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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의대생들 몽니에 무조건 항복한 정부의 자업자득

by 자작나무숲 2021. 1. 20.

 지난해 의사 국가고시(국시) 실시시험을 집단거부했던 의대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정부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형평성, 정책 신뢰성, 공공성을 둘러싼 논란도 함께 거세지고 있다. 

 5일 정부에 따르면 복지부는 의대생들에게 의사 국시 실기시험 재응시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발표했던 지난해 12월 31일 곧바로 의료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했고 지난 4일 입법예고 절차를 완료했다. 현행 의료법 시행령에 따르면 국가시험을 실시하려면 시험 실시 90일 전까지 공고를 해야 하지만 시행령 개정안은 “국민건강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제3항에 따른 공고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제4조 제4항)”는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무회의에서 시행령을 통과시키면 오는 23일 의사 국시 실시시험을 추가로 치르는 방식으로 의대생들을 구제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그간 의사 국시 실기시험은 하반기에만 치러져 왔는데 시험 기회를 한 차례 더 늘린 것이다. 

 의사 국시 관련 논란은 지난해 8월 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가 발표한 의대정원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등 공공의료강화방안에 반발한 전국 의대생들은 수업 거부와 실습 거부를 선언했다. 곧이어 8월 18일 본과 4학년생들이 의사 국시 시험 거부를 표명했다. 8월 24일에는 7월 말에 접수를 완료한 의사 국시 실기시험을 단체로 취소했다. 정부는 9월 1일부터 4일에 재접수 기회를 부여하며 시험을 1주일 연기했다. 곧이어 재접수 기한을 9월 6일까지 추가 연장했다. 하지만 대다수 의대생들이 재접수를 하지 않으면서 결국 의사 국시 실기시험은 대상자 3172명 가운데 423명만 치렀다.   

 의사 국시 거부는 곧 의사면허 취득자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고 이는 가뜩이나 의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게다가 코로나19 대응이 시급한 마당에 상당한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31일 구제 방안을 내놓은 명분이기도 했다. 이기일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해 12월 31일 “내년(2021년)에는 당초 인원 3200명과 응시 취소자 2700여명을 합쳐 6000여명을 대상으로 실기시험을 진행해야 함에 따라 시험 기간 장기화 등 시험 운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응급환자 치료와 취약지 의료공백을 방치해서는 안 되며,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밝혔다. 

 복지부 발표는 기존에 정부가 여러차례 밝혔던 ‘다른 국가고시와의 형평성·공정성 문제가 있어 국민적 공감대 없이 기회를 부여하기는 힘들다’는 입장을 뒤집었다는 점에 더해 전례없는 ‘특혜’라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장 국가가 주관하는 다른 시험 가운데 의사 국시를 포함해 자발적으로 응시를 거부한 이들을 구제한 전례가 없다. 가령 교원임용 국가시험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에게 응시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재시험을 추진한 적도 없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코로나 확진자의 임용고시 2차 응시를 허용해달라’는 청원은 의사 국시 사례를 거론했다.  

 더 나아가 이번 조치는 정책의 신뢰성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 당장 지난해 8월 24일부터 9월 23일까지 진행된 ‘국시 접수 취소 의대생들에 대한 재접수 등 추후 구제를 반대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57만여명이 동의한 것에서 보듯 국민여론이 곱지 않았고, 정부 역시 국민여론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31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정부를 믿고 올해 응시한 423명을 배신해 놓고, 그들을 위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 여기에 대한 대책을 요구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은 “폐쇄적인 집단 속에서의 회유, 협박, 따돌림을 무릅쓰고 이런 결정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까?”라면서 “정부의 결정으로 그들에게는 앞으로의 의사 생활에서 사형 선고가 내려진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정부로선 형평성과 신뢰성에도 불구하고 의료공백을 메꾸기 위해 비상조치가 불가피했다고 강변하지만 사실 치명적인 비판은 정부 스스로 의료라는 공공성을 얼마나 고민했느냐 하는 점이다. 당장 정부 스스로 코로나19 이전까지 의료인력 확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2017년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국정계획 5개년계획’에는 ‘의료공공성 확보 및 환자 중심 의료서비스 제공’을 100대 과제에 포함시켰지만 정작 의료인력 공급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의사와 함께 의료인력의 핵심요소인 간호사 인력확대와 인력유출 방지 논의 역시 지지부진했다. 

 의대생들이 의대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배경에는 대형병원 독과점 구조가 강화되고 동네병원이 위축되면서 의사들조차 일자리 걱정이 높아지는 현실이 자리잡고 있었다. 단순히 인력만 늘리는 것 뿐만 아니라 종합병원 규모의 공공병원을 확충해 의료인력을 흡수하는 ‘유효수요 창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2018년 10.2%였던 공공병상 비중이 2020년에는 9.2%까지 떨어지는 와중에 의사 정원만 늘리는 비용이 덜 드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 지난해 정부가 의대정원 확대방안을 발표할 당시 의료계, 특히 의사들과 아무런 사전 협의가 없었던 것도 사태를 악화시킨 패착으로 작용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복지부가 의사들과 대화 노력을 게을리했다. 이유를 물어보면 ‘맨날 똑같은 얘기만 하니 얘기해서 뭐하느냐’는 식이었다”고 지적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의료 인력이 우리 사회 핵심 인력이고 공익적인 선발과 배치가 필요하다는 점이 이번 논란을 통해 확인이 됐다고 본다”면서 “의사인력 선발부터 교육, 배치까지 앞으로 어떻게 공공성을 강화할 것인지, 그리고 이번과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대책을 함께 내놨어야 했는데 아쉽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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