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만약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권단체로 국제 앰네스티를 꼽는 사람이라면 앰네스티가 넬슨 만델라를 석방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30년 가까이 양심수로 감옥에서 지냈고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역임한 노벨평화상 수상자 만델라는 사실 “앰네스티에서마저 거부당한 투사”였다.
앰네스티는 당시 폭력행위에 가담한 인사는 ‘양심수’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견지했다. 물론 영국 외무부와 오랫동안 밀월관계를 유지했던 앰네스티는 영연방에 속한 국가에서 발생하는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지극히 ‘비정치적인’ 태도로 일관하곤 했다는걸 염두에 둬야 한다. 1
앰네스티와 만델라 이야기는 인권과 정치 혹은 인권정치의 미묘한 경계선을 고민하게 만드는 화두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시선을 우리 주변으로 돌려보자. 북한을 이탈한 주민, 그러니까 탈북자가 있다. 대부분 휴전선이 있는 남쪽이 아니라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건넌다. 중국 입장에서 이들은 불법체류자다.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이른바 북송은 그 과정에서 인권문제를 일으킨다. 북송반대운동은 그 지점에서 벌어진다. 최근 총선을 앞두고 조중동 등에서 북송문제라는 인권 의제를 강하게 제기하면서 공공의제로 급부상했다. 라디오연설 50회가 되도록 ‘인권’이란 말을 단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았던 대통령까지도 탈북자인권을 들먹였을 정도다.
탈북자북송반대운동은 ‘인도주의적’ 인권운동을 표방한다. ‘인도주의적’이라는 건 자신들의 의도가 ‘비정치적’이라고 강조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인권 문제는 언제나 정치적이다. 부정해봐야 소용없다. 어떤 정치인지가 중요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북송반대운동은 얻으려는 게 북한 공격하기인지, 중국 흠집내기인지, 아니면 탈북자 인권보호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만약 탈북자 인권보호가 목표라면 이는 중국 흠집내기 그리고 북한 공격하기와 양립할 수 없다. 탈북자 북송이 기본적으로 북중간 특수한 외교관계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출처: 박선영 의원실 홈페이지
북한이나 중국 모두 ‘시국이 잠잠할수록’ 탈북자 처리에서 융통성이 커진다. 중국은 구금과 강제송환을 조용히 중단하거나 중국인과 결혼한 경우 합법체류자격을 주는 등 최소한의 인도적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반면에 공공의 관심이 집중되는 탈북자 사건이 발생한 직후에는 국경경비를 강화하고 강제송환을 위한 임시수용소를 설치하는 것과 같은 강경한 조치를 취한다.” 2
다시 말해, 인도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조용한 외교’가 필수다. 단식투쟁을 하고 유엔 회의장에서 북한과 중국을 자극적인 공격적인 행동을 할수록 중국내 탈북자들은 더 큰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탈북자문제를 접근하는 기본 방식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다. 이들이 한국에서 불법체류하는 이주노동자와 본질상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하자는 것이다. 또 하나는 ‘역지사지’하는 마음이다. 탈북자는 기본적으로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의 흐름을 따라 저임금 지역에서 고임금 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 이동하고 있다. 북한에 제조업 일자리가 늘어나고 경제가 활성화된다면 탈북자는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있다. 3
그러므로 탈북자인권을 위해서는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유럽을 대상으로 수행했던 ‘마셜플랜’처럼 제조업 활성화를 통한 북한경제살리기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불법체류자를 색출해 수감한 뒤 본국으로 쫓아버리는 중국 당국과 열악한 상황을 악용해 탈북자를 착취하는 자들에 분노하듯이 하나도 다를바 없는 행태를 일삼는 한국 상황에도 분노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감히 말한다. 탈북자인권 소동에는 인권이 없다. 정치는 있다. 인권(을 내세우는) 정치는 있다. 인권(을 키우는) 정치는 없다.
이 글은 인권연대(www.hrights.or.kr)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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