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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경제雜說

석유값 쇠고기값은 비싼게 정상이다?

by betulo 2008.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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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은 줄 모르는 석유값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은 나같은 문외한에겐 가능하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않다. 다만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추이를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논의와는 다른 차원에서 고유가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전문영역이 아니라 상식과 경험의 영역으로 고유가에 대한 짧은 생각을 풀어보고 싶다.

고민의 핵심은 이런거다. 석유값은 앞으로 지금보다 더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석유는 언젠가 고갈된다는 거다. 만 18세를 성인으로 볼 것인가 20세를 성인으로 볼 것인가, 상투나 비녀 틀면 성인인가 하는 논쟁의 승자가 누가 되든지 상관없이 갓난아기가 언젠가 성인이 된다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환경재단 도요새 주간 김상익이 시사IN 38호에 기고한 ‘자연의 보복과 멸종의 시계’를 인용하자면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석유는 모두 2조 배럴이다. 절반은 이미 써 버렸다. 남아있는 1조 배럴은 대부분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땅 속 깊은 곳이나 바다에 묻혀 있다. 캐내기도 힘들고 설령 다 캐낸다 해도 앞으로 100년도 채 쓰지 못한다. “지금껏 현대 문명을 휘황하게 밝혀왔던 전등은 곧 꺼질 운명이다.”

지구에 있는 석유 절반 이미 소비

지금 당장 석유가 고갈되지는 않을거다. 하지만 석유시대 종말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빠르면 내가 쓴 이 부족한 글을 쓰고 있는 내가 환갑잔치를 하기 전이 될 수도 있고 우리 아들 성인식을 해주기 전일 수도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건 ‘경각심’과 ‘성찰’이다.

석유가 고갈되는 것은 어찌보면 덜 중요한 문제일수도 있을게다. 더 심각한 문제는 흥청망청 자동차 공회전하고 몇시간 쓰지도 않는 컴퓨터나 몇 시간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 하루종일 켜 놓고, 다니는 자동차도 별로 없는 도로건설하고, 대규모 골프장 짓는다고 전라북도만한 갯벌을 사막으로 만들고, 경치좋은 바다로 돌아가면 될 것을 굳이 산속으로 가는 뱃길을 만들겠다고 하는 우리 사회 시스템의 ‘구조적인 어리석음’이다.

(여기서 나도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컴퓨터와 텔레비전을 필요이상으로 켜놓는 행태를 하지 않으리라. 특히 습관성 리모컨 중독증 탈피는 절박한 과제다. 생후 10개월 된 울아덜이 리모컨만 보면 화색이 도는 걸 보고 충격받았다. 분명히 '누군가'를 닮은게다. ㅠㅠ)

최근 번역된 <가이아의 복수>(제임스 러블록 지음, 이한음 옮김, 세종서적)에서 제시하는 전망은 좀 더 암울하고 혹은 냉정하다. 러블록은 현 시점을 ‘이산화탄소 과잉으로 말미암은 온실효과로 뜨거운 사우나실(열탕)로 돌변해 가기 시작하는 임계점에 육박했다.’고 본다. 일단 임계점을 넘으면 열탕화는 지속적으로 진행된다. 임계점 뒤엔 문명의 종말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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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빙하지역의 인공위성 사진. 점선 안에 있는 북시베리아 연안의 빙하가 26년 만에 거의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정부간 기후변화협의체(IPCC) 자료를 인용해보자. “기온이 지금보다 섭씨 5도 정도 올라갈 것으로 보이는 21세기 말 지구 생물 분포 상황을 보면, 숲은 극지방에나 남아 있고 극지를 뺀 거의 모든 바다가 불모지대로 변하며, 육지 역시 대부분 관목 정도만 남거나 아예 사막으로 바뀐다.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나면 인류는 용케 극소수가 살아남더라도 그나마 견딜 만한 기후가 남아 있는 극지방의 소수생물종으로 전락한다.”

대학 때 읽었던 <철학에세이>에서 아주 쉽게 설명했던 ‘양질전화’ 개념이 떠오른다. 0°C를 넘으면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일부’에서 제기하던 광우병 우려와 졸속 쇠고기협상을 비판하던 ‘괴담’은 ‘마그마처럼 땅 속에서 부글부글 끓다가’ 어느 순간 ‘지진’이 되고 ‘화산’이 된다. 촛불 수만개가 이명박의 치적이라는 ‘청계천광장’과 ‘시청광장’을 가득 뒤엎는 건 말 그대로 ‘한순간’이다.

석유값이 저렴해야 할 이유는?

석유값 논란과 쇠고기 논란에서 나는 비슷한 맥락을 본다. 고민은 이런거다. “값싼 석유, 값싼 쇠고기는 정상일까 비정상일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는 이들에게 "그럼 이 비싼 쇠고기를 어떻할 거냐?"는 질문을 하는 분들이 있다. 미국산 수입하지 않으면 쇠고기가 너무 비싼걸 타개할 방법이 없다는 거다. 그건 사실 한미FTA 지지하는 사람들이 작년부터 내세웠던 단골 주장이다. “소비자들에게 값싼 쇠고기를 먹게 할 수 있는 기회다.”

엉터리 정책으로 교과서에 사례로 등장할만한 새정부 유류세 인하 정책도 마찬가지였다. “유류세를 인하해 시민들이 더 싸게 자동차를 탈 수 있게 하겠다.” (심지어 정부에선 대선공약이라며 자동차통행료를 인하하겠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가 다행스럽게도 백지화했다.)


요즘 제 생각은 오히려 쇠고기 값이 비쌌던 제 어릴 때가 정상이었고 쇠고기 저렴해진 요즘이 비정상 아닌가 하는 거다. 그건 유통마진 문제와는 다른 차원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왜 쌀까? 저개발국 농민 착취하고 공장식으로 항생제 팍팍 먹여서 후딱 후딱 키우고, 사료값 아낄려고 동물사료 먹이니까 그런 거다. 조상들이 하던 식대로 키운다면 한국산 청정한우든 미국산 방목소든 비싸긴 마찬가지일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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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주장한다. 저개발국 농민 착취 좀 그만하고, 가축에 항생제좀 그만 먹이고 동물사료 먹이지 말아야 한다. 그럼 우리는 쇠고기는 비쌀 수밖에 없고, 또 비싼게 정상이라는 식으로 <발상전환> 혹은 <생각을 정상화>해야 하는거 아닐까?

비싼 석유값도 마찬가지다. 저개발국 착취하고 공해물질 팍팍 만들면서 지속불가능한 개발을 위한 저유가는 우리 대안이 아니다. 그럼 우리는 비싼 석유값을 어느 정도는 당연시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가용 대신 자전거를 타고, 등심구이나 삼겹살 대신 생선구이나 돼지고기 들어간 김치찌개를 먹어야 하는거 아닐까?

물론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닐게다. 사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대체에너지 개발이나 친환경농업 중시, 석유경제 탈피 모두 우리에게 익숙하던 모든 시스템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해결될 문제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우리가 시스템을 조금만 바꾸면 모두가 즐겁게 변화에 동참할 수 있다.

도로건설 사업 몇개만 취소해서 남는 예산 몇백억원으로 무료 자전거 보급소 만들고 자전거 도로 만들수 있다. 기업 배만 불리는 해외자원개발 예산을 줄여서 대체에너지 개발에 힘을 쏟을 수 있다. 정부가 생각하는 대운하 예산 10조원 가량이면 전국적인 친환경 교통체계 구축에 사용할 수도 있다. 밤이면 밤마다 시뻘건 불빛을 밝히는 교회 십자가 전원만 꺼도 저소득층 어린이들이 늦은 밤 독서삼매경에 빠질 수 있는 밝은 불빛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김상익, ‘자연의 보복과 멸종의 시계’, 시사IN 38호.
한겨레, ‘어머니 지구가 불효자 인간을 죽인다’, 한겨레, 2008.6.7.

※사진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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