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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짧았던 사랑이야기...자전거

by betulo 2008.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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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걸친 첫번째 사랑은 따뜻했다. 짧았던 두번째 사랑은 버거웠다. 첫번째 사랑은 편안했지만 두번째 사랑은 가끔 목숨을 거는 느낌이었다. 미국에서 겪었던 첫번째 사랑은 귀국과 함께 끝이 났고 전 직장에서 나눴던 두번째 사랑은 이직을 고민할 즈음 급작스럽게 파탄나 버렸다. 첫번째와 두번째 사랑의 이름은 모두 똑같다. 자전거.

1999년 여름 미국 시카고에 어학연수를 갔다. 그곳에 사는 누나집에 머물면서 학교를 다녔는데 집 한켠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자전거가 눈에 띄었다. 이곳저곳 가보고 싶은 곳은 많고 대중교통은 불편하던 차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덕분에 어학연수 기간 동안 교통비를 쓴 적이 거의 없었다.

학교까지 자전거로 왕복 40분 가량이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면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해외에서 이민 온 지역주민을 위해 운영하는 영어회화 강좌에 갔다. 거기다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도 하고. 시내 관광명소를 둘러보기도 하고 순전히 호기심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이래저래 자전거를 하루에 두시간 이상씩은 타고 다닌 셈이다. 다음해 초여름 한국에 귀국할 때까지 1년 동안 자전거 덕분에 참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귀국한 이후 여러 해 동안 자전거를 잊고 지내던 나는 지난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 얘기를 다룬 얘기를 텔레비전에서 접하고 나서 자전거로 출퇴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마침 운동을 통해 살을 빼야 한다는 현실적인 고민도 작용했고 어학연수 당시 좋은 추억도 떠올랐다. 하지만 난관이 많았다. 일단 아내를 설득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아내는 내 계획에 강하게 반대했다. 대체로 두가지 이유였다. 너무 위험하다는 것과 땀냄새 풍기며 사람들 만나고 다닐 거냐는 거였다. 나는 자전거를 탈 때는 꼭 인도로 다니겠다는 말로 안전성을 강조했고 자전거를 탈 때는 간편한 티셔츠를 입으면 된다고 끈질기게 졸랐다. 결국 아내는 자전거를 사줬다. 안전을 위한 후방깜빡이와 황사예방용 마스크도 함께. (헬멧도 사주려 했지만 내 머리에 맞는 걸 찾지 못해서 포기했다. ㅡ.ㅡ;;;)

천호대로를 따라 답십리까지 간 다음에 마장역 부근에서 청계천 옆길을 타고 종로3가까지 간 다음 돈화문길을 따라 창덕궁 쪽으로 올라간다. 거의 전속력으로 달려야 대략 50분 가량 걸리는 거리를 출퇴근하다보면 땀이 엄청 난다. 오랜만에 운동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물론 가끔 사고도 있다. 한번은 퇴근시간 넘쳐나는 자동차들 틈에 열심히 패달을 밟고 있을때 갑자기 내 오른쪽으로 자전거 하나까 나타났다. 자동차와 인도 사이 그 좁은 틈으로 끼어들기를 시도한 자전거 덕분에 당황한 나는 순간 중심을 잃고 넘어져 버렸다.

만약 내가 오른쪽으로 넘어지지 않고 왼쪽으로 넘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자전거타기 경험담을 쓰는 사람이 이런 사고로 죽은 사람도 있다며 소개하는 사람이 됐을게다. 하지만 그건 다분히 우발적인 경우다. 가장 큰 위협은 따로 있다.

시카고에서 1년간 두세시간씩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자동차가 나를 위협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일단 시카고는 도로가 바둑판처럼 잘 정돈돼 있다. 자동차가 생각보다 많지도 않다. 과속도 없고 불시에 차선을 바꾸지도 않는다. 지선도로를 이용하면 여유를 만끽하며 산책하는 기분도 느낄 수 있다. 당시와 비교해보면 한국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실제로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조금만 틈이 보이면 자동차들은 주저없이 추월하려 한다. 자전거는 걸리적거리는 과속방지턱같은 존재일 뿐이다.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을때 갑자기 내옆을 스치듯이 지나치는 자동차를 볼 때 숨이 막히는 느낌을 든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추월을 하더라도 여유공간을 두면서 안전하게 하면 서로 좋으련만 그조차도 언감생심이다. 하다 못해 미리 경적이라도 울려주는 자동차도 별로 없다. 하지만 내공이 쌓이면서 자동차에 대처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나갔다.

처음에는 넘쳐나는 차량들 때문에 겁도 나고 해서 주로 인도로 다녔지만 곧 차도를 적당히 이용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 거의 차도를 이용했다. 관련 카페에서 경험자들이 조언한대로 차도 구석이 아니라 차도 중간을 점유하기 시작했다.

차선을 타고 가면 차량 운전자들은 휙 하니 자전거를 추월하는데 그때마다 상당한 위협을 느끼게 되고 실제로 위험하다. 하지만 차선 중앙으로 달리면 안전공간도 확보할 수 있고 차량들이 다른 차선을 이용해 추월하니까 훨씬 안전하다.

자전거에 더 큰 위협은 어떤 면에서는 자동차보다는 오토바이다. 적어도 자동차는 차선을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오토바이는 그런 게 없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한번은 아침일찍 청계천 옆길을 따라 출근하다가 나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는 오토바이와 마주친 적이 있다. 그 오토바이는 정말 내 바로 앞에서 좌회전으로 꺾으며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 짧은 순간 내 머릿에 맴돈 건 ‘자전거와 오토바이 정면추돌사고’라는 제목을 단 신문기사였다.

안타깝게도 자전거 출퇴근 도전사는 3개월 가량 지났을 때 막을 내렸다. 누군가 자전거를 훔쳐가 버렸다. 그렇잖아도 위험하다며 호시탐탐 자전거를 못타게 할 궁리를 하던 아내는 기회를 잡았다. “더 이상 자전거는 없다.” 마침 그 당시 이러저러한 사정도 있어서 더 이상 자전거 출퇴근을 할 만한 경황도 없었다. 짧고 위험했던, 그런만큼 강렬했던 경험이었다.

지금도 생각해본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 와서 마스크를 벗으면 마스크에 묻어나던 검은 먼지들. 자전거로 시내를 다녀보면 자동차는 또 얼마나 넘쳐나는지 깨닫게 된다. 시민들이 자전거를 많이 타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절실하다. 내 경험상 자전거를 많이 타게 하려면 ‘여유있고 안전하게’ 타도록 해줘야 한다. 결국 자전거 전용도로나 전용차선을 많이 만드는게 대안이다.

다행히 서울시에서 서울시가 지난해 11월 2010년까지 360km에 이르는 자전거 전용도로망을 구축하는 등 자전거 이용 환경을 대폭 개선할 계획을 밝혔다.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통해 삶의 질도 높이고 대기오염도 줄였다는 유럽 도시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우리도 그런 사회를 꿈꿔보자.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 글은 한국가스공사 사보 최근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사진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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