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은 과도한 불안을 갖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위기 소통을 좀더 공세적으로 해야 한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가 한 달 이상 확산되는 상황에 대해 탁상우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박사는 3일 마스크 사재기를 하는 등 과도하게 불안해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는 한국 정부의 대응 노력과 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른바 ‘가짜뉴스’와 허위 왜곡 정보에 좀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탁 박사는 2005년부터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국방부에서 역학조사관으로 일했다. 귀국 뒤에는 고려대 생물방어연구소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에서 ‘범부처 공중보건 위기 대응을 위한 생물 감시체계 구축’을 연구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마스크 대란이란 표현이 아깝지 않을 만한 상황이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호흡보호구’인데, 이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의료진과 소방관들이다. 과도한 공포 때문에 가장 먼저 호흡보호구를 지급받아야 할 이들에게 차질이 생기는 건 우려스럽다. 인적 없는 길거리에서 마스크 쓴 모습을 자주 보는데 답답한 걸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밀폐된 공간이나 타인과 밀접하게 접촉해야 하는 공간에선 자신을 보호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호흡보호구는 기본적으로 의심환자나 유증상자가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는 것이다. 나는 손은 더 열심히 자주 씻지만 마스크는 쓰지 않는다. 시민들이 과도한 불안을 갖지 않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미국 보건당국에선 아예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권고했다.
“호흡보호구를 썼으니 나는 안전하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건 오히려 더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으면 안 쓰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그리고 상당수가 마스크를 잘못 쓴다. 대구 같은 곳에선 대중교통에서도 마스크를 쓰는 게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 같은 곳에서까지 너나없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마스크를 쓰는 건 지나치다. 역설적인 게 한국만큼 마스크 보급이 잘되는 나라가 없다 보니 마스크가 모자라게 느껴지는 측면도 있다. 황사나 미세먼지 영향이겠지만 생산능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도 이렇게 많은 마스크를 단시간에 공급할 능력이 안 된다.”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나.
“첫 확진환자가 나오고 31번 환자가 나오기 전까진 완벽했다고 본다. 감염 가능성이 있는 접촉자를 다 파악했고 확진환자를 선별해 냈다. 사망자가 한 명도 없었다. 31번 환자 이후부터 집단감염이 일어났는데, 그런 속에서도 최대한 검사해 확진환자를 찾아내고 있다. 코로나19가 잦아들고 나면 한국만큼 치명률이 낮은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국 정부가 보여 준 노력과 역량은 미국보다도 뛰어났다. 전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일부에선 정부의 방역 실패를 비판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확진환자가 많이 나오는 건 오히려 정부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대규모 검사를 수행한다는 걸 보여 준다. 빨리 확진환자를 찾아내야 조기 치료가 가능하고 지역사회 전파도 막을 수 있다. 정부와 국민이 협력해 코로나19 위협에 대처할 때다. 다만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건 ‘과도한 대응’이 나쁜 건 아니지만 코로나19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다 보면 만성질환이나 응급사고 대응 역량이 약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미국에선 호흡기질환 환자와 외상환자가 있다면 외상환자를 먼저 돌본다. 코로나19 확진환자가 다녀갔다고 응급실을 며칠씩 문 닫게 해선 안 된다. 그런 게 과도한 대응의 역효과다. 시급성에 따른 우선순위를 따져 봐야 한다.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정부 대응이 한 박자씩 늦다는 지적을 받는다.
“정부는 속성상 신속할 수가 없다. 항상 정확해야 하고 모든 측면을 다 짚어 보고 결정하기 때문이다. 지금 질병관리본부는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빠르고 유연하게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흡수해 반영하고 있다. 한 박자씩 늦는 감은 있지만 과거에 없던 신속함은 평가해 줘야 한다.”
코로나19 대응에서 아쉬운 점은.
“신속한 정보 전달은 중요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정확한 정보 전달이다. 위기 소통 능력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위기 소통은 대국민 홍보로만 그쳐선 안 된다. 공세적인 소통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유튜브 등을 통해 유포되는 잘못되거나 왜곡된 정보를 찾아내 확산을 막고 오해를 해소하는 노력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미국 CDC는 긴급상황실을 가동하면 정보대응 전담 부서도 만든다. 부서 안에 트위터팀·페이스북팀 등 영역별로 10개가 넘는 팀을 구성해 정보유통 상황을 점검하고 대응한다. 정부의 메시지가 일관되게 나오도록 조율하는 기능도 맡는다. 인종 문제나 소수자 차별 등 의도하지 않은 문제를 일으킬 여지를 검토하는 윤리검토팀도 별도로 가동한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역학조사관으로 일했다.
“현장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보건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가치 있는 일이다. 미국으로 유학 갈 때부터 현장 역학조사관에 지원할 계획이었다. CDC에서 일하는 현장 역학조사관들은 현장에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1차 대책을 마련한다. 접촉자 동선 파악에 국한되지 않는다. 빅데이터 분석이나 위기 소통 능력,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과 정책 이해 능력까지 요구한다.”
미국 질병관리 제도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CDC의 장점은 독립성과 전문성이다. 예산과 인사에서 독립성이 강하다. 상위기관인 보건복지부는 대부분 형식적인 승인만 한다. CDC는 감염병은 물론이고 만성질환이나 정신질환 등 한국 질본보다 훨씬 다양한 보건영역을 담당한다. 그에 필요한 현장성 있는 연구도 많이 수행한다. CDC는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관리자가 되고 그 관리자가 독립성을 갖고 정책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한다. 질본 역시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다만 한국은 일반직 공무원들이 부처 장벽을 뛰어넘는 긴밀한 연결망을 갖고 있고, 그게 다양한 부처 사이에 협력구조를 만드는 순기능도 분명히 한다. 공직사회를 일반직과 전문직 식으로 단순 이분법으로만 볼 건 아니다.”
2015년 메르스 사태로 징계를 받은 공무원 대부분이 전문직이었다.
“매우 잘못된 일이었다. 방역을 하다 보면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오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오류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잘 대응했는지 평가해야 한다. 신종 감염병은 말 그대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 것인데, 그건 매뉴얼만으로는 대처할 수가 없다. 창의적인 접근법이 필요한 마당에 징계받을 걱정부터 한다면 일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당시 메르스 후속 조치는 두고두고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메르스로 엄청난 비판을 받았지만 사실 세계보건기구(WHO)나 외국 정부에선 한국의 메르스 대응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 당시 병원 내 감염을 조기에 차단하고 치명률을 낮췄으며 지역사회 전파를 잘 막아 냈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질본과 의료진에게 훈장을 줘서라도 칭찬하고 격려해 주길 기대한다.”
탁상우 박사 이력
1992년 고려대 생물학과 학사
2000년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 석사
2005년 미국 매사추세츠 로웰주립대 직업환경보건 박사
2005~2011년 미 CDC 역학조사관
2011~2014년 매사추세츠주 보건부 직업보건감시체계 프로그램 부소장
2014~2016년 미 국방부 화생방 합동사업국 생물감시체계 프로그램 수석역학조사관
2019~현재 서울대 보건대학원 보건환경연구소 연구부교수
▲ 3일 서울 서초구 소방학교에 설치된 코로나19 승차 선별진료소에서 한 의료인이 차량에 탄 시민에게 손소독제를 뿌려주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총선이 끝나면... 공공기관 2차 이전이 온다 (0) | 2020.04.06 |
---|---|
'한타바이러스학' 창시자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에게 듣는 코로나19 (0) | 2020.04.02 |
메르스 대응 주인공이 말하는 신종 코로나 해법 (1) | 2020.02.10 |
“좋은지 나쁜지 판단 말고 부정적 정보도 공개해야” (0) | 2020.02.08 |
문재인 공약 감염병 전문병원 여전히 지지부진 (0) | 2020.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