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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폐광도시 그 자체가 통째로 박물관

by betulo 2007.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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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비미쉬 박물관 광산촌 생활상 한눈에
“보존 통한 개발” 본받아야
2005/11/14

한때 일본 유바리시는 폐광촌의 대안으로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당시 영화를 관광테마상품으로 한 대규모 테마공원을 조성하고 국제영화제도 유치하는 등 유바리시는 폐광지역이 따라야 할 길을 제시해 주는 것으로 비쳤다. 그러나 지난 8월 이곳을 직접 방문한 원기준 광산지역사회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유바리시는 “실패를 통해 배워야 할 사례”일 뿐이다. 원 소장은 ‘보존을 통한 개발’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원 소장은 “폐광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1989년 이래 수많은 탄광이 문을 닫고 마을이 없어졌다”며 “폐광시설과 환경파괴현장을 정비하고 복구하면서 깨끗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뒤늦게 깨달은 것은 바로 사라지는 것의 소중함”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위험하고 보기 흉한 시설을 철거하고 복구하면서 정말 보물과 같은 산업문화유산도 아무런 구분없이 함께 사라져 버렸다”며 “그 때문에 석탄박물관을 만들어 놓고도 전시할 물품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광부 생애 체험하는 열린 박물관

원 소장이 ‘석탄동향’ 6월호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비미쉬 박물관은 ‘생애 체험’을 관광상품으로 만든 곳이다. 원 소장은 “비미쉬에서는 영국 탄광촌 사람들의 삶을 감동적으로 만났는데 우리는 어디에서 한국의 탄광촌 사람들의 삶을 만날 수 있을지 고민스럽다”고 털어놓는다.

영국 북동부 더럼(Durham)은 한때 탄광 350개에서 17만명이나 되는 광부들이 일하던 곳으로 산업혁명을 이끌던 원동력이 됐던 곳이다. 하지만 석탄합리화 정책으로 폐광이 급속히 이뤄지고 실업자가 속출하면서 극심한 경제침체를 겪게 된다.

1970년 문을 연 비미쉬 박물관은 마을 전체가 박물관이다. 지역 추진위는 생활물품들을 수집했고 주민들은 이에 호응해 거대한 군사용 천막 22개가 가득 찰 정도로 기증품이 쌓였다. 현재 박물관에 있는 모든 건축물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옮겨 복원한 것들이다.

박물관은 광부들의 삶과 문화, 광산촌의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은행에 들어가면 은행원 차림을 한 직원들이 1913년 당시 은행업무를 재현하고 자동차 수리공장에서는 수리공으로 분장한 이들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거리를 달렸던 자동차들을 설명해주며 자동차를 수리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옛날 과자를 전시하는 과자가게에서는 직접 판매도 한다. 광부들이 살던 곳에서는 광부들이 탄가루를 뒤집어 쓴 채 집안에서 양동이에 따뜻한 물을 채워 목욕하던 장면도 볼 수 있다. 은퇴한 광부출신 직원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관광객이 직접 석탄을 캘 수 있는 체험코스도 있다. 

‘마을 통째로 박물관 만들기’ 프로젝트

1989년 제정된 석탄합리화법에 기초해 1993년 강원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태백시 철암동은 급속히 쇠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광산지역사회연구소는 ‘보존을 통한 개발’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마을 통째로 박물관 만들기’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통째로 박물관으로 만들어서 문화상품으로 활용하자는 계획이다.

철암축제도 열고 탄광소에 조명도 설치했다. 보존을 통한 개발에 동의하며 함께 하는 마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2001년과 2002년에 심각한 태풍피해를 겪으면서 하천공사에 막대한 자금이 흘러들었다. 태백시는 이 공사에 도로확장공사도 포함시켰다. 개발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태백시는 황지, 장성, 철암 등을 잇는 환 4차선도로를 개발하려고 하는데 그 도로가 완공될 경우 철암은 두조각이 난다. 보존을 통한 개발은 물건너가는 셈이다.

‘개발이냐 보존이냐’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졌고 주민들은 언성을 높여가며 토론을 계속했다. 김동찬 광산지역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은 “아직도 주민들 의견이 반으로 갈라져 있다”며 “그래도 대세는 도로확장이 아니라 ‘보존을 통한 개발’로 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애초 반대입장을 보이던 태백시도 한 발 물러섰다. 문화관광부는 지난해 ‘보존을 통한 개발’에 400억원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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