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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역사이야기

15세기에 3만명 이끌고 탐험길, 정화 남해원정을 아십니까

by 자작나무숲 2010. 8. 3.
최근 중국 정부가 케냐 앞바다에서 15세기 명나라 환관 정화가 이끌었던 원정대 함선을 발굴하는 작업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거기가 소말리아 해적 퇴치를 명분으로 중국 해군이 아프리카 유역까지 진출하기도 했지요. 이래저래 중국 해양진출에 눈길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러저러한 중국 해양진출 관련 소식은 명나라 당시 정화가 이끌었던 남해원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토요일자 신문이라 그래픽을 최대한 시원스레 뽑아서 기획기사를 써 봤습니다. 10년도 더 전에 읽었던 <정화의 남해 대원정> 책을 다시 꺼내서 역사적 흐름을 다시 짚었고요. 오랜만에 역사이야기로 글을 쓰니 감회가 새롭군요.


색목인(色目人) 출신 무슬림으로 명나라 초엽 환관이 됐던 정화를 사령관으로 하는 명나라 함대는 28년동안7차례 대항해에 나섰다. 매번 2만 7000여명의 인력과 대형 함선인 보선(寶船) 60여척 및 100척 정도의 소형 함선으로 이뤄진 대함대였다. 승무원 150명에 한 명꼴로 배치된 의사만 해도 180명에 이르렀고 승무원들이 소비하는 하루 식량만 70t가량이었다.

정화 함대가 세계사에서도 보기 드문 규모라는 것은 유럽사에서 ‘대항해 시대’를 연 콜럼버스나 바스코 다가마, 마젤란과 비교해 보면 잘 드러난다. 1492년 콜럼버스와 함께 출항한 인원은 함선3척에 승무원 120명이었다. 바스코 다가마 함대는 함선 4척에 승무원 170명이었다. 마젤란도 함선 5척과 승무원 265명을 이끌었을 정도이다.

왜 이렇게 필요 이상의 대규모 함대여야 했을까. 어마어마한 규모는 정화 함대가 실용적인 목적 못지않게 중국의 위용을 과시하고 ‘조공’이라는 중국식 국제 정치·경제제도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과시용 성격이 강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 원나라 쿠빌라이 칸이 구축한 해상교역로를 복구함으로써 국제질서를 재구축하려는 ‘대형 국책사업’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이란에 있는 호르무즈 왕이나 아프리카의 술탄들도 중국에 조공하라는 정화의 요청에 대해 사자·기린 등 헌상품과사절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정화를 발탁했던 명나라 황제 영락제는 반란을 일으켜 조카 건문제의 왕위를 찬탈한 중국판 수양대군이었다. 이 때문에 ‘남해원정’에는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계산도 담겨 있었다. 일부에서는 반란을 피해 도망간 건문제를 찾기 위해 정화를 파견했다는 ‘야사’도 전해지고 있다.

정화 '이후'와 콜롬버스 '이후'

정화는 19세기 영국 해군이 보유한 최대 전함보다도 세 배 이상 큰 배를 타고 15세기 인도양을 넘어 아프리카까지 누볐다. 하지만 중국은 대규모 해상사업의 성과를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다. 항해 기록은 대부분 유실됐다. 정화는 언제 어디에 묻혔는지도 모른채 500여년 동안 잊혀졌다.

 영락제가 야심차게 주도한 ‘남해원정’은 영락제 사후 유학자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무엇보다 막대한 재정부담이 빌미가 됐다. 특히 명나라는 이후 북쪽에서 몽골과 장기간 전쟁을 치르는 한편 남쪽에서 왜구 퇴치에 나서는 이른바 ‘북로남왜’ 속에 바깥 세상으로 눈을 돌릴 여력이 없었다.

 1433년 마지막 남해원정이 끝난 65년 뒤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가마가 이끄는 소규모 함대가 희망봉을 거쳐 캘리컷에 도착했다. 중국이 민간상인들의 해외진출을 금지하는 ‘해금(海禁) 정책을 수백년간 유지하는 동안 캘리컷은 유럽인들의 앞마당이 됐다. 콜럼버스 이후 물밀듯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몰려간 유럽은 짧은 기간 안에 아메리카 전역을 식민지화하면서 아메리카에서 채굴한 막대한 은을 바탕으로 산업혁명의 토대를쌓았다.

 사실 19세기 초까지도 세계 제일의 생산력을 자랑하는 산업국가였던 중국의 명·청 왕조는 굳이 정부 차원에서 부담을 무릅쓰고 먼 바다로 나갈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산업을비롯해 내세울 게 변변찮았던 변방 유럽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야 했다. 일확천금을 꿈꿀 수밖에 없는 절박함과 아쉬울 것 없는 풍족함이 역사의 시계추를 바꿨다.



정화 함대는 명나라 조정에 아프리카에서 공수해온 목이 긴 동물을 바쳤다. 명 조정에선 그때까지 전설 속 동물이었던 한 동물 이름을 이 동물에 붙였는데 그게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기린이란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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