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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경제雜說

"투기자금이 석유값 부추긴다"

by betulo 2008.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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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값 폭등에 대한 짧은 생각 (1)

석유값이 연일 고공행진을 계속하면서 경제에 미칠 충격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이 주로 수입하는 중동산 두바이유는 지난 21일 사상 최고치인 배럴당 123.69달러로 하룻만에 3.29달러가 올랐다. 같은 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서부텍사스산 원유 7월 인도분 선물가격도 133.17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유가는 국내시장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국내 휘발유 판매가격이 리터당 2000원대를 넘어서는 주유소가 등장했을 정도다. 더이상 졸라맬 허리띠가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기름 한방울이라도 줄이기 위한 노력도 눈물겹다.

‘한겨레’는 자동차보험 긴급출동 서비스의 ‘비상급유’를 통해 공짜로 기름을 받는 사람이 1년 전보다 매달 5000건 정도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다음 주유소까지 갈 수 있도록 무료 제공하는 3리터를 아끼려는 거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에서도 기름 아끼기가 한창이다. 오하이오 일부 농부들은 기름을 써야 하는 트렉터 대신 노새로 밭을 갈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수리하는데 3~5일씩 걸릴 정도로 창고에 넣어 뒀던 자전거를 꺼내는 사람이 많아졌다. 전기와 함께 쓰기 때문에 기름을 덜 먹는 하이브리드차도 인기인데 대표상품인 도요타 프리우스는 판매량이 올해 들어 23% 늘었다. 심지어 최근 워싱턴 DC에서는 미국 도시 중 처음으로 민관 합동으로 자전거 대여소를 설치했을 정도다.

정부나 기업에서도 비상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조만간 정부재정지출의 20%에 육박하는 에너지 보조금을 줄여 연료 가격을 평균 28.7% 인상할 방침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최근 곡물값 폭등으로 폭동이 일어난 적도 있어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말레이시아도 조만간 에너지 보조금을 전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대신 전기요금을 일부 인상하는 계획을 비쳤다. 타이완 정부는 6월부터 석유와 디젤에 대한 가격통제를 폐지하고 7월부터는 전기료도 인상할 계획이다.

세계 최대 항공사인 아메리칸 항공은 6월부터 과거 일정한 무게를 초과하지 않으면 공짜로 실어주던 미국 국내 승객의 손짐(수하물)에 요금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한다. 두번째 규모인 유나이티드항공도 “심각하고 고려중”이란다.

속도가 너무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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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서울신문


사람들은 불안하게 하는 것은 최근 국제유가 오름세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서부텍사스산 원유 선물가격은 올해 2월 초 배럴당 88달러 수준이었다. 하지만 2월 19일 100달러를 돌파했고 4월 9일에는 110달러를 돌파했다. 거기서 다시 27일만에 120달러가 됐고 15일만에 130달러를 넘어섰다.

왜 이렇게 석유값이 빨리 오르는 걸까. 민관 전문연구소가 내놓은 진단을 들어보자. 국책연구소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지난 2월 ‘新고유가 대응전략 연구’에서 “기본적으로 중국을 비롯한 개도국의 높은 경제성장과 세계경기회복으로 인한 수요 급증에 기인한 것이어서 유가 상승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정제시설 병목현상과 투기자본 유입에 대해서는 제한적이라고 주장했다.

민간 싱크탱크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하 새사연)이 내놓은 분석은 다르다. 새사연은 수급불안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금융불안, 달러화 약세, 투기자금 등 외부 교란요인에 의해 유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투기자본들은 외환시장과 금융시장, 부동산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지자 더 확실한 이익실현의 수단으로 석유와 원자재, 곡물 등 상품시장을 택하고 있다.”면서 “투기자금의 움직임은 석유 현물가격이 수개월 내에 상승한다는 가정 아래 선물거래를 통해 사전에 이를 선점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사연은 “뉴욕상품거래소의 하루 원래 거래량은 무려 2억 3000만 배럴에 달하는데 이는 실제 하루 생산량의 3배에 가까운 양”이라면서 “원유 한 드럼이 하루에 세 번씩 거래되면서 거래비용이 추가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지난해 12월 ‘유가 급등의 원인과 향후 전망’ 보고서에서 계량분석을 통해 유가급등의 원인으로 지정학적 리스크(40.7%)와 투기자금 유입(30.4%)를 지목했다. 반면 수급불균형(2.2%)과 달러화약세(11.1%)에 대해서는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새사연과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목한 ‘투기자금 유입’은 사실 언론이나 대다수 전문가들한테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산유국에서는 ‘상식’이다. 최근 서울대 명예철학박사 수여를 위해 방한한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이자 국영석유회사 아람코(Aramco) 회장인 알리 이브라힘 알 나이미는 이렇게 단언했다. “최근 유가가 오르는 것은 달러 약세로 인해 (투기)자금이 상품시장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며 불안하게 움직이는 이유는 수급이 맞지 않아서가 아니며, (투기자본이 득실거리는) 금융시장 탓이다.”

이런 인식에서는 석유 생산량을 늘리는 건 해답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올해 두번이나 부시 대통령의 석유 증산 요구를 거절한 건 당연한 귀결이다. 이는 최근 상황에서 주목할 지점을 시사한다. 바로 원유에 대한 미국과 거대 다국적 석유회사의 통제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다국적석유회사 영향력 축소 주목해야

2006년 미국은 원유의 투기적 거래 실태를 조사하는 상원 청문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 조사에서는 당시 배럴당 70달러 수준에서 투기적인 요소 비중이 20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가 끝나고 미국 의회는 투기적 거래를 막기 위해 일정한 제한 조치를 취할 것을 모색했지만 부시 행정부에서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여 흐지부지 됐다고 한다.

투기거래 제한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고유가 현상은 약달러를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원유 수입국으로써 유가 상승은 무역적자 확대로 이어진다. 무역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는 약한 달러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 약한 달러 정책은 한편으로는 수출경쟁력을 높여준다. 하지만 한국처럼 물가상승 압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또 한가지 주목할 부분은 다국적 석유회사의 영향력 약화다. 원유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한 것은 대략 2003년쯤부터다. 이 해 미국의 최대 원유수입국인 베네수엘라에서 석유파업이 발생했다. 그리고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원유가격은 다국적 석유회사들 주도로 상대적으로 저가에 안정적으로 관리됐다. 1947년에서 2006년 사이 60년 동안 배럴당 18.53달러(2006년 가치환산)를 넘는 연도는 50%에 불과했을 정도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와 이란이 미국의 직접 영향권에서 벗어나고 중국과 러시아 등이 에너지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새로운 강자들은 모두 국영석유회사들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Aramco, 러시아의 Gazprom, 중국의 CNPC, 베네수엘라의 PdVSA, 이란의 NIOC, 브라질의 Petrobas, 말레이시아의 Petronas는 전세계 석유와 가스 생산의 1/3을 지배한다. 이들은 자원민족주주의를 배경으로 정부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유가 200달러 시대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일부에선 4년 뒤 500달러로 치솟을 거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고 일부에선 내년에는 80달러대로 다시 떨어질 거라는 주장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올해 전망을 “상고하저(上高下低)로 표현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공급부족 현상이 개선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이 점진적으로 안정되면서 달러화 약세와 투기자금 유입 등 문제는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배럴당 200달러 올까?

새사연도 “원유가 급등에 지나친 공포심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현재 상황은 예전 석유파동과 달리 수요 측면에 있는 국가들이 촉발시킨 경향이 크고, 석유파동은 산유국들이 가격을 갑자기 대폭 인상하면서 일어났지만 최근 고유가는 원유수입국들이 선물시장 등 파생상품시장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인상시킨 것이기 때문이라는 게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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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조차 지난해 12월 보고서에서 “국제유가 100달러 시대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망했다. 2005년 3월 골드만 삭스가 제기한 ‘유가 100달러 시대 진입론’을 귀담아 들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예측은 언제나 맞추거나 틀리거나 확률이 절반이다.

새사연은 한국의 국책연구소와 민간연구소가 계속해서 유가를 낮게 전망하는 실책을 범한 원인으로 세가지를 지목했다. 연구자들과 정책결정자들이 특히 뒤담아 들을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투기성 자금과 금융불안이 유가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한다. 둘째, 원유수입국 시각에 서 있는 국제에너지기구, 미국 에너지국 자료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세째, 지정학적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중요 행위자 가운데 미국을 아예 제외시킨다.”


<참고문헌>

삼성경제연구소, “유가 급등의 원인과 향후 전망” (2007.12.5)
삼성경제연구소, “2008년 국제유가 전망” (2008.3.7)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고유가와 달러의 불안한 패권” (2008.1.8)
에너지경제연구원, “新고유가 대응전략 연구: 유가 상승의 원인과 파급효과 분석” (2008.2)
서울신문, “유가 130弗 돌파… 세계경제 ‘패닉’” (2008.5.23)
조선일보, “유가 배럴당 200달러 가나” (2008.5.24)
중앙일보, “국경 넘어가 원정 주유…출퇴근 줄여라 주4일 근무도” (2008.5.24)
한겨레, “국제유가 초급등세” (2008.5.23)
한겨레, “유가 대란 아시아 잇단 에너지 보조금 삭감” (2008.5.24)
한국일보, “고삐 풀린 유가 각국 대책 마련 부심” (2008.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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