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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

예산감시운동 왜 필요한가

by betulo 2007.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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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은 ‘돈’ 아닌 ‘정책’…시민단체 정부개혁운동
2006년 6월 22일 오전 11시 40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
시민의신문 제 655호 9면에 게재)

“예산은 ‘돈’이 아니라 ‘정책’이다. 예산에는 가치판단과 사실판단이 동시에 들어 있다. 예산결정은 경제논리와 정치논리의 혼합물이다. 예산의 주인은 국민이다. 예산은 ‘눈 먼 돈’이 아니라 주민의 혈세다.”

정 전문위원은 “예산결정과 집행에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며 진보적 가치를 예산편성에 담아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그는 예산감시운동에 대한 기본관점 다섯가지를 제시한다. 

예산감시운동은 정부개혁운동이다
 
= 예산은 정부의 정책과 사업을 표현하고 예산을 통해 달성하기 위한 국가(자치단체)의 목적과 의지가 담겨있다. 예산감시운동은 ‘얼마’, 즉 적정한 금액이 산출되어 책정되었는지 여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어디에’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산감시운동은 정부나 지방정부가 예산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정책과 그 효과를 감시하는 것이다. 이는 정책 결정과 집행과정에 예산을 매개로 개입하여 정부나 지방정부를 납세자인 주민인 원하는 방향으로 개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산감시운동은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운동이다
 
= 예산은 한해 동안 정부(지방정부)활동을 위한 예정된 수치이자 정책이다. 지출한 돈이 아니라 지출할 돈이고, 예산을 결정하는 과정은 합리적인 재원 분배의 과정이자 정치적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예산안을 분석하여 문제제기를 하거나 편성과정에 개입하여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정책결정 과정에 개입하는 것이다. 이는 정책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것이기도 하고 단위 사업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매년 새로운 쟁점을 만들 수 있다
 
= 예산은 매년 편성된다. 매년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올해 여성예산을 분석하여 접근하였다면 내년에는 청소년 복지 등의 예산을 접근하면 된다. 같은 여성예산이라고 해도 아이템이나 이슈별로 즉, 올해 여성시설 운영에 대한 예산을 보았다면 내년에는 미인대회 등 여성행사 예산을 보면 된다. 또한 장애인의 날에는 장애인 예산을 조사하여 발표하고, 환경의 날에는 환경예산을, 여성의 날에는 여성 예산을 발표할 수도 있다. 이렇듯 예산감시운동의 이슈는 시기・사업・데마 등 다양하게 할 수 있다. 

△예산감시운동은 적극적인 주민참여를 가능하게 한다
= 이슈가 다양하다는 것은 각 계층의 주민을 납세자로서 운동의 주체로 조직하는데 유리하다. 여성예산은 여성단체가, 환경예산은 환경단체가, 교육예산은 교육단체가 감시하면 된다. 또한 여성 예산은 아줌마를 조직대상으로, 환경예산은 택시기사를, 교육예산은 선생님들과 학부모 등을 운동의 주체로 세울 수 있다.

△예산감시운동은 운동의 성과를 계량화 할 수 있다
= 주민운동의 성과는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으로 나타나거나 혹은 법제화되지 않더라도 의식과 관행을 바꿈으로서 사회를 변화시킨다. 이러한 성과는 사회의 보편적 이익에 기여하기도 하고 혹은 직접적으로 주민 개개인에게 이익을 주기도 한다. 예산감시운동이 다른 운동과 차이가 있다면 운동의 성과를 계량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킨슨의 법칙

정 전문위원은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파킨슨(Parkinson)이 1955년에 발표한 ‘파킨슨 법칙’을 통해 “예산은 곧 관료의 문제고 국가의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곧 예산감시운동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이론에 다름아니다.

이 법칙은 ‘공무원의 수는 업무량에 관계없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관료조직의 속성 때문에 실제 업무량과 관계없이 불필요한 일자리가 생기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 또다시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낸다는 이론이다. 일이 있어서 예산이 느는 게 아니라 예산이 느니까 일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영국 해군성은 1914년 당시 함정이 542척, 장교와 사병수 14만6천명, 해군본부관리 5천249명 규모였다. 당시 영국의 해군력을 세계 최대였다. 하지만 1967년 영국 해군은 함정 114척, 장교와 사병수는 4만1천명으로 줄었다. 각각 79%와 72%가 감소했다. 하지만 해군본부관리는 3만3천574명으로 무려 639%나 늘어났다. 영국 식민지성도 식민지는 줄어드는데 인원은 1935년에는 372명, 1943년 817명, 1954년 1661명으로 꾸준히 늘어났다. 

이런 경향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정치인, 관료, 기업가의 삼각부패는 일본을 토건국가로 만들었고 이것이 자민당 장기집권의 비밀이었고 10년에 걸친 장기침체의 원인이었다. 일본에는 공항이 100개나 된다. 신선한 야채를 공급한다는 명분으로 야채공항 4개도 지었다. 무인도에 다리를 4개나 지었다. 

한국도 다를 게 없다. 1983년에 432만명에 이르던 농어민은 1995년에 41%가 감소한 254만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관련 공무원과 준정부기관 직원은 7만6천400명에서 12만8천6백명으로 68% 늘었다. 국가예산은 5천800억원에서 9조9천억원으로 18배 증가했다. 공무원 1인당 농민수는 57명에서 20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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