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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숲 가꾸기는 생명 가꾸기

by betulo 2008.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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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앞에는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남는다.” (프랑스 작가 샤토 브리앙)

숲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존 펄린이 쓴 ‘숲의 서사시’라는 책을 보면 ‘숲’이 인류문명과 국가의 운명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극명하게 느끼게 된다.

저자의 설명을 잠깐만 따라가 보자. 지중해 구석에 있는 작은 섬에 불과했던 크레타는 메소포타미아에 삼나무를 수출하면서 부유해졌지만 삼림벌채로 숲이 고갈되면서 쇠퇴해 버렸다. 고대 그리스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벌인 전쟁의 승패도 결국은 군함을 만들기 위한 목재, 즉 삼림 확보에 따라 갈렸다. 이 전쟁으로 인한 대규모 벌채는 결국 고대 그리스의 몰락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공화국은 이슬람세계와 나무 교역으로 동부 지중해를 지배했지만 삼림고갈로 해운업은 몰락했다. 그 뒤를 이어 네덜란드와 영국 등 북유럽 국가들이 풍부한 삼림의 원산지란 이점을 이용해 대양횡단 상업시대의 주인공으로 부상한다. 영국 스튜어트 왕조 초기 아서 스탠디시라는 사람은 ‘숲이 없으면 왕국도 없다’며 삼림황폐를 경고하기도 했다.

네덜란드와 해양무역의 주도권을 다퉜던 영국이 신대륙에 눈을 돌린 것 역시 나무 때문이었다. 대영제국의 막강한 해군력 유지에 필수적인 거대한 주력 전함인 전열함(戰列艦)에 필요한 돛대는 지름 1m, 길이 25m의 거목으로 만든다. 북유럽산 돛대 재목을 네덜란드가 통제한데다 전열함의 돛대는 북유럽 삼림에서 나는 것보다 훨씬 큰 것을 필요로 했다.

숲을 제대로 가꾸지 않아 위기에 처한 문명도 많지만 모두가 그런건 아니다. 숲의 가치를 알고 적극적으로 숲을 가꿔온 문명도 있다. 조선이 그런 경우이고 이웃나라 일본도 그렇다.

우리나라 전통시대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무는 단연 소나무였다. 집을 짓고 관을 짜고 배를 만드는 데 소나무를 썼다. 가정이나 대장간의 연료로도 썼고 소나무 껍질이나 솔잎, 송진 등은 대용식량 구실도 했다. 이렇게 중요한 소나무를 국가 차원에서 관리한 역사도 1000년이 넘는다. 이미 신라와 고려 당시 국가에서 소나무를 정책적으로 심고 함부로 베어내지 못하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한다.

나무 관리 못한 공무원 곤장 80대

조선시대에 이르러 소나무 보호․관리 체계는 더욱 정교해졌다. 지방 수령들에게 소나무를 심고 함부로 벌목하지 못하도록 했다. 전국 곳곳에 ‘봉산’(封山) 혹은 ‘금산’(禁山)이라는 구역을 두었다. 이 곳은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는 구역으로 이를 어기는 사람이나 지키지 못한 산지기에게는 엄한 처벌을 내렸다. 오늘날 ‘그린벨트’보다도 더 엄격한 개념이다.

전통 삼림관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충남 안면도 소나무숲이다. 한국·일본·호주 등 29개 나라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아시아·태평양산림위원회(FAO)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우수 산림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던 안면도 소나무숲은 이미 고려시대부터 정부가 특별관리하던 곳이다. 안면도는 소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과 목재를 운반하기 좋은 물길 등으로 고려시대에도 이미 나라에서 관리하는 소나무 숲이 있었다.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을 보면 해마다 봄에는 어린 소나무를 심거나 씨앗을 뿌려 기른 뒤 연말에 살아남은 수를 왕에게 보고해야 했는데 이를 어긴 현장 직원은 곤장 80대, 담당 관헌은 60대라는 중형에 처하도록 했다고 한다. 곳곳에 주민의 출입을 금하는 봉표(封標, 글자를 음각해 경계를 표시한 돌)를 세운 봉산을 설치했다. 산지기는 봉산에서 관할 구역을 둘러보고 나무가 없거나 훼손된 곳을 조사한 뒤 후계림을 조성했다. 이렇게 숲을 잘 관리한 덕분에 정조가 수원에 화성을 건설할 당시 안면도 소나무 원목 344주를 공급했다고 한다.

정조는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현륭원으로 이장하면서 인접한 수원, 광주, 용인, 과천, 진위, 시흥, 안산, 남양 등 여덟 고을에 나무를 심고 현황을 보고하도록 했다. 1789년부터 1795년까지 7년간 보고서가 계속 올라와 자료가 너무 복잡해지자 정조는 정약용에게 자료정리를 지시했다.

정약용은 가로는 한해 열두 달 열두 칸, 세로는 여덟 고을 여덟 칸으로 도표를 만들어 칸마다 그 수를 적었다. 도표아래 나무 종류별 그루수를 따로 적었다. 총수를 헤아려보니 소나무와 노송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모두 1200만 9772그루였다고 한다. 정약용의 능력을 인용하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얼마나 숲관리에 매진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오랜 전통과 제도를 갖춰 관리했던 숲은 조선말기와 일제시대,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심각하게 훼손돼 버렸다. 다행히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주도로 3차에 이르는 치산녹화 10개년 계획, 산림기본계획(1973년~1997년)을 세우고 30여년 동안 1백억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어 국토의 65% 이상을 산림으로 채워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조림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막부가 주도적으로 조림정책 펼쳐

일본도 도쿠가와 막부 시대 이후 적극적인 조림정책을 성공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일본은 전국시대가 끝나고 평화와 번영이 이어지자 한 세기도 지나기 전에 인구가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에 따른 삼림파괴가 극심해졌다. 토양침식으로 홍수피해가 늘어나고, 숲에서 채취할 수 있었던 비료와 사료가 부족해지면서 농작물 생산이 줄어 17세기 후반부터는 식량부족 사태가 끊이지 않게 되었다.

1666년 막부(幕府)는 벌채로 인한 침식 위험, 시냇물 퇴적층 증가, 홍수에 대해 경고하면서 나무 묘목을 심도록 촉구하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이어 삼리관리와 목재운송, 목재소비를 통제하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일본 산림의 1/4를 통치하던 쇼군은 산림을 관리할 별도 관리를 임명하고 250명에 이르는 다이묘(大名)들도 자신들의 산림에 관리를 임명했다. 조림은 1750년에서 1800년대 사이에 일본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19세기가 되자 목재 생산이 증가 추세로 돌아서게 되었다.

숲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

한겨레 기사에 관련 기사가 있다. 지난 2004년 유엔이 ‘사막화 방지협약’ 제정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에는 해마다 1560㎦ 규모의 땅이 사막으로 변했으나, 1980년대에는 2100㎦의 규모가, 1990년 중반부터 2000년까지는 3436㎦ 규모의 땅이 사막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런 속도를 감안해 볼 때, 2025년까지 아프리카의 경작지 3분의 2가 불모지로 바뀌고, 아시아는 3분의 1, 남미는 5분의 1이 사라질 것이라고 유엔은 전망했다. 이는 프랑스와 독일 인구를 합친 것과 맞먹는 약 1억3500만명이 기존 거주지를 떠나야 한다는 뜻이다. 

이미 사막이 형성돼 있는 곳은 사막이 주변부로 확장되기 쉽기 때문에, 사하라사막 남부와 중국 고비사막도 급격히 확대되고 있는 상태다. 중국은 1950년대부터 포르투갈 면적에 해당하는 9만2100㎦가 이미 사막으로 변했다.

숲가꾸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바로 중국 내몽골지역이다. 봄마다 한국으로 날아드는 황사의 주된 진원지는 내몽골자치구 지역이다. 이 곳은 원래 초원지대로 수많은 유목국가의 터전이었다. 특히 황하가 서쪽으로 이어지다가 북쪽으로, 다시 서쪽과 남쪽으로 꺽이면서 생기는 황화 중간지대인 오르도스(Ordos) 지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청나라 말기인 19세기에 청나라 정부는 한족 농민들을 대규모로 오로도스로 이주시켜 농사를 짓게 했다. 처음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초원을 개간하면서 곧 풀이 없어지고 이는 토지를 건조시켜 사막화를 초래했다. 중국 정부에서도 대규모 이주와 개간, 산업화, 그로인한 수자원 사용 증가가 이뤄지면서 이제는 사실상 사막지대가 돼 버렸다. 오르도스 지역에 위치한 내몽골자치구 수도 허흐호트(呼和浩特)는 원래 몽골어로 ‘푸른 도시’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곳은 봄만 되면 마스크가 없으면 외출이 힘들 정도로 황사에 시달리는 곳이 됐다.

숲가꾸기는 생명 가꾸기

숲은 생명의 근원이다. 북한의 경우는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과도한 개간과 벌채로 삼림은 황폐해지고 자연재해가 급증하면서 식량생산에 문제가 발생한다. 국가적으로 숲을 가꾸는 것은 결국 국가의 에너지 문제와 궤를 같이한다. 신록이 우거지는 5월이다. 푸르른 숲을 보면서 다시 한번 숲이 얼마나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인지를 생각해보자.

<참고문헌>
박원길, 2001, <유라시아 초원제국의 역사와 민속>, 민속원.
정민, 2006,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김영사.
제러드 다이아몬드, 강주헌 옮김, 2005, <문명의 붕괴>, 김영사.
존 펄린, 송명규 옮김, 2002, <숲의 서사시>, 따님.
위키백과 조림 관련 항목.
한겨레 언론보도.

*이 글은 한국가스공사 사보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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