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연대 7] "인권으로서 노동권"
윤영모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국제정보센터 추진위원
2004/12/2
지난 1995년 5월 현대자동차 노조원 양봉수씨가 분신한 적이 있다. 고 양봉수씨는 그해 2월 회사가 노조 대의원들과 상의 없이 작업물량을 늘린 데 항의해 생산라인을 일시 정지시켰다가 해고된 상태였다.
“게으름도 노동권이다.” 지난달 29일 인권학교 강사로 나선 윤영모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국제정보센터 추진위원은 “게으를 권리는 단순히 귀차니즘이 아니다”며 “생활하는데 필요한 적정 소득을 받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의 양과 속도에 관한 문제”라고 역설했다. “게으를 권리란 자기 생활과 시간을 조직하고 접근할 권리의 문제”라는 것이다.
윤 위원은 “양봉수씨가 해고된 배경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자동차 한 대가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한가지 공정을 몇 분 안에 해야 하는가, 한 사람 앞에 자동차가 몇 대 만큼 지나가는가. 이런 문제는 노동시간의 문제이고 노동강도의 문제이다. 양봉수씨는 컨베이어벨트 속도를 줄여서 일처리시간을 단축시키키는 회사 조치에 항의했던 것이다. 이는 또 한사람이 같은 공정을 반복할 것인지 짝을 이뤄서 함께 할 것인지 같은 작업공정 결정 문제와 연관된다.”
윤 위원은 “노동시간 단축이나 주5일제 도입도 노동자들에게 게으를 권리를 보장하는 조치”라며 “이는 역사적으로 노동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투쟁의 내용”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운동에서 가장 핵심은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싸움”이었다며 “투쟁의 결과로 노동자들의 법정근로시간이 꾸준히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위원은 “게으를 권리는 자기 시간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확장된다”며 “최근에는 노동시간을 1일, 1주일 단위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시간을 기반으로 바라보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이에 따라 벌어야 하는 돈이 각기 다르다. 결혼, 출산과 육아, 부모 봉양 같은 ‘가족시간’ 위한 시간이 많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런 경우 노동시간을 줄이고 다른 기간에 더 많은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가령 출산을 해야 하는 기간에는 1주일에 20시간을 일하고 나머지는 35-40시간 일하게 근무시간을 조절하는 식이다. 물론 노조-국가-사용자 간 대화로 풀어야 하는 문제다.”
윤 위원은 “유럽에서는 그 문제가 사회적 담론으로 형성돼 있다”며 “시간 배분같은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사회보험제도라든가 시간대출 같은 논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아직도 까마득한 얘기”라고 아쉬움을 표현한 뒤 “한국에서도 이런 문제가 하루빨리 공론화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윤 위원은 ‘부지런함’이라는 가치도 다분히 근대적 가치관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중세시대 아무리 부지런한 사람도 근대시대에서 게으른 사람보다는 게을렀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4년 12월 2일 오전 2시 14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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