 수 있는 장면도 모두 합해서 열다섯 군데에 나온다.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기록에서도 자살이 나온다. 이렇듯 자살에 관한 내용은 문학작품과 역사서 전체에 일화 형식으로 산재해 있다.


문자로 쓰인 역사에서 자살은 예나 지금이나 늘 논란이 분분한 행동이다. 물론 세계 어느 문화권에서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윤리적 관습의 틀에 갇힌 금기 행위였다. 사회는 인간에게 스스로 삶을 끝낼 수 있는 자유로운 권리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다는 보고는 이제 뉴스거리가 되지도 못하는 것 같다. 보건복지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하루 34명의 한국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이는 2006년에 비해서도 11% 이상 증가한 수치다. 더욱이 20~30대 젊은 남녀의 사망 원인 중 1위가 자살이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한겨레21 2007년 12월27일자 기사에 나온 에서 인용. 관련 기사는 http://www.hani.co.kr/section-021156000/2007/12/021156000200712270691018.html


모든 사회적인 문제는 개인적인 문제와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안재환의 경우에도 그가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은 무심코 넘기는 경우가 많다. 그저 힘들다는 하소연 정도로 받아들이고 시간이 가면 좋아지겠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평소 그렇지 않던 사람이 초조해 보이고 죽고 싶다는 말을 한다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구조적인 문제로도 접근하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다. 자살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내각부가 지난해 정부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자살대책 백서를 펴냈다. 자살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개인의 문제로만 보는 정책 오류를 범했다는 반성이다.


핀란드는 북유럽의 ‘자살대국’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 1980년대 말 전문가가 유족과 1대1 면접을 통해 자살자의 일상생활과 정신치료 내용 등을 조사했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 시행한 끝에 인구 10만 명당 30명이 넘던 자살률을 10년 만에 20명 수준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 특히 노인들의 자살은 그 사회 노인복지정책의 ‘건강상태’를 말해주는 지표 중의 하나다.


원래 자살은 처벌의 대상이었다. 자살은 그 집단의 통제와 권위를 벗어나는 유일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8세기경 까지는 자살에 대해 형사처벌을 가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자살기도자를 의학, 심리학으로 도와주려는 시도도 많이 있었다. 자살이 미수에 그친 사람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계몽주의 시대의 의사들은 우울증을 치료하는데 다양한 치료법을 제안했다. 자살을 기도했던 자들은 이제 처벌 대상이 아니라 치료 대상으로 바뀐 것이다.


자살이 개인적인 특이한 문제가 아니라 질병으로 인식되는 것이 발전이라면 사회적인 원인은 좀 더 이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사회적인 원인에는 경제적 문제가 중요할 것이다. 경제적 자살은 타살이라는 말이 있다. 갈수록 양극화와 경제적 고통이 심해지는 지금의 현실을 계속 방치한다면 한국 사회는 ‘자살 권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정창수 역사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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