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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웰든 벨로 "반세계화 지구적 저항 필요" (2004.1.9)

by betulo 2007.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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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낙선]월든 벨로 필리핀대 교수 "부시낙선, 전지구적 투쟁계획" 기조 발제문
"국제연대는 또 다른 세계를 가능하게 할 것"
 
2004/1/9
강국진 globalngo@ngotimes.net 
오는 16일부터 인도 뭄바이에서 개최되는 세계시민사회포럼에서 "부시낙선운동"이라는 국제연대가 공식 출범할 수 있을지, 또 어느 정도 공감대를 얻게 될 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와 함께 반세계화에 대한 국내외 시민사회의 저항과 대안찾기에도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웰든 벨로 교수(필리핀대 사회학과)는 17일 열리는 "2004 부시낙선, 전지구적 투쟁을 위한 계획" 워크숍 기조 발제문을 통해 "시민운동 의제가 광범위하고 임무가 막중하기 때문에 정의와 평화의 이름이 탐욕의 화신인 미국을 압도할 것"이라고 말한다. <편집자>



10년쯤 전에는 우리 운동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1995년 설립된 세계무역기구(WTO)는 세계화가 미래의 흐름이고 세계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과거 산업혁명 당시 기계파괴운동을 벌였던 러다이트처럼 비참한 운명에 처할 것이라는 신호처럼 비쳐졌다.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번영을 얻게 될 것이었다. 어느 누가 감히 보이지 않는 손이 인도하는 다국적기업이 세계를 뒤덮을 것이라는, 절대다수를 위한 절대 선이라는 약속에 반대할 수 있겠는가.



절대선이라는 장밋빛 환상



그러나 운동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 엔진인 미국 경제가 계속 순항할 것처럼 보였던 1990년대에 경멸 속에서도 굳건하게 일어섰다. 그것은 법인 이윤율의 논리로 움직이는 자유화, 무역과 자본의 규제철폐가 나라 안팎의 광범위한 불평등과 위기, 그리고 전지구적 빈곤의 증가를 초래할 것이라는 확신을 우리가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는 지구적자본의 흐름을 통제할 수단이 약해졌다는 충격을 급작스럽고 심각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1997년 여름의 불길한 몇 주 동안 금융위기로 인해 태국인 1백만명과 인도네시아인 2천2백만명이 빈곤선 아래로 추락했다는 사실보다 더 심각한 게 무엇이 있겠는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위기가 끊이지 않으면서 사람들은 거리와 일터, 정치영역에서 지구적 자본주의에 맞서기 위한 조직을 갖추기 시작했다. 1999년 겨울 5만명이 넘는 시위대가 거리에서 벌인 저항행렬은 시애틀 컨벤션센터 내부에서 벌어진 개발도상국 정부가 선진국 정부에 대항한 반역과 결합해 WTO 3차 각료회담을 무산시켰다. 전지구적 저항은 또한 IMF와 세계은행의 합법성도 잠식했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브라질, 에콰도르에서는 신자유주의 반대론자들이 정권을 잡았다. 많은 이들에게 한국 농업인 이경해씨 자살 사건으로 더 잘 기억되는 칸쿤 제5차 각료회담은 두 번째 시애틀이 되었다. 그리고 3주 전 마이애미에서는 시민사회와 개발도상국 정부의 연대로 인해 미국정부가 무역·금융·투자 자유화라는 급격한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정의와 공정함은 우리 운동의 핵심 가운데 하나이다. 세 번째 요점은 평화이다. 우리는 "세계화를 더 강력하게 밀고 나가는 것이 "영원한 평화"가 통치하는 시대를 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세계화 찬성론자들을 불신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화의 경제적·사회적 부작용이 갈등과 불안정을 증폭시킬 것이라는 점을 누차 지적했다.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세계화는 반대자 무력 탄압, 자연자원 장악, 보호주의 무역을 추구하는 호전적 제국주의의 시대를 예고한다.



미,영,이스라엘은 법규 준수하라



우리의 주장이 옳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진 않는다. 대신 전세계 수천만명의 민중들은 작년 2월 15일 이라크침공계획에 반대하는 행동을 조직해 평화와 정의를 위한 전지구적 힘을 결집했다. 비록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를 침략하는 것 자체를 막아내진 못했지만 이라크 점령의 부당함을 알리는데 이바지했다. 또 침략자들이 이라크에서 뻔뻔스럽게 국제법과 제네바협약을 위반하는 걸 계속 어렵게 만들었다.



뉴욕타임즈는 2월 15일 국제행동이 있었을 때 "오늘날 세계에 남아있는 강력한 세력은 미국과 전세계시민사회 두 개밖에 없다"라고 썼다. 나는 그 기사에 한가지 덧붙이고 싶다. 바로 정의와 평화의 힘이 제국, 살인, 테러, 탐욕의 현대적 화신인 미국을 압도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운동은 떠오르는 해처럼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의제는 광범위하고 우리의 임무는 막중하다. 몇가지만 들어보자. 우리는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물러나도록 촉구해야 한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더 이상 팔레스타인을 파괴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우리는 미국·영국·이스라엘같은 무법자 깡패국가들이 법규를 준수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전세계 공동체를 위해 명료하고도 실천가능한 대안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죽어가는 구질서의 발악은 항상 커다란 기회가 아닌 커다란 위험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혁명적 사상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20세기 벽두에 "미래는 "야만의 시대"가 될지 모른다"는 명언을 남겼다. 파시즘이란 이름의 야만의 시대는 1930-40년대에 준동했다. 오늘날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도 당시처럼 파쇼적이고 광신적이며 독재적인 대중영합주의 운동의 토대가 되는 불안정·분노·위기를 똑같이 만들어내고 있다. 세계화의 장밋빛 환상은 아직 걷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더 격화되고 있다.



분쟁 중재하는 게 시민사회 몫



사람들의 연대와 공동체를 표방하는 단위들은 세계사회포럼에서 기치로 내건 "또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말처럼 미몽에서 깨어난 대중들을 의식화하는 발걸음을 빨리 하는 것 말고 달리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대안이란 1930년대처럼 테러리스트들, 종교적·세속적 권리를 선동하는 정치가들, 불합리와 허무주의를 퍼뜨리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빈틈을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예정돼 있지 않다. 미래는 균형 속에 놓여 있다. 분쟁을 중재하는 우리의 개인적인 행동은 미세한 균형을 정의, 평화, 연대 쪽으로 바꾸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월든 벨로(필리핀대 교수·사회학)
 

 
2004년 1월 9일 오전 9시 59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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