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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생각한다

표류하는 난민정책 (2005.1.7)

by 자작나무숲 2007. 3. 20.


2005/1/7


 내툰나잉 버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총무는 지난 2003년 한국지부 회장, 부회장과 함께 난민지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같이 신청했던 20명 가운데 17명은 지금도 난민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난민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동료들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고 고백한다.

 

1994년 산업연수생 비자로 한국에 입국한 내툰나잉 총무는 1987년 버마 랑군대학교에 입학한 이후 버마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하지만 언제 구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국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방글라데시 소수민족인 ‘줌마’ 출신인 로넬 JPNK(Jumma People"s Network Korea) 사무총장은 지난해 12월 동료 11명과 함께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는 줌마족 인권탄압을 피해 한국에 입국했다. 청소년 시절부터 줌마족 자치운동에 참여한 로넬씨는 운동경력이 20년이 넘는다. 줌마인들은 방글라데시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주류 벵갈리인들과 비교하여 언어, 문화, 인종, 종교적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소수민족으로서 치타공이라 불리는 산악지대에 살고 있는 13개 부족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이들은 방글라데시 정부의 인종청소 계획에 맞서 수십년간 지리한 게릴라전을 펼치다가 1997년 평화협정을 체결했지만 이 협정은 그들이 원하던 완전자치와 군대철수를 이뤄내지는 못하고 오히려 줌마인들을 평화협정 지지 세력과 완전자치 요구 세력으로 분열시키고 말았다. 평화협정이후 계속해서 완전자치를 요구하는 줌마인들은 최근까지도 방글라데시 정부뿐만 아니라 평화협정을 지지하는 줌마인들한테 살인과 강간 등 각종 인권침해에 시달리고 있다.

 

난민 문제 공론화해야

 

난민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상담과 난민신청 업무를 도와줄 전문적 난민지원 단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철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간사는 “대부분 20-30대인 난민신청자들은 좌절감이 크고 ‘한국에서 추방당하면 죽는다’는 생각에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어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며 “시민사회에서 난민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법무부가 지난해 12월 17명을 난민으로 인정함으로써 한국에서 난민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현재 31명이다. 지난해 난민지위를 인정받은 사람들은 방글라데시 소수민족인 줌마족 12명, 아프리카 분쟁지역 출신 4명,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해 종교적 박해를 이유로 난민지위를 신청한 중동 국가 출신 1명 등이다. 법무부는 지금까지 93명의 신청자를 심사해 31명을 난민으로 인정했으며 아직도 218명이 난민지위를 심사 받고 있다. 난민신청자는 해마다 크게 늘고 있어 지난해에만 1백명 이상이 난민신청을 했다.

 

독립적 난민인정기구 절실

 

난민정책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무엇보다도 불법체류 문제를 담당하는 법무부 체류심사과가 난민인정절차를 담당한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박찬운 변호사(법무법인 신화)는 “전문성 있는 공무원 담당자가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실정”이라며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난민인정기구를 만들고 법무부에 전문가 중심으로 난민인정제도개선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간사도 “난민은 출입국 문제가 아니라 인권문제”라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이의신청제도가 유명무실하고 난민인정신청자와 난민인정자에 대한 처우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난민인정자에 대한 사회보장이 법적으로 제대로 규정되지 않았다”고 비판한 뒤 “난민신청자에게도 체류자격, 노동허가, 사회보장 등 임시지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난민인정여부를 최종결정하는 난민인정협의회에 대해서도 “법적 위상이 빈약하고 구성원도 관계부처 국장급들로 전문성이 떨어져 실질적인 심사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2004년 1년 동안 딱 한번 회의를 열었고 그나마 한시간 가량 회의한 게 전부였다”며 “난민 신청자의 진술도 못듣고 담당 공무원이 정리한 보고서만 보고 난민인정여부를 결정한 것은 제대로 된 사실인정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간사는 “집단행동도 하고 시민단체에서 연대성명이라도 내고 언론에서 보도라도 해야 난민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정부가 하루빨리 엄격하고도 공정한 심사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법무부는 현재 난민정책 개선을 위한 연구조사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간사는 “난민신청자들은 ‘민주국가’인 한국이 자신들을 도와줄 수 거라는 믿음을 갖고 한국으로 온다”며 “한국사회가 이들에게 책임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내툰나잉은 “한국에 올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5.18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군사독재를 극복하고 민주화를 이룬 한국사회를 직접 보고 배우면 버마 민주화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국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A씨도 비슷한 생각에서 한국에 왔다. 그는 “한국도 문제가 많은 나라”라는 질문에 “적어도 정치인 욕했다고 투옥되는 일은 없지 않느냐”며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대답한다. 아프리카 출신인 A씨는 고등학교를 다닐 당시 총리 흉을 봤다가 그 사실이 알려지자 신변위협을 느껴 한국으로 망명한 경우다.

 

“5년 전 난민신청했는데 소식없어”

버마 민주화운동가 마웅저씨(사진)

 

“버마에 돌아가 NGO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군부독재가 끝장나면 시민단체가 필요할 거예요. 물론 그때까지 기다릴 순 없겠지요. 한국에서 배운 것들을 버마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발전을 위해 쓸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버마에서 정치적 박해를 피해 한국에 입국한 마웅저는 한국 NGO를 배우느라 여념이 없다. 지난해부터 성공회대 NGO대학원에서 청강생 자격으로 공부를 시작한 그는 1주일에 한번씩 함께하는시민행동에 출근해 인턴 활동도 하고 있다. 


시간이 날때마다 시민단체에서 주최하는 토론회나 강좌에 참석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성공회대 민주사회교육원에서 주최하는 노동대학 과정을 주경야독으로 수료하기도 했다.

 

지난 2003년 버마에서 NGO 활동을 하기 위해 마웅저는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았던 민족민주동맹에서 탈퇴했다. 민족민주동맹 당원으로 남아 있으면 버마에서 NGO 활동을 하는데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에는 동지들한테 오해도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동지들도 내 뜻을 이해해 준다”고 귀띔한다. 그는 2000년부터 ‘버마 어린이들의 교육을 지원하는 모임’을 만들어 버마와 태국 국경지대에 있는 버마 출신 불법체류자 자녀들에게 학비를 지원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2000년 난민 지위를 신청한 마웅저는 1994년 10월에 비즈니스비자로 한국에 입국했다. 마웅저가 88년 대학에 입학할 때 버마에서는 88민주항쟁이 일어났다. 학생운동에 가담한 마웅저는 90년 총선 당시에는 민족민주동맹(NLD)을 지지하는 DPNS(새사회를 위한 민주인민)라는 학생정당에서 활동했다. 당시 학생운동은 지하운동, 무장투쟁, DPNS로 분화됐다.

 

“같이 활동하던 동지들이 1년에 서너명씩 구속됐어요. 결국 93년쯤에는 남아있는 동지들이 거의 없더군요. 나 자신 언제 구속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외국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브로커에게 4천 달러를 주고 비즈니스 비자를 얻어 한국으로 왔어요. 5백달러는 여권을 만드는 돈이었어요. 제가 직접 여권을 만들 수 없어 브로커가 대신 만들어 줬거든요.”

 

4천 달러는 주변 사람들에게 빌려서 충당했다. 마웅저는 한국에서 1년 반 동안 공장에서 일한 끝에 돈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마웅저는 2000년에 난민신청을 한 이후 2001년까지 법무부에서 3개월에 한번꼴로 조사를 받았다. 2002년에는 두 번 정도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2003년 2월 이후 연락이 없다. 마웅저는 “조사를 받을 당시 ‘민주화운동은 너희 나라에서 하지 왜 남의 나라 와서 하느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무시받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털어놨다.

 

마웅저는 “한국 시민사회운동에서 배울 점이 많다”며 “한국 시민사회가 이룩한 성과가 아시아 민주주의 발전에 귀감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버마에는 135개나 되는 소수민족이 있다”며 “남북통일운동은 버마 민족화합에 큰 영감을 준다”고 설명했다.


2005년 1월 7일 오전 5시 29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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