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인권학교 ⑤. ‘민주주의, 시민사회, 그리고 인권’
2004/11/19
지난 15일 인권학교 다섯 번째 강의를 맡은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인권의 특징과 한국 인권담론의 특징과 함의를 강연했다.
인권은 통시대적인 절대가치인가
조 교수는 “철학, 법학, 복지학, 인류학 등 각 학문분야에 따라 인권에 대해 전혀 다른 얘기가 나올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정치이론 차원에서 인권을 설명했다.
조 교수는 “인권 역시 역사적 사회적 산물이고 변해가는 것”이라며 “보편타당하고 신성불가침하며 절대 침해받을 수 없다고 믿는 건 개인의 자유지만 그 내용도 그렇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인권선언조차 양심적 병역거부, 동성애자, 장애인 인권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며“세세한 것들이 시대에 따라 바뀌어 나가면서 큰 틀도 바뀌어 간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인권의 역사에 대해 “옛 시대부터 다양하게 단초가 나타난다는 다중기원설과 서구의 근대이후 역사의 산물이라는 단일기원설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시적으로는 사실 근대 프랑스혁명 이후 나타났다는 것이 맞겠지만 민주주의 정신이 고대 그리스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듯 큰 틀에서는 모든 문화권에 인권의 뿌리가 존재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근대국가체제와 근대시장체제에서 드러나는 모순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것이 인권이다.
그런 인권 개념이 1948년 세계인권선언으로 체계화된 것이다. 그는 “세계인권선언은 신이 새긴 십계명이 아니다”며 “사회적으로 끓어오르던 인권개념이 세계대전이라는 극단적인 인권침해 상황을 거치면서 그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거시 세계인권선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인권선언이 모든 인권문제를 다루는 것도 아니며 비엔나인권선언처럼 새로운 두 번째 세 번째 인권선언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인권담론의 특징
조 교수는 “사회마다 인권담론은 차이를 보인다”며 “식민지와 분단을 경험한 한국에서는 ‘민족자기결정권’ 차원에서 민족생존권을 특히 강조하지만 서구적 인권개념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이를 이질적인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한국 인권담론의 특징으로 △국가형성 미완성과 민주화 투쟁 △리버럴 담론 △대단히 급속한 진화과정 △최대주의 △시민사회 주도형을 지적했다.
조 교수는 ‘국가형성 미완성’과 관련해 “내가 통일지상주의는 아니지만 통일은 거의 모든 문제와 연결된다”며 “온전한 국민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현실이 인권담론에 크나큰 제약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미완성인 국민국가에서 치열한 민주화투쟁을 통해 인권 담론이 결정적으로 발전했다”며 “인권을 이름으로 내건 단체가 생긴 지 20년도 안됐으며 그 전에는 인권운동도 민주화투쟁의 일환이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오랜 독재정권 치하에서 ‘국가에 저항한다’는 인권담론이 보편적으로 용인되고 있다”며 “과거 독재정권조차도 북괴군 남침이라는 특수상황을 강조하며 인권을 유보시켰지만 문화적 관점에서 인권을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중국 등 인권탄압국가처럼 ‘아시아에서는 아시아의 인권개념이 있다’는 말로 문화적, 개념적으로 접근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한국처럼 시민사회가 이주노동자에 대해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나서는 나라는 거의 없다”며 “상당한 민족중심적 지향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인권개념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굳이 ‘리버럴’이라는 표현에 대해 “한국에서 보수라고 하기에도 부적합한 극우세력이 ‘자유’라는 개념을 너무나 오염시켰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인권의 초고속 성장’에 대해 조 교수는 “서구가 3백년에 걸쳐 이룩한 인권 개념을 한국은 불과 한 세대 만에 경험했다”며 “양성평등이란 말을 썼다가 ‘이성애를 전제로 한 표현 아니냐’는 비판을 대학교 새내기들에게 들을 정도로 인권 개념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서구에서는 인권을 조그만 영역으로 세분해서 보는 경향이 있는 반면 한국의 인권 담론은 공공성이나 정의와 거의 일치하는 성격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권은 공공선과 정의와 다르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많다”며 “인권을 마지노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최소주의적 접근이라면 인권을 공공선과 정의와 일치시키려는 관점을 최대주의적 관점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서구에서는 인권개념이 국가 주도로 발전했다”며 “한국은 제3세계 중에서도 특히 99% 이상의 인권이 시민사회 주도로 성장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민사회가 손놓고 있었으면 하다못해 국가인권위원회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며 “시민사회가 주도하다 보니 인권담론이 살아 있고 시민사회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인권담론이 한국 민주주의에 주는 함축성
조 교수는 한국 인권담론이 한국 민주주의에 주는 함축성으로 △국가와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잠재력 풍부 △경제적 발전에 대한 함의 △민주주의를 판별하는 자격요건으로 기능 △종합화 △이익집단이 인권담론을 차용 △미국의 영향력 △보편적/세계주의적 담론의 영향 등을 들었다.
조 교수는 “지난 탄핵사태에서 보듯 민주주의의 얼굴을 한 다중의 독재와 시장 논리만 강조하는 20대80 경향을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막아내고 있다”며 “인권이 절차민주주의와 시장만능주의에 모래주머니를 채우는 구실을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눈에 보이는 인권침해는 점차 줄어들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적인 인권침해는 갈수록 커진다”며 “1원1표가 굳어지면 결국 1인1표도 위협받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보안법이 한국 민주주의를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며 “인권이 민주주의의 자격요건이자 촉매제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인권담론의 특징은 최대주의”라고 보는 조 교수는 “최대주의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추동하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경제에선 진보적인 사람이 사회적으로는 보수적일 수 있다”며 “최대주의적 인권 담론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일관되게 진보적으로 이끌어준다”는 것이다. 반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이 최대주의적 인권 담론의 약점”이다. “집중과 선택에선 초점이 흐려지는 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의약분업 사태를 보면서 이익집단의 이익을 보편적인 인권인 양 선전하는 것을 느꼈다”며 “자기 이익을 권리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경제적 이익과 본질적 인권이 겹치는 부분이 있는 건 인정하지만 인권은 인권의 고유한 의미로 남지 않고 집단적 이익을 위한 표현이 됐을 때는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한국 시민사회가 80년대까지만 해도 시민사회는 미국 민주당식 ‘이상주의적 확산주의’를 원론적으로 동의했다”며 “북핵사태를 거치면서 그런 가치에 대한 지지가 점점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시민사회가 차라리 민주당 노선보다는 전통적 공화당 노선을 지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의 인권제기를 바라보는 관점에 큰 차이가 생겼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살색을 연주황으로 바꾸고 이라크전쟁을 반대하는 데서 볼 수 있듯 한국의 인권담론은 세계주의적 담론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한국 인권단체가 팔레스타인 인권문제나 태국 남부 무슬림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상전벽해같은 변화”라고 강조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4년 11월 19일 오전 5시 19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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