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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친일토지’ 국고 좀먹는다 (2004.8.20)

by betulo 2007.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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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법·국토관리 허점 …국유지 가로채기 극성
파주시 4년간 환수액 1백80억원
2004/8/20
 
파주시 장단면 임진강 하천변 10만여평의 국유지가 친일파의 거두 송병준 후손에게 넘어갈 뻔했다. 시가 10억여원의 부지였다. 99년 송병준 후손들이 재산환수소송을 제기, 수년을 끈 재판결과 파주시는 다행히 기각 판결을 받아낼 수 있었다.

관계 공무원은 “충분한 증거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들이 재산권 보호 명분으로 대법원에 상고했기 때문이다. 

 
 
국토관리법의 허점을 이용한 친일후손들의 재산환수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송병준의 후손들은 파주시 뿐 아니라 인천 부평구 산곡동 미군부대 땅 환수소송도 냈다.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은 이재극, 을사오적 이완용, 이근택의 후손들도 땅찾기 소송을 진행중이거나 승소판결을 받았다. 과거사 청산은 정치적 논쟁으로 치닫고 있지만 친일세력의 오랜 물적토대는 허물어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국토관리의 허점에서 출발한다. 해방 60년을 맞았지만 국유지관리의 구멍은 친일파와 일제명의 토지는 물론 고구려 유적까지 브로커에게 넘길 뻔한 아찔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일제관련 토지환수 과거청산 첫발
 
“일제명의 땅은 물론 친일후손들의 땅도 그들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한 찾기 힘듭니다. 국민들은 법대로 하라고 하겠지만 법대로 하면 친일파 후손이 이기게 돼 있습니다” 군사분계선과 맞닿아 있는 파주시청에는 전국 기초자치단체 행정관청 중 유일하게 ‘우리땅찾기팀’이라는 부서가 있다. 책임자인 이기용 팀장은 99년부터 지금까지 굵직한 친일후손 재산환수소송을 맡아 왔다.
 
파주시는 지난 99년 송병준(왼쪽 사진)의 증손자가 장단면 임진강 하천변 10만여평의 국유지를 자신에게 돌려달라며 소유권이전등기청구소송을 내자 정부기록보존서를 뒤져 국가소유의 땅임을 밝혀냈다. 또 같은 해 이재극 손자며느리의 문산읍 일대 도로에 대한 소유권 주장 소송도 해방후 농지개혁 당시 국가 매입 땅임을 증명해 냈다.
 
이처럼 나라땅을 지키는데 큰 공을 세운 이 팀장은 이와 유사한 분쟁에 관이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자료를 찾아 증거를 들이밀어도 재산권 보호라는 법적 한계를 뛰어넘기 힘듭니다. 결국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관련 전문가들은 파주는 물론 전국 곳곳에서 지자체와 관련 국가기관의 관심 밖에 있는 일제․친일파 등기 토지가 상당한 규모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광복절인 지난 15일 재경부가 발표한 일제법인 또는 일본인 명의 토지는 7천4백60만㎡로 여의도의 8.8배에 이른다. 

파주시는 국가 유물이 토지사기단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도 했다. 임진강 이북 민통선에 위치한 고구려 유적 덕진산성 3만2천평, 시가 31억여원의 부지는 지난 2000년 토지브로커에 의해 등기소송이 제기됐다. 결국 등기서류 조작이 드러나 국고로 환수할 수 있었다. 이 팀장은 “인근 주민의 증언과 신고가 없었다면 환수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국토관리 허점, 토지사기 들끓어
 
“일제시대 토지대장을 들고 와서 물어보는 사람이 하루에도 몇 명씩 됩니다. 눈먼 땅이니 하나라도 건지면 평생 먹고 산다는 거죠.”(서울시 관계자) “일제시대 토지 자료를 찾으려는 사람 많죠. 땅을 찾으려고 한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던데요?”(농촌경제연구원 자료실 직원)
 
일제소유 토지, 친일파 부동산 소유 문제 해결을 위한 전제조건인 국유지관리 강화는 아직 남 얘기다. 여전히 전국 곳곳에서는 ‘땅꾼’이라 불리는 토지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들의 타깃에는 일제소유 토지가 상당부분 포함돼 있다.
 
<시민의신문>이 전국 국유 임야를 관리하고 있는 산림청과 최근 국유토지 분쟁사유가 급증한 경기 파주지역의 국유지 관리 및 소송사례를 취재한 결과를 살펴봐도 잘 드러난다.
 
산림청이 7월 현재 벌이고 있는 소송은 1백72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대부분이 수도권과 강원 영서 지역에 집중돼 있다. 북부지방 산림관리청은 “일주일에도 대여섯건씩 새로운 소송이 제기된다”고 언급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현재 2심 계류중인 경기도 가평군 소재 1만여㎢ 임야를 꼽을 수 있다. 공시지가만 3백억원에 이른다. 토지소송에 정통한 한 산림청 관계자는 “산림청이 담당하고 있는 소송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토지브로커가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다”고 분석한다.
 
파주시는 지금까지 4년간 시유지 30만평(시가 1백50억원), 국유지 3만평(33억원)을 환수했다. 현재도 1백3건의 토지소송이 진행중이다. 면적은 20만평에 이른다. 이 지역은 최근 L재벌 계열사 대규모 공단 조성 등으로 땅값이 오르면서 소송이 크게 늘었다. 토지브로커의 집중공략 때문이란 예상이다.

산림청과 파주시를 예를 보더라도 태부족한 담당공무원이 밤을 새서 일해도 모자랄 정도로 토지관련 소송이 폭증하고 있다. 당연히 관리의 허점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그 틈을 비집고 여전히 일제소유로 남아있는 국유지가 토지사기의 대상이 되고있는 것은 물론이다.
 
친일파․땅꾼 합작품
 
결국 문제는 정부의 국유지 관리 허점으로 모아진다. 일제소유 토지 환수와 친일파 부동산문제 해결의 출발지점이기도 하다. 재경부는 오는 2006년까지 일제명의 토지를 완전 국유화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관련 전문가와 공무원들은 재경부의 발표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정부는 지금까지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일제토지 청산을 공언했지만 성사된 적이 없다. 말만 앞세우고 있는 셈이다.
 
관련 전문가와 공무원들은 실무적 한계를 토로한다.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공무원은 전국에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그나마 잦은 이동으로 전문성을 갖출 시간이 모자랄 뿐이다. 공무원들은 “소송에 이기면 눈에 안들어오고 소송에 져야 눈에 잘 띈다”고 말할 정도다.
 
한반도 산하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관련 토지를 환수하는 일은 과거사 청산의 상징이자 의지다. 국유지 관리의 구멍을 메우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2004년 8월 20일 오전 5시 45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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