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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사해/공공외교

세상에서 가장 한류(韓流)에 취해있는 어떤 나라

by betulo 2012.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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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2012.5.25) 1박2일로 충청북도 제천에 다녀왔습니다.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주최하는 봄철 학술대회가 세명대학교에서 열렸는데 토론자로 참여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제천에 가본 것도 처음이고 학술대회에 토론자로 참가해본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제천은 무척이나 공기가 상쾌하고 산도 멋있었습니다. 중간중간 보이는 자작나무 가로수들도 제 눈을 사로잡았구요.

 학술대회 토론자라는 건, 뭐랄까 머릿속이 멍해진 상태를 얼마나 극복하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지난해 10월18일 국회에서 공공외교포럼 토론자로 나선 적이 있는데 제가 배정받은 시간은 10분이었습니다. 5분쯤 얘기하다가 정신이 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지?' 나머지 5분은 횡설수설과 식은땀으로 끝났지요. 그것에 비하면 이날 토론회에선 제가 하고 싶은 얘길 장장 7분에 걸쳐 나름대로 (작년보다는) 잘 표현했던 것 같습니다.

학술대회가 있는 당일 아침에 원고를 마무리해서 현장에 배포를 하지 못했습니다. 설상가상 출력도 못하는 바람에 썼던 원고 내용을 수첩에 메모해서 토론에 나섰습니다. 당시 썼던 원고를 올려 놓습니다.  


1. 
지난해 5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순회특파원 자격으로
 
6주 동안 4개 대륙 9개 나라를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가장 중요한 취재 목표는 공공외교였고 자연스레 해외에서 분다는 한류(韓流)와 관련한 현장취재도 병행하게 됐다. 두 번째 방문국이었던 이집트에서 한류라는게 분명한 문화적 실체가 있다는 걸 처음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카이로 아인샴스대학교 한국어과에서 만난 현지 여대생들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 가요를 한국인인 나보다도 더 잘 알았다. 한국 대중문화가 빠른 속도로 퍼지면서 우수한 학생들이 한국어과에 몰리고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일반인도 늘었다.

게하드 압바스는
 
이집트 드라마와 달리 한국 드라마는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지루한 줄 모른다.”면서 저녁 6시부터 시작해 저녁도 굶고 밤 10시 넘어서까지 한국 드라마를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아야 아흐마드는 제일 기억에 남는 드라마가 무엇이냐고 묻자 내 머릿속 지우개’ ‘가을동화’ ‘겨울연가’ ‘대장금’ ‘꽃보다 남자 등을 줄줄 꿰었다. 그들에게 물어봤다. 도대체 한국 드라마가 뭐가 재미있냐고. 돌아온 반응은 무척이나 즉각적이었다. “한국 드라마가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아직 한국드라마를 제대로 안봐서 그런 거예요.” “한국 드라마 봐보세요.”

2.

2011 610일 프랑스 파리 르제니트 공연장은 최초로 열린 K팝 콘서트를 보러 온 유럽 젊은이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여기). 이들은 SM타운 공연을 보기 위해 기꺼이 몇 시간씩 기다렸다. 한마디로 한국 대중음악이 세계 문화의 수도를 자임하는 프랑스 파리의 밤을 달궜다.” 분명히 이런 열기는 파리에서 오래 지낸 한국인들도 대부분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현지 경제사회 동향파악이 주임무 가운데 하나인 코트라 관계자나 대사관 주재 공무원한테서 “K팝이 실체가 있기는 한 거냐.”고 질문을 받기도 했다.

영국 런던 애비로드에서 쇼케이스를 마친 그룹 샤이니가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K팝 인기는 분명한 실체가 있다. 소녀시대가 9명이라는 정도나 겨우 알고 샤이니가 걸그룹인줄 알 정도로 K팝에 관심이 없는 입장에서 보더라도 공연은 충분히 멋졌다. 세 시간 가량 사회자도 없이 오로지 다양한 공연만으로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그 넓은 공연장에서 시종 앉아있는 사람은 서울신문에서 온 어느 기자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여기). 거기다 그 바로 다음주에 영국 런던에서 샤이니가 쇼케이스를 할 때 애비로드를 가득 메운 소녀팬 수천명은 한 마디로 경악 그 자체였다(여기).

K
팝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비교적 최근들어 나타나기 시작했고, 한국 영화와 음식은 분명한 문화 흐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내내 머리를 맴돈 생각은 한류 유럽점령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문화를 수용하는 프랑스인들의 수용능력이었다(여기). 프랑스인들은 한국 문화를 즐기면서 자신들의 문화적 토대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었다. 스페인 출신인 피카소가 파리에서 예술활동을 하며 프랑스의 예술역량을 드높였듯이, 정명훈이 파리에서 프랑스 음악계에 이바지하듯이, 한국에서 온 한 입양아가 장관이 돼 프랑스에 복무하듯이 말이다.

대다수 언론에서 대문짝만하게 강조하는
 
“K팝 전사라거나 파리 점령이라거나 하는 말들은 실체를 더 혼란스럽게 하거나 의구심만 키웠다. 이 때문에 호들갑떤다는 반응이 나와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반면, 프랑스인들은 한국 문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소화하고 향유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프랑스에서 '한류'는 프랑스의 문화적 저력을 보여주는 한 징표가 아닐까. 미술 공부를 위해 유학왔다 눌러앉은 민박집 사장님은 이런 얘길 들려줬다. “국악공연을 한다고 해서 딸과 함께 갔다. 한국 사람은 우리 뿐이고 프랑스 사람들로 자리가 꽉 차 있었다.”(여기)

3.

냉정하게 말해 한류가 과거 홍콩영화처럼 되지 말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20년 넘게 한국을 연구하는 라호쉘 대학 에블린 셸리키에 교수는 상당히 냉정하게 K팝의 실체를 추적한다. “나이를 좀 먹은 프랑스인들은 한국전쟁을 떠올릴 뿐 그 이후 발전상을 모른다. 40~50대는 삼성이나 현대 등이 일본 브랜드인 줄 아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오히려 북한에 대해 더 많이 안다. 북한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특별한 이미지도 없다. 프랑스의 특정한 부류가 한국의 특정한 모습만 안다고 보는 게 정확할 듯하다.”(여기)

홍콩영화는 왜 어느 순간 한국에서 존재감이 사라져 버렸을까
. 주윤발과 유덕화에 열광하고 천녀유혼을 보며 유체이탈 착각에 빠지던 속에서도 홍콩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있게 보는 사람을 주변에서 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인들은 홍콩이 아니라 홍콩에서 만든 영화만 찾다가 유행이 지나자 미련없이 떠나버렸다. 유럽에서 느낀건 한국도 그러지 말란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유럽에서 꾸준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에서만 중국어와 일본어 과정 지원자가 해마다 200명이 넘는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은 정규 관리 인력을 50명이나 고용해 중국학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반면 영국 옥스퍼드대학은 1994년 개설한 한국학 프로그램 2007년부터 폐지하기로 했다가 한국 기관에서 급히 지원금을 보내서 가까스로 문닫을 위기는 벗어났다. 이 대학에서 중국학 과정은 1875년 설립됐고 일본학 과정은 1960년 문을 열었다.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는
 
2000년 한국어학사과정을 개설했지만 그 해 지원자는 두 명에 그쳤다. 2002년 다시 학생을 선발했지만 역시 지원자는 2명 뿐이었다. 2004년에 10명이 지원했지만 결국 이들이 한국어 과정을 수료한 2006년 이후로는 새로운 학생들을 뽑지 않고 한국어과정 자체도 사라졌다. 이 대학 박노자 동방언어·문화연구과 교수는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신청하는 학생이 있으면 자매결연을 맺은 연세대에 교환학생으로 보내고 학점을 인정해주지만 그마저도 연간 1~2명에 그친다.”고 말했다. 중국어와 일본어 과정 지원자는 200명을 넘는다(해외 한국학 실태 참조).

4.

사실 유럽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유럽에 뿌리박은 일본 문화다. 독일 남부 하이델베르크 기차역에 있는 서점에 들어가면 한쪽에 일본 망가 번역본이 별도 칸에 빼곡하게 진열돼있는 걸 볼 수 있다. 독일어로 번역된 일본 망가를 펼쳐봤다. 책 자체도 일본식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도록 편집해 놓았다.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 시내 가판대에서는 포르투갈어로 번역된 일본 망가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여기)

언제부턴가 한국에선 일본을
 
지는 나라 취급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1990년대 일본은 없다가 도발적인 주장이었다면 2000년대엔 알게 모르게 상식처럼 돼 버렸다. 하지만 외국에서 조금만 지내보면 그 상식이 사실은 몰상식이라는 것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깨달을 수 있다. 한마디로 지금도 여전히 일본은 있다.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유일한 독특한 관점인 일본은 없다가 알고 보니 표절이었다는 걸 곰곰이 성찰해볼 일이다.

1867
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차 만국박람회 이후 유럽에선 자포니즘이란 이름으로 일본문화가 유럽에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선 일본 문화를 소개하는 전문잡지까지 등장했다.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인 클로드 모네, 에두아르 마네, 에드가 드가, 피에르 르누아르, 폴 고갱 등이 모두 일본 풍속화에 심취했다. 파리에서 일본 그림을 본 뒤 화풍 자체를 바꾼 빈센트 반 고흐는 친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내 모든 작품은 일본 미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남미 역시 다르지 않다
.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이성형 HK교수는 국회입법조사처 간담회(2010) 발표를 통해 중남미 문인들은 일본풍에 대해 약간 경이로운 시선으로 접근한다.”며 일본 문학이 차지하는 위상을 소개한 바 있다. 그는 하이쿠(俳句·일본 전통시양식)는 이곳 시인들이 즐겨 차용하는시 양식이다.”면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설국의 모티브에 매료되어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시아 출신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나머지 두 명이 영국식민지 당시의 타고르
(1913년 수상)와 프랑스에 망명한 뒤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던 가오싱젠(2000년 수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이 배출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2명은 일본 문화의 저력을 보여주는 또다른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설국을 쓴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68 일본적인 정서의 진수를 표현해내는 위대한 감수성이란 찬사를 받으며 일본인으론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이어 1994년엔 오에 겐자부로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파리 에펠탑 인근에 위치한 일본문화원에 가보면
 
1층에 일본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 있다. 이 곳에서 가장 놀란건 수천권에 이르는 일본 관련 책들이 거의 전부 프랑스어로 돼 있다는 점이다. 이 곳에선 단기적인 공연이 아니라 장기적인 프로젝트에 집중한다. 대학과 관련을 맺고 일본학을 지원하고 상업성이 떨어지는 일본 전통문화를 소개한다. 돈 되는 대중문화는 민간이 알아서 하면 된다.

5.

해외문화홍보원이 지난해 초 발간한 재외 한국문화원 현황에 따르면 한국문화원은 2010년까지 설립된 16곳을 통틀어 현지언어로 된 도서 비율이 10.7%에 불과하다. 영국과 미국을 뺀 12곳 평균은 7.0%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영어로 된 책도 3.7% 뿐이란 얘기다. 일본까지 빼면 현지언어 도서가 3.9%까지 떨어진다. 베트남, 카자흐스탄, 나이지리아는 아예 현지어 도서가 한 권도 없다. 최대 교역상대국이자 수천년간 문화교류를 해온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한국문화원에 있는 중국어 책도 전체의 4% 2%에 그친다.(여기)

현지어 번역 사업은 장기적인 목표와 정책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 한국 재외공관은 진득하게 장기적인 사업을 할 시간도 없이 대규모 문화행사 한번 치르고 준비하느라 임기가 다 지나간다. 다시 말해 좀 과장을 섞어서 말한다면 임기 3년의 성패는 대규모 문화행사에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실적이 필요한 정부기관, 막강한 홍보력과 자금력을 갖춘 기획사와 국가주의적 자부심이 가독성이 된다고 판단하는 언론은 서로 서로 손잡고 유럽을 점령한다. 마치 과거 유럽인들이 수천년 전부터 사람이 살던 곳에 깃발 하나 꽂은 다음 발견을 외쳤듯이.

사정이 이렇다보니 갖가지 무리수가 등장한다
. 2011 730일 폴란드의 한류 팬들이 한국 K-POP 가수들의 폴란드 방문을 기원하는 플래시몹을 바르샤바 최고 명소인 문화과학궁전 앞 광장에서 한다는 소식이 한국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출처가 어디일까? 바로 그 전날 문화체육관광부 보도자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K-POP 공연 기원 플래시몹 행사-폴란드 바르샤바에서도 개최'란 보도자료를 냈다. 플래시몹 현지 사진을 확인하라며 바르샤바 주재 한국문화원 웹하드 아이디와 비번까지 소개했다.(여기)

바르샤바에서는 성대하게 플래시몹이 열렸단다
. 역시 문화체육관광부 보도자료 보고 알았다. 혹시나 궁금하신 분들은 www.webhard.co.kr 들어가서 아이디: mctpr, 비밀번호: 1200, 그리고 폴더 이름은 주폴란드한국문화원 내에 7.30 플래시몹 폴더라고 하니 참고하시면 될 것 같다.

K
팝 공연 기원 플래시몹이 최초로 있었던 곳은 그해 5월 프랑스 파리였다. 솔직히 그때도 긴가민가했지만 딱히 물증도 없고 K팝 공연도 성공적이어서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영국 런던에서 있었던 플래시몹은 마침 현장에 있던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페이스북으로 널리 널리 알려주면서 딱 걸렸다. 한 교수에 따르면 당시 한국언론에 보도된 내용과 달리 플래시몹 참가자 규모는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나마 한국인들이 더 많았다.

6
.

나는 K팝을 썩 좋아하지도 않고 별 관심도 없다. 오늘도 나는 버스커버스커 노래를 흥얼거린다. 이 두 문장은 서로 모순될까? K팝에 대한 지배적인 담론에 비춰보면 썩 모순돼 보이지 않는다. 흔히 언론이 호명하는 K팝은 이수만과 양현석, 박진영 사장 등이 거느린 회사 직원들이 춤과 함께 부르는, 그래서 해외에서 돈이 좀 되는 노래를 주로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지껏 한번도 김현식이나 김광석, 송창식 노래를 K팝 범주에 포함시키는 보도를 본 적이 없다.

미디어에 나타난
 
한류라는 담론은 문화교류보다는 산업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인상을 자주 받는다. K팝은 아이돌산업을 통한 수익창출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반면 한국을 알리는 책 번역은 그렇지 못하다.(물론 요즘은 신경숙 소설 덕분에 양상이 조금 달라지는 모습이 보이긴 한다.) 그런 이유로 전 프랑스 주재 한국문화원장 최준호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자신은 개인적으로는 한류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한류라는 프레임은 기존 문화를 엎어 버리고 (한류를 덮어) 씌우겠다는 발상이 들어 있다. 그래서는 문화교류가 안 된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같이 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 대중문화 바람 정도까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실 프랑스에선 문화산업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다. ‘문화적 산물이란 말을 쓸 뿐이다. 그들이 보기엔 문화가 어떻게 산업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출처는 여기)

문화교류를 통해 우리가 다양하고 풍성한 문화를 향유하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도대체 우리가 한류에 그리 목매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 언론이 한국인 혈통에 따른 자부심을 그토록 강조하고 톰 크루즈나 오바마 같은 유명인사가 안녕하세요라고 한마디라도 하면 온나라가 들섞들썩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차라리 외국문화가 한국에 뿌리내리고 융합되고 있다는 걸 더 강조하고 더 촉진하는 보도태도가 한국문화 발전에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신촌과 명동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일본음식 열풍을
 
일류(日流)’라는 이름으로 한국 언론이 먼저 알리고 홍보하는게 일본 관광객을 끄는데도 더 유리한 거 아닐까. 마치 한국인들이 유럽을 점령한 한국문화에 혹해 유럽에 더 호감을 갖듯이 말이다.(발화점은 여기

다문화가족 자녀들에게 한국어 가르치자는 보도도 중요하지만 결혼이민으로 한국에 온 이들을 일일교사로 해서 한국 학생들에게 다양한 외국문화와 역사를 배우게 하자는 보도는 또 어떨까
. 한국은 다양한 아시아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는게 관광수익에도 도움이 되고 하다못해 K팝의 매력도 더 키우는거 아닐까

<나에게 공감을 준 첫 조선일보 칼럼> http://www.betulo.co.kr/1855


K-POP 열풍, 경제의 새로운 동력 (현대경제연.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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