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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이세돌-알파고 대국, 바둑 대중화 기회로 삼아야

by 자작나무숲 2016. 3. 17.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AI) 컴퓨터 알파고에 3연패를 당하자 바둑계에서는 바둑 위기론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3월 13일 이세돌이 극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하지만 승패와 상관없이 이번 대국은 바둑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한 기회였다. 한국기원의 분발을 촉구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2011년 순회특파원으로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방문했을 때 만난 프로바둑기사가 영향을 미쳤다. 이 프로기사를 통해 바둑세계화사업이란 걸 처음 알았다. 한국 프로바둑기사를 해외에 파견해 바둑을 알리는 활동이다. 꾸준한 성과도 쌓이고 있다. 이번 이세돌-알파고 대국을 계기로 바둑세계화사업에 참여해본 프로기사들을 취재했다. 부다페스트에서 만났던 프로기사도 5년만에 연락이 닿았다. 

 그동안 바둑은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에서만 대중적 기반을 갖고 있었던 게 현실이다. 호주 교민인 이지영은 “승패와 상관없이 바둑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던 친구들 사이에서 바둑이 큰 화제가 되고 있다”며 “나만 해도 어릴 때 아버지에게 잠시 배웠던 바둑을 다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바둑계에선 2006년부터 바둑 세계화사업을 벌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 후원을 받아 바둑 프로기사나 아마추어 6단 이상을 해외에 파견해 10개월간 체류시키며 바둑 홍보와 보급 활동을 벌인다. 조금씩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2011년에는 미국바둑협회에 한국식 프로바둑 시스템을 정착시켰고 바둑보급 지도사과정을 개최했다. 프로대회를 유튜브로 생중계도 한다.

 2010년 미국에 다녀온 김명완 8단은 “꾸준한 협력을 통해 미국에서 배운 프로기사들이 이제는 중국에서 온 이민자 출신들을 이기고 세계대회에 선발돼 출전할 정도가 됐다”고 설명했다. 2008년에 호주로 건너간 안영길 6단은 바둑 특기로 호주 영주권까지 취득했다. 한·중·일을 빼고 바둑을 직업으로 인정받은 첫 사례다. 그는 현재 바둑 대회에 참가하고 세미나와 강의 등을 통해 바둑을 전파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해외 활동 경험자들은 길게 보고 꾸준하게 사업을 이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김 8단은 “매년 지원이 삭감되거나 없어진다는 말이 계속 나오는데, 꾸준히 지원하는 것이 중요한 거 같다”며 “지원이 안정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바둑 세계화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를 위해 바둑세계화에 참여하는 프로기사들에게 이메일 질문지를 보냈다. 기사 마감을 하고 나서 이메일 답신을 받은 게 있는데 내용이 매우 상세하다. 아래에 이승현씨가 보내준 답신을 발췌해서 옮긴다. 

문: 바둑세계화사업에 참여한 계기는 무엇인지. 특히 현재 체류하는 국가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답: 저흰 부부가 둘 다 나와있는 케이스입니다. 둘 다 연구생 출신에 바둑학과 졸업을 했고요. 저희 남편은 아마추어 선수생활을 하다가 독일에서 2년간 베를린바둑협회 지도사범을 했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외국바둑장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저 역시도 아마추어 선수생활을 했고 바둑TV, K-바둑 등에서 10여년간 바둑캐스터를 했습니다. 결혼 후에는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해보고 싶었고, 남편과 함께 결혼 전 바둑대회 참가, 여행 등으로 세계 곳곳의 바둑친구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해외에서 바둑을 보급하는 일이 특별히 의미가 있는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이나, 호주, 유럽 등은 지도사범으로 서로 가려고 하는데 동남아시아는 소득수준이나 날씨, 치안 등 이유로 기피하는 편이어서 호기있게, 누구도 가지 않으려는 동남아 쪽을 선택해서 바둑을 보급해 보자고 결정했죠. 그나마 동남아 국가 중에서는 영어가 통하는 필리핀이 비교적 나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 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문: 현지인들에게 바둑에 대한 이미지나 친숙도는 어떤지. 바둑세계화사업의 성과를 소개해달라. 
답: 필리핀인들은 서양문화가 많이 남아있어서, 체스에 대한 호감도는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 세계적인 그랜드마스터도 여러명 있고요. 그러나 아직까지 필리핀은 바둑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완전히 바둑의 불모지거든요. 적어도 남편이 있었던 독일이나,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Go(바둑의 영어식 표현)라고 하면 여러명 중에 한 명은 아는 수준이지만, 필리핀이나 다른 동남아 국가(중국 문화권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던)에서는 바둑은 정말 생소합니다. 
대학생활을 하는 중에 잠깐 바둑을 접하고 미친듯이 빠져들다가도 곧 일자리를 찾고 돈을 벌지 않으면 생활을 할 수 없는 여건인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소득수준이 높지 않은 나라에서 자신의 취미생활을, 다양한 즐길거리 중에서 찾고, 여유있게 즐기는 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환경에서는 바둑세계화사업은 시간과 인내를 갖고, 천천히 해 나가야 하는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이번 이세돌-알파고 대국에 대한 현지 반응은 어떤가. 
답: 필리핀은 교통이 매우 좋지 않은 이유로 같은 지역이 아니면 조금이라도 먼 거리에 있는 있는 사람과는 약속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기바둑모임도 1달에 1번밖에 추진할 수가 없습니다. 대신 SNS 는 매우 발달해 있는 편이라 시시각각 필리핀바둑협회 회원들의 멘션을 확인할 수는 있습니다. 
필리핀인이어도 기본적으로는 바둑인인지라 이세돌9단을 편파적으로(?) 응원하는 편이지요. 저희가 특강을 몇 차례 추진했던 UP(University of Philippines) 수학과 학생들도 매우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곳에 사는 한국교민들 역시도 만나기만 하면 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의 대결 이야기가 최대 화두가 될 정도로 관심이 많습니다.   

문: 개인적으로 이세돌-알파고 대국에 대해 받은 느낌을 말해달라. 
답: 오랫동안 한국에서, 필리핀에서 계속 바둑 일을 해 왔던 전문가로서, IT 종사자들은 인공지능의 승리를, 바둑인들은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예상했다고 하죠. 한국에 있는 다른 프로/아마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저희 역시 인간(이세돌9단)이 패배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이랑 같이 5:0 일 것이냐, 한 판 정도 질 것이냐 정도였죠. 
막상 알파고의 실력을 보니, 이미 정상급의 프로기사 이상의 실력을 느꼈다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이 놀랐고 처음에는 이세돌 9단에게 안쓰러움을 느끼기도 했는데요. 4국이 끝난 지금, 4국에서 한 판 승리를 거둔 것과는 별개로 이세돌 9단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뿐입니다. 엄청난 연산/추론/판단 능력을 가진 기계와 대적하는 단 한 명의 인간, 이세돌의 처절하면서도 숭고한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문: 바둑세계화사업 발전을 위해 정부에 혹은 한국기원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답: 정부든, 한국기원이든, 제한된 예산을 적절하게 분배하는데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2번 항목에서도 언급한 내용이지만, 바둑 불모지에서 바둑을 뿌리내리는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 적당한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 있는,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곳들에서는 바둑을 소개하고 그것으로도 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 반면에 동남아 국가 같은 곳들에서는 오히려 투자해가며 바둑을 소개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현실적으로 지원이 줄거나, 끊기거나 할 때는 아예 체류 자체를 고민해봐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죠. 
현지인들을 가르치러 갔는데, 거기서는 수입을 전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교민들을 대상으로도 바둑보급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맞닥뜨릴수밖에 없습니다. 베트남/말레이시아/태국 등에서 보급을 하던 지도사범들은 아예 단기(1년 미만)로 파견되거나, 몇 년 버티지 못하고 거의 다 철수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는 오랫동안 꾸준하게 바둑보급지원을 했던 일본기원을 롤모델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세계적으로도 바둑용어가 GO로 정착될 수 있었고, 상당수의 일본바둑용어가(Atari, Hane, Aji 등) 영어로 대체불가한 경우에는 그대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지요.

문: 현지에서 바둑 보급사업을 어떤 식으로 하고 있는지. 
답: 저희가 오기 이전에는 필리핀바둑모임을 보통 커피숍, 공원 등에서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바둑회원 전부가 주문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한 번 자리잡으면 몇 시간씩 차지하고 있으니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것이 아니었죠. 저희가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 학원을 운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바둑정기모임이나 대회장소가 저희 학원 장소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정기적으로 모이는 모임 외에도 언제든 바둑을 배우고 싶은 필리핀 친구들이 있으면 가르쳤습니다. 처음에는 한 번 방문 시 100페소(한국돈 2500원)라도 받을 요량이었는데 그마저도 내기가 어려운 친구들이 많다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완전무상 바둑지도로 바뀌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외부로 나가서 바둑강의 개설을 할 수 있도록 학교/공공기관 등에 꾸준하게 요청을 해 왔습니다. 그 결과 UP(University of Philippine), 라살대학(La Salle University) 수학과 특강, 문화교류축제 등에서 바둑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고, 필리핀의 주민센터와 같은 한 바랑가이(Barangay)에서는 2달의 방학 기간 동안 바둑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문: 필리핀이 사업대상 국가에서 제외됐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뭐라고 전달받았는지.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간략히 한말씀 해준다면. 
답: 딱히 공식적으로 제외된 이유를 들은 것은 아닙니다만 한국에 있었을 당시 바둑계에서 같이 일했던 지인(프로기사, 바둑협회 직원 등)에게 바둑세계화사업의 예산이 삭감되었다는 얘기를 들은바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보다 해외바둑보급 지도사범의 수가 적어져서 선정되지 못한 케이스가 저희 말고도 여럿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작년 모집공고에서부터 미주/유럽/대양주/베트남 바둑보급에 가산점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선정인원이 줄어들 경우, 타 동남아국가로는 지원이 힘들 것으로 예상은 했습니다. 지원받는 동안 바둑보급으로 안정적인 기틀을 잡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생각보다 필리핀의 물가가 비싼데다가, 지원을 더 이상 못 받는 상황이고, 경제악화 및 필리핀의 치안 등으로 교민들의 수도 줄어들고 있어서 현재 크게 고민 중이기는 합니다. 

문: 남편분이 이세돌9단과 같은 도장에서 바둑 배웠다고 하셨는데, 혹시 이세돌9단과 같이 수학했는지, 이세돌 9단과 인연이 있다면 혹시 기억나는 추억이 있는지 소개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바둑을 비교적 늦게 시작한 저희 남편과는 달리 워낙 이세돌 9단이 입단이 빠르고 프로기사 생활을 일찍 했기 때문에 같이 수학을 한 기간은 짧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몇 가지 언급하기는 하네요. 단체로 사활 문제를 풀거나 할 때, 어렸을 적부터 수읽기 힘이 좋았기 때문에 다들 어려워서 쩔쩔 매고 있을 때 항상 제일 먼저 풀곤 했고, 바둑을 두고, 복기를 할 때 예상치 못했던 곳에 둬서 당황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라고요. ^^
워낙 어렸을 적부터 천재성이 돋보였던 친구라고 하네요. 비금도 출신이라서 그런지 폐활량도 좋고, 운동신경도 좋은 편이기는 하지만 운동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바둑티비에서 캐스터를 했을 당시, 이세돌 9단의 방송을 워낙 많이 했기 때문에
바둑이 끝나고 얘기를 나눌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이세돌 9단은 바둑 외에도 20대 초중반임에도 당구, 게임, 주식 등에 다양한 분야에 조예가 깊은 것을 느꼈습니다.    

문: 일본 사례를 언급하셨는데, 보고 들은 게 있다면 소개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바둑학과 재학시절부터 유럽바둑대회를 비롯해서 해외 바둑행사를 많이 다녔고, 외국인바둑친구가 꽤 많습니다. 저희 남편은 2003년, 유럽바둑대회에서 우승을 한 것을 계기로 독일에서 2년간 지도사범을 하기도 했고요. 적어도 유럽/동남아의 경우만 하더라도, 바둑을 좋아하는 외국인 중에는 일본, 일본문화에 관심이 높은 사람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이유로 첫째, 일본 애니메이션 고스트바둑왕을 보고 바둑을 접한 초보자가 많고요. 둘째, (지금은 조혜연/김성래/윤영선 프로 등이 영문 바둑책을 많이 냈습니다만) 2000년도 초반에만 하더라도 당시에 바둑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출판한 영문바둑책 또는 
일본에서 바둑을 배운 미국/독일인 등이 출판한 영어로된 바둑책이 전부였기 때문이죠.
이렇게 바둑을 배운 친구들은 바둑용어도 자연스럽게 일본식 바둑용어로 익히고, 바둑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일본문화도 좋아하고, 심지어는 일본어도 유창하게 하는 바둑인이 꽤 많다는 것에 적잖게 놀랐습니다. 또한 일본기원은 수십년 전부터 바둑보급에 투자를 하고 있어서, 뉴욕/상파울루/암스테르담에 바둑회관을 지어서 현지인들에게 바둑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확실하지는 않지만 뉴욕에 있는 바둑회관은 관리상의 이유로 몇 년 전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장기간의 투자와 문화전파가 맞물려서, 전세계에 바둑인구가 증가되는데 큰 일조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대한바둑협회/한국기원은 이제 발걸음을 뗀 것에 지나지 않죠. 처음에는 힘들고 어렵지만, 바둑보급에 있어서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적극적인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 같은 국가는 한국이란 나라와, 한국문화에 대해 애정이 많습니다. (저희가 방문해 봤던 싱가폴/베트남/태국 모두 비슷한 환경이었습니다) 
먼저 다가와서 저희가 알지 못하는 한국연예인, 한국드라마/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합니다. 이 나라는 프라임시간대에 한국드라마를 방영하고 있고요. 요즘 한국에서 인기가 높다는 미생/응팔 등의 드라마나 웹툰/만화 등의 컨텐츠 등이 제대로 전파된다면 바둑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바탕 위에 각 나라에 바둑지도사범들이 꾸준하게 보급할 수 있는 환경까지 갖출 수 있다면 바둑세계화사업의 가시적인 성과는 분명 나오리라 생각됩니다.
 

이승현씨가 필리핀 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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