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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

'서민증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by 자작나무숲 2014. 10. 6.

 담뱃값 인상은 '21세기판 가렴주구(苛斂誅求)’일까 아니면 국민건강을 걱정하는 애민(愛民) 정신의 발로일까. 사실 별로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미 9년 전에 명백하게 핵심을 짚어줬다. 당시 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담배 가격을 인상하려는 주목적은 흡연율 감소와 국민건강 증진보다는 애초부터 부족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소주와 담배는 서민이 애용하는 것 아닌가요. 국민이 절망하고 있습니다.”

 담뱃값 인상을 두고 애연가는 물론이고 평소 흡연자를 기피하던 이들까지 마음이 편치 않다. 부자한테 깎아준 세금을 서민들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서민증세란 규정에 공감하는 이들도 많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다. ‘세금폭탄’이란 저급한 공격으로 한껏 재미를 봤던 분들은 이제 ‘유신정권을 무너뜨린 건 다름아닌 부가가치세 시행으로 인한 중산층 불만’이란 오래된 주문을 다시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담뱃값 인상을 백지화하는 게 옳은 길일까? 그건 또 다른 문제다. 그 모든 불만에도 불구하고, 담뱃값은 올려야 한다. 그것도 지금보다 최소 5000원 이상은 올려야 한다. 담배 한 갑을 사기 위해 1만원짜리 지폐를 지갑에서 꺼내도록 만들어야 한다. 굳이 비유하자면, 나막신 파는 아들과 소금 파는 아들을 둔 어머니 심정과 비슷하다. 담배 소비가 줄면 국민건강에 좋은 일이고, 흡연율이 줄지 않으면 정부 세입이 늘어나니 그 또한 나쁘지 않다.


담배란 때로 이렇게 멋진 사진과 함께 한다.




 담뱃값 인상 같은 간접세가 아니라 직접세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많다. 맞다. 당장 36분에 한 명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에 희망이란 없다. 복지 확대는 절박한 과제이다. 그러려면 더 많은 세금이 필요하다. 부자증세만으로는 재원을 감당할 수 없다. 서민 부담은 당연히 늘려야 한다. 북유럽 복지국가는 간접세 비중도 매우 높다. 이들은 모든 국민에게 많은 세금을 거둬서 모든 국민을 위해 복지지출을 한다. 그게 바로 ‘보편복지’의 진정한 맥락이다.


 우리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먼저, 담뱃값 인상에 반대해 세금을 줄이는 길이 있다. 그럼 “돈 없어서 복지 못한다”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조세저항도 이해는 하지만 복지를 위한 논의는 결국 ‘증세’라는 첫 단추를 꿰지 못하면 애초에 불가능하다. 복지국가란 우리 모두가 추렴한 돈으로 우리 모두를 위해 사용하는 ‘공동구매’이기 때문이다. 복지국가를 만드는 경로는 ‘홍길동’이나 ‘장길산’에게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100년에 걸친 토론을 통해 이뤄낸 대동법 개혁에 가깝지 않을까?

 이런 대응법은 어떨까. 담뱃값에 더해 종합부동산세와 임대소득과세 인상, 각종 비과세 재검토를 주장하고, 그 돈으로 ‘유아교육·보육 완전국가책임제’나 ‘기초연금’ 같은 복지공약 이행을 요구하는 것이다. 담뱃값 발언보다는 “비과세·감면은 일몰이 되면... 무조건 다 끝내는 것으로 해야 한다”는 발언을 더 되짚어주는 게 미래지향적이다.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하시는 분들에게, 어느 쪽이 대통령과 여당에게 더 괴로운 일일지 생각해 보시길 권한다.

서울신문 2014년 10월6일자에 실린 기자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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