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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4 17:47

이세돌이 인공지능에 이기던 날 복기하기


 인공지능(AI)만 학습하고 진화하는게 아니다. ‘도전’에 맞서 끊임없이 학습하며 ‘응전’해 온 것이 바로 인간의 역사였다. 이세돌 9단은 AI 컴퓨터 알파고와 지난 세 차례 대국을 통해 바둑을 보는 시야를 넓히며 도약을 이뤄냈고 마침내 ‘바둑 괴물’ 알파고에게 항복 선언을 받아냈다. 이 9단은 13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4국에서 180수만에 극적인 불계승을 거뒀다. 이 9단은 백 78수로 중앙 흑 한 칸 사이를 끼우는 ‘신의 한수’를 찾아내 승부를 결정지었다. 

 대국 초반에는 이 9단의 실리와 알파고의 세력으로 갈라졌고, 후반에는 치열한 중앙전투와 끝내기에서 승부가 갈렸다. 지난 세 대국에서 알파고가 불계승으로 이겼던 데 비해 이날 대국에선 처음으로 알파고가 초읽기 직전까지 몰리는 상황이 나왔다. 알파고는 승부처인 중앙전투뿐 아니라 끝내기에서도 잇따라 이해하기 어려운 수를 두면서 위기를 자초했고, 결국 180수 만에 돌을 던졌다.


 #알파고, 초반 흉내바둑?
 이 9단과의 네 번째 대국에서 알파고는 초반에 ‘흉내바둑’으로 눈길을 끌었다. 알파고는 사흘 전 열린 제2국과 똑같은 초반 포석을 펼쳤다. 2국과 마찬가지로 4국에서 흑을 잡은 알파고는 첫수에 우상귀 화점, 3수째는 좌상귀 소목을 뒀다. 이 9단도 하변에 똑같이 진용을 펼치자 알파고는 우하귀에 한 칸 걸침 정석을 뒀다. 11수까지도 2국과 똑같은 양상으로 흉내바둑을 두던 알파고는 이 9단이 백 12수로 한 칸 벌림이 아닌 중앙 입구(口)자로 대응하자 수순을 바꿔 하변을 차지했다.

 일각에서는 알파고가 흉내바둑을 두자 “이기는 전략에 일정한 패턴이 정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반면 이 9단은 초반 포석에서 앞선 3번의 대국과 다르게 집을 우선 차지하는 실리 전법을 들고 나왔다. 앞선 대국에서 알파고가 너무나 생소한 수를 보여 준 것에 영향을 받았는지 이 9단도 이날 대국에선 평범함을 거부하는 모습이었다. 흑 45수 이후 백이 상변 타개로 밀어 가는 수를 두거나 날일(日)자로 두는 수를 예상했지만 백 46으로 예상외의 곳에 두었다. 프로기사 이영신 5단은 이 장면에 대해 “알파고를 통해 이 9단이 진화했다. 시야가 넓어졌다”며 “백 46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우하귀와 좌하귀에서 안정적으로 집을 마련한 이 9단은 좌변에서도 알파고에 세력을 허용하는 대신 집을 만드는 방식을 통해 실리에서 앞서 나갔다. 반면 알파고는 중앙에 거대한 세력을 쌓으며 상변에 큰 모양을 만들었다. 이 9단이 즉각 상변에 침입해 타개에 나서자 알파고는 우변으로 손을 돌려 백을 압박했다. 이 9단이 중앙으로 밀고 올라오자 알파고는 일견 무리하게 보이는 이단젖힘으로 백을 누르며 중앙을 틀어막았다.
 
 #‘신의 한수’에 흔들린 알파고
 중반으로 들어가면서 알파고는 서서히 우세를 점하기 시작했다. 이 9단은 70수 삭감에서 실수해 알파고가 큰 진영을 만드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다. 장고 끝에 이 9단은 백 78수로 중앙 흑돌에 끼우는 ‘신의 한 수’를 찾아냈다. 이후 알파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를 남발하며 손해를 자초했다. 85·87·89수로 이 9단에게 큰 집을 만들어주고 자기 집을 깨트리는 모습을 보였다. 현장 해설을 맡은 프로기사 하호정 4단은 “진짜 오류가 났다”며 황당해했다. 함께 해설했던 송태곤 9단도 “접전 지역이 아닌 곳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고 의아해했다.

알파고는 끝내기 상황에서도 이해하기 힘든 수를 여러 번 두면서 끝내기 능력이 막강할 거라는 기존 평가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바둑TV 해설을 맡은 이현욱 8단은 “귀신같은 끝내기를 하다가도 의문의 한 수를 둔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홍민표 9단은 “끝내기를 잘하기는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초읽기 직전 돌던져
 알파고가 이른바 ‘떡수’를 둔 것에 대해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은 이 9단의 빈틈없는 수에 압박을 받자 확률 계산에서 실수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알파고 프로그램 자체에 내재한 약점이 드러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프로기사인 김찬우 AI바둑 대표는 “알파고는 기계이기 때문에 프로그램 오류가 있을 수 있다”면서 “경기 중반에 알파고가 보인 특이한 수는 일종의 버그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대국에서도 이 9단은 장고를 거듭하느라 초읽기에 몰렸다. 이 9단이 제한 시간 2시간을 다 쓰고 초읽기에 들어갔을 때 알파고는 1시간 7분 18초를 남겨 놓고 있었다. 1분 초읽기 3회 가운데 1회를 썼을 때는 제한 시간 2시간 중에서 58분을 남겨 두고 있었다. 하지만 끝내기로 가면서 알파고도 시간에 쫓기기 시작했다. 알파고가 초읽기에 몰리기 직전에 패배를 인정하면서 초읽기 상황에서 알파고가 계산을 얼마나 정확한지 볼 수 있는 기회는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바둑계 “마음 고생 털었다”며 환호

 이 9단이 첫 승을 거두자 바둑기사들은 물론 내외신 기자들도 환호성을 올렸다. 이희성 9단은 전화인터뷰에서 “그 어느 대국보다도 남다른 승리다. 가슴이 뭉클하다”고 표현했다. 이영신 5단은 “이 9단과 알파고 대국을 보면서 나 역시 바둑을 보는 안목이 높아진 걸 느낀다”면서 “이번 대국과 같은 기회가 자주 있다면 바둑 발전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같은 명승부가 자주 펼쳐진다면 바둑 대중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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